전출처 : 드팀전 > 개인적 음악사1


   내가 음악이란걸 열심히 듣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일 거다.건전지 4개 들어가는 라디오가 내 첫번째 오디오였다. 그때 주로 즐겨 들었던 노래는 조용필,송골매,김범용 이었다. 특히나 송골매 아저씨들 노래를 가사 받아쓰기 하면서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겨울 방학때는 방바닥에 이불 덮어쓰고 라디오로 김범용의 '바보 같지만 바보같지만...' (겨울비는 내리고..인가? ) 을 열심히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팝송 테입이란 걸 산 건 아마 중학교 들어가고 일거다.그때 동네 전파상-왜 전파상에서 음반을 팔았을까?-에서 비틀즈 베스트 테입을 하나 샀다.아마 불법 복제품이었을 것 같다.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또 한자 한자 받아썻다....오마 트라블 씸소 파 어웨이.... 다음으로 받아쓰기 한건 당시 황인용의 <영팝스>에 많이 흘러나오던 폴리스의 이었다. 첫 전주가 나올 때,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로 눈이 떠진 거다.아마 이 곡이 날 팝음악의 세계로 빠뜨린 첫번째 투여받은 마약이 아니었을까? 그 다음 부터는 3년 굶은 식충이 처럼 팝송을 열라들었다.그 당시 나오던 <음악세계>라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달이면 달마다 그 잡지 나올 때만 기다려 서점가서 "음악세계"나왔어요 ..하고 물었던 것 같다. 그맘때야 마이클잭슨과 듀런듀런,아하 뭐 이런 그룹들이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그 외에도 심플마인즈,스펜다우발레,브루스스프링스틴,빌리 조엘 등등 ..거기에 각종 댄스그룹들..조이,모던토킹,왱청 등등...근데 그때부터 몸치였던 난 댄스음악에 극단적 혐오를 보였다.요즘은 그나마 좀 나아졌는데 그땐 댄스음악은 진짜 저주받은 상업주의의 전물이라고 여겼다. 대충 빌보드니 뭐 이런 것들에 자신이 있어졌을 무렵.중 2 어느 밤.드디어 그걸 듣고 말았다. 전영혁이라는 사람.그 아저씨가 진행하는 <25시의 데이트>(이후 이프로그램은 0시의 데이트,음악세계,등등 이름을 자주 바꾼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선 음악통으로 우쭐하던 내게 그 프로그램은 충격이었다.1시간을 통째로 들었는데 아는 곡이 단 한곡도 없었고  아티스트들도 전부 생경했다. 나의 첫 반응은 외면이었다. "그따위 인기도 없는 음악들,별볼일 없으니 평소에도 나오지 않지" 하지만 그런 마음 한편에는 비굴한 외면에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당시까지만해도  헤비메틀을 포함한 락음악은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프로그램에서 알아듣는게 없을 수 밖에.


중3이 되면서 '들어보지 말고 비판하지 말자'라는 스스로 뱉은 말에 책임지기 위해 마지못해 락음반하나를 사왔다.그게 오지 오스본이란 아티스트였는데....한번 듣고 뻑가고 말았다. 옆에 있는 이 음반인데..LP로 구했을때는 앞에 있는 피 질질 흘리는 오지오스본 사진은 없었다.그리구 앨범 동명타이틀 곡도 잘려나갔다. 그 유명한 검열이란게 있었으니까. 첫곡 제목은 아직도 생각난다. OVER THE MOUNTAIN...
타미앨드릿지의 파워드러밍에 랜디 로즈의 멜로딕한 리프.그리고 저음을 깍어버린 오지오스본의 기괴한 목소리. 드디어.....락의 세계로 빠지고 만거다. 어떻게든 버텨가며 전영혁 방송을 듣고 자려했다.물론 잘되진 않았다.처음 듣는 그룹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

그 다음부터는 지난 잡지 뒤져가며 계보 외우기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 그런 계보는 왜 그리도 잘 기억나는지.'오지오스본은 블랙새버스에 있다가 갈라서고 자신의 그룹을 만든다.블랙새버스의 왼손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밍은 레이보우 출신 로니제임스 디오로 대체한다. 그는 명반 <천국과 지옥>을 만들고 독립하여 자신의 그룹 디오를 만든다.'등등...아직도 굵직굵직한 계보는 기억이난다. 특히 가계분열이 많았던 딮 퍼플 패밀리는 압권이었다. 가계도 트리가 만들어 질 정도였다. 레인보우,화이트스네이크,(보컬 데이빗 커버데일은 재가 좋아하는 보컬이었다.)길런밴드...또 거기 멤버들의 합종연횡. 안외우려고 해도 외워지는 이상한 과목이었다.

거기에 프러그레시브란 새로운 장르를 알게되었다.전위 음악 같은 것이 나의 음악적 허영을 채워주기엔 딱이었다.핑크플로이드를 비롯해 예스,킹크림슨,러쉬,제네시스 등등등... 애니 해슬럼의 르네상스는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보컬의 섬세함도 물론이고 음악구성도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음반을 구하고 싶었지만 당시 어디서도 음반을 구할 수 없었다.아주 나중에야 그때 들었던 음반들을 구할 수 있었다.그러니 당연히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어떨때는 잠결에 녹음 버튼만 눌러두고 자는 바람에 60분테입의 한면 즉 30분만 녹음되고 만 경우도 허다 했다.(옆에 있는 음반은 U.K라는 프러그레시브 밴드 앨범이다.요즘은 뉴에이지를 한다는 에디좁슨이란 키보디스트가 이끌고 있었다.내가 가지고 있는 그들의 LP는 2장인데... 당시엔 구하기 어려운 음반이었다.)

당시 열심히 들었던 밴드들이 그래도 프로그레시브보다는 메틀쪽이었다.스콜피온스,마이클쉥커 그룹,블랙새버스,레인보우,잉위맘스틴,주다스 프리스트 등이었다. 그리고 몇몇 미국밴드들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영국락밴드의 묵직함과 음울함이 마음에 들었다.그건 아직도 좀 그런것 같다. 이 많은 밴드중에 가장 애정이 간 밴드는 ....끈끈한 의리로 젊은음악팬의 의기를 한층 높여주었던 밴드....한번에 확 하고 벚꽃처럼 꺼져버려서 더 아쉬움이 컸던 밴드.붉은비행선.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존 폴존스,그리고 존 본햄...레드제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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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개인적 음악사2


레드 제플린은 내가 최고로 좋아했던 그룹이다.한 장 한장 그들의 LP를 모았다.그들의 음반중 가장 먼저 알게된건 4집이다. 천국의 계단이 있는 그음반.^^  개인적으로는 1,2 ,3집에 애정이 간다.이 음반들은 블루스에 영향을 받은 느낌이 강하다.4집은 좀 더 포크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옆에 있는 음반 역시 아주 뛰어난 음반인데 내가 가진 LP자켓은 이것과 다르다.이것도 검열때문이다.이유가 웃긴데 여기 있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외설적이란 것이다.별로 그렇지도 않은데...하여간.

사실 기타리스트로써 지미 페이지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에 비하면 매력이 덜했다.그의 작곡능력이나 프로듀서 능력은 뛰어났을 지 몰라도. 로버트 플랜트의 보컬은 지금 들어도 짜릿 짜릿하다.어떻게 보면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하다.나이가 60이 다되었을 텐데. 아직도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솔로 독립 후에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역시 젊은 날 레드제플린 보컬로 기억될 거 같다.

제플린의 유일한 라이브 두장 짜리 음반이 기억난다.앨범 안에 보면 뮤직 비디오처럼 사진들이 붙어있다.영화 비스무리하게 만들었다는데 그 나이에 그 비디오를 한번 봤으면 하고 얼마나 조바심을 내었는지 ..그런데 아직도 보지 못했다.지미 페이지가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쳤다는 전설만 아직도 기억난다.

고등학교자율학습 시간때는 가끔 논쟁이 붙었다.누가 더 뛰어난 기타리스트냐 보컬리스트냐 하는 그런 것이다.사실 좀 유치한 짓이다.나는 무슨 거물처럼 작은 논쟁에 뛰어들진 않았다.그게 폼을 잡는 길이니까.그러다가 친구들 중 누군가 달려와 물어보면 그때 은근 슬쩍 한마디 던지는 거다. "잉위 맘스틴의 연주는 리치블랙모어에 큰 빚을 지고 있지" "3대  기타리스트라는 건 좀 영국지엽적이고 블루스에 바탕을 둔 기타에 한정되는 느낌이 강해" ....다 개폼잡는 작전이다.근데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다.친구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으니까.

 친한 국민학교 친구의 형님이 음악다방 DJ였다.그 집에 가면 그 형님이 가진 희귀한 음반들이 있었다.겨울방학이면 그 음반들을 TAPE에 옮기는게 일이었다. 옆에 있는 수퍼세션 음반은 그 형님 LP덕에 알게 되었고 비교적 쉽게 구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네브라스카>음반도 무지 갖고 싶었지만 결국 몇년 지나 CD로나 구할 수 있었다. 그 형의 LP에는 항상 "용" 하고 자신의 싸인이 있었다.그 싸인만 없었다면 몇장 몰래 꿀꺽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집에는 초록빛,푸른빛,보라빛의 단색 빽판이 많았다. 수입이 잘 안되던 시기라 결국 빽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겠지. 핑크플로이드,클라투,예스,지미헨드릭스,알버트 킹  등 그 형님의 빽판에서 간간히 만나곤 했던 이름들이다.아마 지금쯤은 다 처리해버렸겠지?

대학들어가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워낙 바쁜 1,2학년 아니겠는가? 술먹어야지 학습해야지 가투도 나가줘야지...또 미팅도 나가줘야되구 연애도 해야되고 실연도 당해야하고...하여간 수업듣는거 빼놓고는 좀 바빳다. 음악 듣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좀 등한시 했던 락 음악들에 관심이 갔다.아마 헤비메틀의 성전에서 조금씩 발을 뺀 시절이 그때였을 거다. 그렇다고 그 중금속 음악들에 절연한 건 아니다.장르의 분화가 있었겠지만 요즘도 시끄러운 음악들을 즐겨듣는다.요즘 나온 친구들 중에는 린킨파크와 에바네슨스가 좋다.


새롭게 달려 들었던 장르는 포크 락쪽이다.지금도 포크 락은 여전히 좋아한다.특히 모던락들이 대개가 포크에 베이스를 두고 있어서 좋다.현대적인 감각의 포크를 듣는다는 생각으로 모던 락들을 듣는다.옆에 있는건 크로스비 스틸스 내쉬 앤 영의 <데자뷰>음반이다. 포크 락계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다.닐 영의 솔로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래험 내쉬의 음반을 좋아한다.그의 솔로음반은- PRISON SONG이 들어있는- 나중에 CD로 구워서 얻을 수 있었다. 이 팀 말고도 포크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밥딜런,버즈,존 바에즈,에밀루 해리스,버펄로 스프링필드 등의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들었다. 당시 음악계는 메틀이 기울고 얼터너티브가 급부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그쪽에는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몇몇 그룹들 너바다,펄잼 등의 대표곡들 정도만 귀기울여 들었다.


이건 밥딜런 음반이다.그의 최고 명반이라 하기엔 좀 뭤하지만 그의 음반중 집시나 인도음악의 성향이 나타난 특이한 음반중에 하나라 애정이 간다. 월드 뮤직이란 것도 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땐 요즘 말하는 월드뮤직은 아니었다.오히려 시완레코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권 아트락이나 이탈리아 칸따토우레의 음반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영미 음악권이 가지지 못한 서정성과 실험정신이 새로운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나 역시 그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터.


한때 DJ로 맹활약 했던 성시완씨가 만든 시완레코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그런데 음반을 고를때는 늘 조심해야 했다.아트락이란게 워낙 스타일이 다양해서 잘못하면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을 고를 수 도 있기때문이다.어디 라디오에서라도 한번쯤 들어본 것을 위주로 구입했지만 한곡만 귀에 들어오고 나머진 심벌즈 쟁쟁 거리다 끝나버리는 것도 있다.옆에 있는 팀의 이름은 아직도 못외운다. 일 로베치오 델라 메다글리아 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대개 이탈리아 그룹들은 약자로 불렀던 것 같다.PFM,IRDM,...등등. 그러다보니 멤버들 이름도 못외운다.이름이 너무 어려운 것도 있었구 예전만큼 계보 외우기에 지쳤기 때문이다.특히 요망때즘 부터는 곡제목까지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다.그냥 듣다가 귀에 들리는 곡은 한번 찾아보고 마는 정도였다.외우기 음악에서 조금 벗어나기 시작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그래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은 두번세번 확인해서라도 기억한다.어려서부터 들였던 습관이란 완전히 버리기 쉽지 않은법.이 습관은 나중에 클래식들을때 이름 긴 아티스트들 외우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아르투르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같은 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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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개인적 음악사3



(이 음반은 솔로로 독립한 그래험 내쉬의 앨범이다.이거 진짜 대단한 포크명반이다.CD로 겨우 복사했다.)

 이제 이야기는 군을 제대한 때 쯤으로 넘어가자. 한동안 방황을 좀 해줬다.이유는 묻지마시라.살면서 누구나 다 그럴때가 있는 법이니.다들 공부하는데 나 혼자 겉돌았다.수업도 안듣고 영어공부도 안하고 대낮에 아는 술집에 가서 맥주나 혼자 마시고 아님 여기 저기 서울거리를 걸어다녔다.그때 무슨 음악을 많이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아마 내가 재즈를 좀 본격적으로 들었던게 그때쯤이 아닐까해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사실 내가 처음으로 산 재즈 음반은 고1때 케니G 이다.근데 그때 그게 재즈인지 알았다.요즘은 케니G를 재즈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업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렇다면 재즈다운 재즈로 처음 산 음반은?  잘 기억안난다.재즈란게 그냥 올드팝이라 믿고 샀던 음반중에서도 있어을테니.예를 들면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경우 말이다.프랭크시나트라가 후기로 오면 어덜트팝이 명백해지는데 젊은 시절에는 재즈보컬로써 명성을 누렸다.


이 아저씨의 마지막 음반이다.LP로 있어서 요즘은 거의 못듣는다.이거 산게 고등학교때쯤인거 같은데.그 이후 거의 안듣다가 대학때 다시 들었다.My funny valantain의 흐느낌이 와 닿았다. 그때가 아니였을까....하여간 재즈와 클래식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처음에 관심이 갔던 악기는 색소폰이었다.케니G의 얄팍한 소리와 달리 존콜트레인의 안개낀 사운드와 소니 롤린스의 탄탄한 블로윙은 다른 세계의 소리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요즘은 피아노 트리오 음악에 더 맘에 든다.하지만 이게 시시때때로 변하는 거라서 다음 달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클래식이 내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건 호주로 연수를 다녀온 이후이다.오페라 하우스가서 오페라 한 편 못봤으니 연수를 다녀온 것과 음악과의 상관관계는 하나도 없을 성 싶다.오히려 함께 공부했던 어떤 형 덕분이다.그 형은 나와 다른 학과 형이있는데 스터니 땜에 같이 공부했다.그 형은 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형수가 피아노 학원을 했었다.가끔 공부하다 담배피우며 놀때 그 형은 '무반주 바이올린은 쉐링이 죽이지""푸르니에의 첼로연주로 바흐를 들어봤어?" 뭐 이런말을 했다.그래도 음악 하면 한 음악한다고 자신있던 내개 이건 좀 모르는 분야였다. 물론 그 음악들은 어딘 가에서 한번쯤 들어봤음직 하다.하지만 그 긴 이름들까지 외우고 음반을 열심히 구매해가며 들었던 것은 아니다.결국 자극없이 발전 없는 법, 뭔가 좀 아는 척하기 우해서 또 새로운 음악을 찾아 헤매는 방랑근성에 의해 클래식에 들어서게 되었다.그리고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낸다고 클래식이 나의 주메뉴가 되었다.



이 음반은 미켈란젤리-줄리니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이다.아마 처음으로 끝까지 다 들어본 피아노 협주곡은 이 음반일 듯 하다.그전에도 LP로 몇장의 클래식음반이 있었지만 대개 유명한 한 악장정도만 들었다. 그 다음은 거의 BGM이었다. 이 음반을 들을때 부터는 지휘자나 연주자들로 살펴보게 되었다.옛날에 누군지도 모르고 들었던 LP속 연주자들이 '꽤나 유명한 사람들이었군' 하고 알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또 이름 외우기가 시작되었다.팝음악은 그나마 영어라 좀 나았는데..이건 국적이 좀 다양했다.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알프레드 브렌델,파블로 카잘스,폴 토르틀리에,아르투르 로진스키,빌헬름 푸르트뱅글러,한스 크나퍼츠부슈.......  한번에는 절대 안 외워진다.그냥 들을때 마다 책에서 볼때 마다 음반을 넘길때 마다 눈에 익히고 마음에 담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외워진다.

대개 사람들에게 어떤 음악 좋아하냐고 물으면...... "다 좋아해요" 라는 답이 많다. 나 역시 다 좋아하니까 반갑다.그래서 다음 질문 들어간다. '클래식도 좋아하세요' .... " 아니요"   (속으로....그럼 다가 아니네.)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클래식 공부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다.그들이 그나마 인정해주는 팝은 옛날 프랭크시나트류의 노래다.좀 더 봐주면 비틀즈. 요즘 나오는 애덜 음악은 그들에게 음악이 아니다.

물론 나 역시 가리는 음악이 있다. 10대 위주의 댄스음악,테크노나 일렉트로니카,앰비언트처럼 전자음향에 많이 의존한 음악들이 그것 들이다. 몇번 시도를 해봤지만 내것이 되진 않는다

많은 장르의 음악을 사랑하면서 내게 늘 아쉬운게 있다면 그건 내가 연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내가 할 줄아는 악기는 중2때 시작한 기타. 이것도 그냥 어디 모임가서 반주할 수준이지 연주라고 할 만한 것은 못된다.그래서 가끔 혼자 쓸모없는 상상을 한다.

회사 퇴근 시간이 3시쯤 되는거야. 그럼 집에 가면 4시가 되겠지. 일주일에 3일은 첼로나 피아노,색소폰 중 하나를 배우는거야.그리고 나머지 3일은 하다만 테니스레슨을 받는거지. 저녁 먹고 헬스를 간단하게 하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하루 1시간 이상씩 듣는 거지.아무 방해도 받지 말고.......

쯥.... 점심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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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여자 정혜



영화관에서 보려다 놓쳤다.영화 <여자 정혜>. 며칠전에 퇴근후 집에 들어갔더니 와이프가 빌려놓았다.평일에는 비디오를 잘 보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는 보고 싶었다.

아주 좋은 영화였다.감독이 독립영화출신이어서 그런지 신선함이 있었다.아이러니컬 하게도 영화의 내용은 지루하기 쉬운 일상의 모습이었지만. 영화는 온통 헨드핼드로 들고 찍었다.핸드핼드의 영상의 미덕을 보여준 가장 알려진 영화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상륙작전 씬이다. 역동성과 사실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이 영화<여자 정혜>에서 쓰인 핸드핼드는 역동성하고는 거리가 멀다.영화 자체가 큰 이벤트없이 흘러가고 카메라가 쓸어담고 있는 것 역시 일상의 소소함이다.이 느슨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는데 핸드핼드의 자연스러움이 한 몫을 해낸다. 그리고 정혜를 둘러싸고 있는 근원적 불안과 외로움의 시선을 핸드핼드의 흔들림이 그대로 잡아주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컷들은 영화의 중요장면에서 잡은 정혜의 타이트한 얼굴모습이다.기계적이지 않으며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는 카메라는 정혜의 감정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대표적으로 정혜가 고모부와 마주한 자리를 잡은 얼굴 샷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타이트한 얼굴모습을  롱테이크로 잡고 그냥 놔둔다. 화려한 화면의 변화가 없이 또 큰 음향효과 없이 배우의 미세한 심리변화와 롱테이크 하나로 갈등을 최대한 증폭시킨다.

이 영화속 등장인물은 아무도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주인공 정혜 역시 그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정혜씨"라고..... 또한번의 타이트한 얼굴 롱테이크가 이어진다.이 장면 역시 아주 맘에 든다.김지수를 약간 우측으로 배치하고 얼굴 전면을 보여준다. 이 샷은 정혜가  어두움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웃는 듯 웃지 않는 배우의 표정이 잘 처리되었다.

정혜가 가진 외로움과 고독은 어린시절의 심리적 외상에 기인한다.그녀의 일상은 일상이 돼 무채색을 띤다.공간과 시간 모두가 아무런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 트라우마로 인한 자학도 아니고 그에 대한 반동의 퇴폐적 오버도 아니다.공기가 아무런 빛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물이 아무런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무념한 일상의 삶을 이어간다.물론 그 무념의 뒤안에는 상처로 인한 분노,아픔,고독이 숨어있다. 그녀가 타인 또는 세상과 맺는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그 벽은 결코 과격하지도 슬프지도 뒤숭숭하지도 않다.단지 절대적 단절의 힘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아무도 그녀를 호명하지 않으며 또 그녀 역시 아무도 호명하지 않는다.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이 관계성의 이름하에서 배경이 될 뿐이다.그녀는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려한다.하지만 결국 자신이 그러한 관계성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다.고양이는 버려진다.

그녀는 결국 상처와의 대면을 시도한다.여린 여자 정혜의 힘이 처음으로 느껴진다. 분노의 극단적 분출까지도 염두에 둔다. 하지만.....   그래도 이미 그 과정을 통해 과거와의 단절이 이루어진다.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마치 흑백영화에 어느 한부분만 컬러로 채색되듯 그녀는 외로움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이에게 불려진다.김춘수의 <꽃>이란 시의 '호명행위'가 주는 위대한 의미가 여기서는 이런 식으로 형상화된다.

오랜만에 보는 좋은 한국 영화다.마이너 영화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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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드팀전 > 웃기시는 금자씨 ㅎㅎㅎ



최근에 인구에 회자되는 그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봤다.사실 누구보다 이 영화를 기다렸다만 품위가 있으니 티를 내진 않았다.이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B급 최고감독 박찬욱의 한 결을 맺는 영화이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옆에 있는 직장동료가 묻는다 왜 박찬욱이 B급이냐구..세계영화제에서 감독상도 받았는데 A급 감독아니냐구... 물론 B급 영화라는 것도 상대적 개념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질문도 가능하다.하지만 하위장르 개념이니 나 역시쓴 것 뿐..내 대답은 '영화책 찾아보시지....아님 인터넷..' 

어쨋거나 저쨋거나 <금자씨>에 대한 기대는 컷다.JSA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얼간망둥이 같은 역할을 했던 이영애에게 박찬욱은 미안했었나보다.이영애가 복수할 기회를 주었고 지금까지의 흥행성적은 나른대로 복수의 성공징표로 보아도 무방하리라.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영애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그냥 무표정한 연기..그거야 이영애의 트레이드 마크 아닌가..거기에 붉은 아이샤도우칠한 것 외에 큰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옆에 있는 포스터에서도 그려지듯 키치와 고급문화 사이의 묘한 경계에 이영애가 둥둥떠다닌다. 아마 이영애의 무심함속에 담긴 복수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 아니었을까.그런데 금자의 복수심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되지 않는다.최민식의 야수적인 모습이 부각되어 상대적인 복수심이 전이될 뿐이다.극중 인물이 갖는 복수의 심정이 더 날카로왔어야 하지 않을까. 무심한 듯-착함이란 이름하에- 칼을 숨긴 금자.날카로움이 아쉽다.그러한 면에서 연애의 순간성과 불안에 대한 이중성을 잘잡아낸 것이 <봄날은 간다>의 이영애였다.아마 그녀의 최고 연기가 그작품 아닐까 싶다.아직까진..

박찬욱은 복수를 좀 웃으며 하고 싶었나보다.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블랙 코미디이다.최민식의 살해를 두고 벌어지는 장면은 배꼽을 잡는다.극장에서 내가 가장 크게 웃었던 듯 하다.그냥 일차원적으로 소시민들에게도 내재된 폭력성과 행위에 대한 죄책,두려움등을 동시에 잡아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표현 방식이 이 영화의 포스터 처럼 키치적이다.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를 하려는데 방구나 나오는 상황이다.한마디로 웃기는 상황이다.깔깔거리면 웃었더니 옆에서 흘깃 눈치를 준다.피가 난무하고 살인을 위한 잔인한 방법들이 동원되는데 나혼자 키득거렸다.아마 박찬욱은 나같은 관객을 좋아했을 것 같다.물론 내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영화평론가들이 <금자씨>를 가지고 이리뜯고 저리뜯고 그런다.그들의 직업이니 당연하다.나 역시 뜯고자할 수도 있으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왜냐하면 박찬욱이 마지막에 좀 부드럽고 웃기며 복수를 마감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받아 들여주면 된가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 영화는 <올드보이>가 아니라 <복수는 나의 것>이다.하드보일 하다.굼뜨는 법도 없고 <올드보이>에서 만개할 스타일의 전형들도 힐끔힐끔 보여진다.인물들의 설정은 딱 내가 원하는 방식이다. 선도 없고 악도 없다.다 선일 수도 있고 다 악일 수도 있다.또한 두줄로 회오리모양을 만든 사탕처럼 빙빙꼬인 선악일 수도 있다. 사장 송강호 앞에서 배째는 노동자 기주봉,러닝사이로 붉은피가 쫙.신하균이 복수하러 들어간 장기판매창고에서 마취해놓은 여자를 강간하다 바지내린채 머리통에 피쭉뿜으며 죽는 악당, 유괴공범질하다 송강호한테 전기고문당해서 질질오줌싸다 죽는 배두나.송강호가 유괴범 신하균의 목을 비틀며 하는 말 '안다..니가 착한 놈인거...' .....   ....  하나도 잔인하지 않았다.굳이 말하자면 사실적이었을뿐이다. <복수는 나의것>의 하드보일에 비하면 <금자씨>는 크림빵이다 설탕 쫘악뿌린....크림빵.거기에 웃기기 까지 하니 ㅋㅋ

가끔 사람들은 웃긴다.아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길 수도 있는데.....  돈까스를 먹는다.치즈도 얹고 지랄 발랄을 떨며 먹는다.맛있단다.근데 그렇게 아름답게 식탁에 오기 전까지 돼지가 어떤 지저분한 도살과 어떤 가공처리를 당하는지 연결이 안돼나 보다. 그리고 연결 안하는게 당연하다.나두 그런다.정상적이라 다행이다.하지만 그 둘이 완전 구분된거라 생각하는데 환상이 있다.어린애들이 그러면 그냥 귀엽다.그러려니.문제는 그 어린아이가 그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그래서도 여전히 그런다. 돈까스는 태어날 때부터 돈까스였다고 믿는것.거기까지 만 생각하고 돌아와 버리는 것.그게 환상이다.서태지가 그랬다.환상속에 그대가 있다고.... 박찬욱이 뭐가 잔인하단 말인가.다 찌르면 피나온다.빨간피.피가 잔인하나?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잔인한 직업은 적십자 헌혈담당원이다.그 다음은 의사.

마르크스가 내앞에서 공산당선언쓰고 있으면 마지막에 한마디 더붙이라고 그랬겠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그리고 .사장님,아줌마,고딩,중딩,초딩.....특히 중산층인척하는 분들.....그모든 분들 꿈깨라"

영화속 금자씨가 내게 '어떤방식으로 최민식을 보내시겠어요? 연장을 고르시죠? ' 그러면 난 어땟을까?

ㅋㅋ....딱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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