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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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그녀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난 지난 날 한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녀의 글은 머릿속에서만 끊임없이 다듬어졌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진 모르겠지만 이 시대와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던 작가로서의 그녀의 역량에 대해 난 그다지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내가 읽는 그녀의 첫 번째 책이니 말이다. 실은 2000년에 이 책을 읽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어느날. 그 땐 쉽게 읽힌다는 그 사실이 너무도 좋았다.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혹은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 바라보기에는 내가 너무도 어렸던 것이리라.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이 책을 찾게 된 이유가 무엇인진 잘 모르겠다. 침범해서는 안 되는 딸기밭을 내가 꿈꾸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꿈은 끊임없이 꾸는데 현실은 그 꿈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써내려간 문장들은 실로 아름답다. 때론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것 같은 말 한 마디조차도 그녀는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그렇기에 읽는 이로서는 때론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느끼고, 때론 문장 마다 묻어나는 애절함과 서정성에 몸을 떨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속에는 현실이 없다. 아니, 그녀는 수많은 갈등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고, 그녀는 그런 인간의 삶을 그려나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갈등들을 개인 안에 침잠시켜 버리는 방식을 해결책으로 선택했다. 사회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체 잘 다듬어진 문장 속에서 존재하는 이야기들은 지독히도 개인적으로만 발산된다. 그것은 사회와의 괴리이지만, 동시에 사회와의 어떤 갈등도 초래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조화이다. 그렇게 그녀는 간접적으로 사회가 살만한 곳임을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는 잃은 아이를 통해 시작되는 갈등이 그 아이로 인해 해소됨을 보여준다. 아이의 죽음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냉각시켰지만 그 냉각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아이를 잊어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결합만이 아이를 잊을 수 있는 방법임을 터득한다. 그리고 그 결합 속에서 죽은 아이가 보낸 선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두 인물은 갈등했지만 그들이 속한 사회, 그 틀을 깨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는다. 현실 유지 속에서 그녀는 행복을 발견할 뿐이다. 이어지는 이야기 딸기밭은 어떠한가? 다소 복잡한 구성의 이 이야기는 범죄형 남자와 라는 여인을 향한 욕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두 종류의 욕망은 주인공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 강렬함은 너무도 커 그녀로선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일탈이었고 범해서는 안 되는 죄였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 그 근원은 지독히도 개인적이었다. 흰 고무신이 그녀의 아버지를 연상시켰다는 사실이 이 소설에서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그녀는 숱한 데모대를 외면하고, 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 응답치 않음으로써 사회로부터 다시 한 번 괴리된다. 동시에 금지된 곳에는 다시 가지 않음으로써, 현실을 망각함으로써 마음 속에서 범했던 죄를 개인적인 것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가 모르는 장소의 경우, IMF 라는 시대 상황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보여준다. 직장 내에서 위태로움을 경험하는 남성의 모습, 붕괴되는 가정의 모습까지. 하지만 주인공은 사회에 대한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한 체 호수에 뛰어드는 것으로서 현실 회피를 단행한다. 작별 인사의 경우, 이미 죽어 어느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M의 모습은 이 소설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M의 죽음과 함께 시작하는 소설은, 그 시작 부분부터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이다. M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자신을 향한 그리움이 끊이지 않길 기도하며 떠나는 것에 불과하다. M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건너편 아파트에서 자살을 감행하는 남성의 모습을 너무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 모습은 그들에게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지만, 그 불안감은 말 그대로 불안감일 뿐이다. 그는 언제 오는가 역시, 죽음을 앞둔 여동생의 저항은 지독히도 개인적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느 누구와의 공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비록 성공은 아니었지만 치열했다. 하지만 그녀를 파괴했던 것 역시 그녀의 치열함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서 사회와 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의 딸기밭이었는지도 모른다. 범해서는 안 될 무언가. 그 무언가를 건드리지 않은 체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 그 속엔 맑은 슬픔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글은 개인적 아픔을 사회 속에서 통찰할 기회를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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