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쾌락
장 베르동 지음, 이병욱 옮김 / 이학사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봉건적, 기독교적 질서에 기반한 금욕 사회 그리고 심심찮게 출몰했던 각종 질병과의 싸움. 중세를 상상하는 것은 지독히도 재미없는 과정이다. 현재의 시점에 서서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의 폐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세적인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상치 못할 것이다. 그 시대에는 어떤 즐거움도 존재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들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살아갔을 것이며, 봉건적 굴레에 꿰여 괴로워했으리라는 지레 짐작만을 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활했다는 점에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괴로움이 있는 만큼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쾌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리라. 중세의 쾌락이라는 주제는 다소 주목 받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 쾌락이라고 하는 것이 중세의 이미지와 전혀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일상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사료를 찾아보는 게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 한 권을 저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리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책은 크게 중세의 쾌락에 대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중세의 금욕적인 분위기는 실로 대단했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인 결합은 아이를 갖기 위함에 한해서만 허락되었으며 그 기간 역시도 짧았다. 이러한 것들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금식, 고행 등의 형벌이 까다롭게 적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정이라고 하는 다소 사적인 영역에 그 모든 규칙들이 정말로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중세의 이러한 모습들은 다소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고 비정상에 대해서는 차별하고 처벌하는 오늘날의 사회 모습과도 유사한 면에 존재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분 짓기에는 역시나 교회가 앞장섰다. 성직자들은 각종 저서를 통해 금지 사항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직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금기시했던 동성애에 앞장서기도 했다. 권력을 앞세워 스스로 금지한 행위를 즐기는, 이는 각종 부정 부패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들을 찾는 것이 쉬운 오늘날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면모라 하겠다.

3부 여러 가지 쾌락 부분을 읽으면서 금욕이라는 단어는 중세 사회를 설명하는데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 듯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탁 하나 가득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들과 온갖 귀족들이 모여 흥청망청 놀아대는 화려한 향연을 두고 금욕을 논하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금욕에 어울리는 듯한 정신적인 즐거움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독서나 글쓰기 등 역시도 왕이나 귀족 등 권력을 지닌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는 구절보다 흥미로운 글을 양피지에 베껴 쓰고 세밀화로 장식하는 것, 보다 많은 장서를 소장하는 것에 몰두한 듯한 그들의 모습은 봉건 지주에 얽매여 생계를 꾸려나가기 바쁜 이들에게는 허락될 수 없는 행위에 불과했다.

전반적으로 쾌락이라기 보다는 타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사회가 중세인 듯 했다. 각종 규제를 통해 생활 전반을 억압했지만 그 틈새를 뚫고 곳곳에서 비행들이 자행되었다. 동시에 거침없는 낭비와 풍요로움의 증거로도 볼 수 있을 듯한 향연 역시도 금욕보다는 차라리 타락이라는 말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자료의 선별적 생존으로 인하여 다소 권력층의 생활상이 집중 조명된 듯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위 서민층들은 어떤 생활을 영위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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