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따사롭던 햇살이 식을 대로 식은 한밤이었다. 매서운 바람을 피해 택시를 타고 종로를 말했다. 내리자마자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은 밤을 잊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러나 밤을 만드는 것이었다. 파르르 떨리며 내려오는 노오란 불빛이 없다면 침울한 밤은 완성되지 않았다. 어차피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걸었다. 줄줄이 늘어선 빨간 천막 사이를 습관처럼 걸은 후에 옆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고 우동 하나 전 하나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코를 찌르는 화학향이 첫 번으로 맴돌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느이 반에 누구 어머니 돌아가셨대지?”
찡그린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더라. 밝은 놈이었는데. 잘 웃고.”
“힘들겠네. 힘들겄어.”
“임종도 못 지켰대드라. 그 2학년 수학 최선생님 수업시간에 전화가 와서 달려갔는데 이미 늦었대.”
그는 허허, 거리고 쓰게 웃었다.
“이 임종이라는 게 사실,
사실 그렇게 필요한 건 아니야. 그니까 그런 어린 애를 두고 뭐, 본인이야 더더욱 뼈에 사무치겠지만, 일찍 가는…… 일찍 가는 슬픔을 더해주는 셈이지 뭐. 나중에 가면 그 사람이 필요하다 싶을 때, 그니까 마음 깊이 느끼는 게 뭘 거 같냐. 그저 왜 갔어. 왜 그렇게 일찍 갔어. 이거지.”
“…….”
“우리 어무이 돌아가셨을 때, 너도 알겠지만 나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 입술 파르르 떨면서 가셨는데 나, 울기야 많이 울었다. 근데 그게 나중에 생각해보면 오히려 기억 속에서 안 잊히는 게 짜증나는 거야. 차라리 밝게, 조금이라도 더 생기 있게 잘 지내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좋겄는데 그게 안 되는 거거든. 자꾸 옆으로옆으로 치우더라. 나중엔 포기하고 지금도, 지금도 떠오르데.”
“……다, 다 커가는 과정이겠지.”
맥없이 대답한 나는 후회했다. 커가는 과정이란 말이 너무나 억울하게 들렸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크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가끔 시간이 사람을 택하는 것인지 사람이 시간을 택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니, 둘 다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사람을 택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잔인하다. 나는 그 소년에게 미안해졌다. 커가는 과정이라고만 얘기하며 크는 것을 멈춰주진 못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없음에도 아이는 커야하는 것이고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거북한 침묵 속에 할 말이 없던 나는 핑계를 두르듯 내뱉었다.
“잘 되겠지. 잘 될 거야. 내가 돕고.”
잔을 들어 부딪쳤다. 플라스틱 잔은 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다. 소리보다는 그 속에 출렁이는 액체에 눈길이 가는 것이다. 비고 차고 비고 차는 것을 본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여느 때 경쾌한 치찰음이 있던 자리에 숙연함이 자리 잡는다. 비고 차고, 비고 찬다. 무색의 액체가 무언가의 과정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넌 아직도 이선생님 꿈 꾸냐?”
“…….”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엔 깊게 그리고 얕게 두 번이다.
“한 반년 되었지?”
그릇을 보며 그가 말했다.
“그쯤이다, 아마.”
“잊어야지 않겠냐. 이미 결혼할 때도 지난 지 오래잖아.”
“뭐, 뭐. 때가 되면.”
식은 전을 뒤적였다. 가리는 음식 따윈 들어있지 않으나 그러나 편식을 하는 아이처럼 헤집었다. 뒤적이다가도 생각 없이 전을 찢어 입에 넣었다. 남은 조각엔 따라가지 못한 부추줄기가 삐져나와 있었다.
“이젠 여행도 안 다니나봐?”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연기를 마시고 있었다. 여행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엔 나 자신이 겪은 것이나 그러나 내가 남이 되어 지켜보는 느낌이 있었다. 어린 날의 기억이 그랬다. 네가 어렸을 때, 네가 어렸을 때 말이다. 그 말 속엔 내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이와 더불어 관객이 되는 것이다. 거기엔 내가 아닌 다른 아이가, 길을 잃고 울거나 비염 때문에 코를 훌쩍이는 아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산을 구경하는 나 바다에 소리치는 나 길을 따라 걷고 무거운 짐에 땀 흘리는 내가 보였다. 저만치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지. 만나고 나서는 간 적 없으니까.”
“그래서 더 가야하는 거 아닌가?”
“글쎄, 기분이 나지 않아서.”
“기분 좋을 때만 가는 건 아니잖아. 생각해봐.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데?”
바다. 바다엘 가고 싶었다.
“바다가 좋겠다.”
“가고 싶었나보네.”
그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시 한 번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차고 비고 차고 비고 다시 또 찬다. 과정은 점점 흐려졌다. 어느 것이 차는 것인지 어느 것이 비는 것인지 관심이 사라졌다. 그것이 끝났다는 말인 줄 아는 것이나 그러나 계속해서 기울이는 것이었다.
흐트러진 거리엔 쓰레기가 뒹굴었다. 구겨진 전단과 여기저기 떨어진 담배꽁초가 노란 불빛을 받아 그림자를 남겼다. 아까보다 더 찬바람이 불었지만 술기운 탓인지 춥지 않았다. 사거리까지 걸어가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렸다. 비어버린 담배갑을 길가에 버리며 그가 말했다.
“너, 해남으로 가라.”
“꽤 머네.”
“어차피 딱히 갈 데 없으면. 거기 큰 절에 아는 스님 한 분 계신다. 안부 좀 전해줘.”
졸음이 쏟아졌다. 하품이 나와 거리가 물을 머금었다. 가로등 빛이 일렁였다.
“법명이 어떻게 되시는데?”
“범허……. 범허스님이다.”
“절이면, 그냥 가서 자도 되는 거냐?”
“미리 전화 해. 가본 적 있을 줄 알았는데.”
“이번이 처음이 되겠지.”
해남이면 땅끝이란 생각이 났다. 구태여 가볼 이유도 없으나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이 그랬듯 어느새 자리 잡았다. 아무 의미도 떠오르지 않는 이 땅의 끝을 곰곰이 생각했다.
“온다, 가라.”
그를 먼저 태우고 곧이어 뒤따라오는 택시를 탔다. 차 안의 따뜻한 공기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쏟아져 오는 졸음에 택시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푹신한 시트에 기대어 늘어지는 잠을 잤다.
소년은 계단 위 돗자리에서 있는 대로 몸을 편 채 축 늘어져있었다. 돗자리 위 알록달록한 그림이 뜨거운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며 아지랑이 일렁였다. 소년은 그 여름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반질반질한 돌계단이 녹을 수 있으면 그러면 그 위에서 미끄럼을 타도 재밌겠다. 아니, 더우니까 타기 싫다 금세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다. 현관문 너머로 설거지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년의 어머니는 언제나 딸기가 그려진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했다. 등 한가운데 있는 찍찍이를 붙이기 위해 소년에게 오라곤 하고 분홍 고무장갑을 끼우고 하늘거리는 연두색 반팔 치이익…… 이따금씩 깡, 깡……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에 몇 개인지 셀 수 있었다. 다섯 개 쯤 세고 났을 때 소년은 물소리가 마치 창문너머 들리는 소나기 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렸으면, 소년은 돗자리 가에 있는 난간 쇠봉을 잡았다. 빛이 닿는 바깥쪽은 따스하고 그 반대의 그림자는 차가웠다. 이상한 따스함이었다. 더운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데도 소년은 부드러운 쇠의 곡면을 손으로 감쌌다. 후텁지근한 여름날의 더운물 목욕처럼 그러나 이내 소년은 달궈진 쇠에서 손을 살며시 놓는다. 손을 놓고 일어나 앉은 소년은 볼에 맺힌 땀을 닦고 언덕 아래 지하 주차장 쪽을 보았다. 이리저리 좁은 골목 새에서 깡총거리며 뛰던 아이들이 주차장 입구 옆에 모여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소년과 치이익…… 하늘거리는 연두색 반팔이 멀어졌다. 소년은 아이들에게 달려가 주차장 가자, 며 앞장섰다.
주차장 입구는 상쾌한 터널과도 같았다. 갑자기 시원해지는 공기에 아이들은 숨을 한껏 들이쉬며 눅눅한 공기를 마셨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누군가가 와아! 하며 뒤로 달려 나갔다. 아이들은 늦게 나오는 사람이 술래라도 되는 양 마구 뛰어갔다. 빛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다시 더운 여름날로 돌아왔다. 눈부신 햇살 아래 아이들의 흰 이가 빛났다. 새까만 아이들이 젖니가 빠진 입을 크게 벌리고 깔깔거렸다.
히히거리던 소년은 땀을 닦고 집 쪽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누워있던 때 그대로 계단 위의 돗자리 반짝이는 난간이 있었다. 미풍이 불어 돗자리가생이가 한들거렸다. 소년의 목덜미에도 땀방울을 흩뜨리는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아이들이 다시 줄넘기를 시작하고 소년은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틀려서 다시 한 개, 두 개, 세 개를 세었을 때 소년은 또 주차장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덟 개, 아홉 개…… 하는 소리가 멀어져 갔다. 소년은 눅눅한 공기 한 가운데 섰다. 처음으로 주차장 안에서 차를 마주 보았다. 차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를 삐빅 소리를 기다리며 그 때를 위해 쉬고 있는 것이었다. 소년은 차가 부럽다 생각했다. 차는 이 시원한 곳에서 편히 잠을 자고 있었고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차의 곁에는 또 다른 차가 그 곁에는 또 다른 차가 나란히 누워 자고 있었다. 차는 외로울 일도 없어보였다.
소년은 스멀거리는 어둠 속에서 삐빅 소리를 기다렸다. 들려와도 놀라지 말아야지 그러나 소년은 놀랄 것만 놀라야 할 것만 같았다. 갑자기 불이 깜빡이면 그러면…….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차를 보고만 있던 것이나 그러나 무슨 죄라도 지은 양 차 주인이 그를 볼 수 없도록 멀리 뛰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리아리 전기가 전해져오는 오줌보를 틀어막으며 소년은 몸을 비틀었다. 기다려야지, 소년은 배에 힘을 주고 가만히 섰다. 왜 이럴 땐 꼭 오줌이 마려운 것인지 궁금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소년은 마침내 지쳐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뜨거운 햇살의 공터로 나가며 소년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엇이 따라오고 있진 않은지 그러나 여전히 차만 무거운 침묵에 둘러싸여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나갈 때를 스스로 잡지 못해 신호를 기다리던 소년은 그것이 들려오지 않자 두려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목덜미에 스르륵 감기는 눅눅한 공기에 숨 쉬기 힘들었고 노려보는 헤드라이트가 문득 섬뜩했던 것이다. 걸어 나온 소년은 잠잠했던 오줌이 다시 마려워 집으로 뛰어가야 했던 것이다.
향냄새가 났다. 많은 곳을 찾아가 봤지만 여기선 유독 향냄새가 더 풍겼다.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못내 아쉬웠다. 차라리 저 앞에 한 아름 놓아진 국화향이라면 그녀에게 더욱 가까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녀에게선 언제나 달콤한 향기가 그러나 이미 사라졌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국화 한 송이를 놓고 견딜 수 없어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를 뒤로하고 식장 밖으로 나갔다. 맺힌 눈을 비볐다. 그녀 어머니의 붉게 물든 얼굴이 부었는지 울고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나왔다.
그는 찾아온 학생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학생들에게 가보라 말하고는 앞에 서서 내 팔을 잡았다. 아래로 떨군 내 얼굴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애들이 본다.”
나도 모르게 거칠게 튀어나왔다.
“그게 말이다! 그게…….”
흠칫 놀랐다. 목구멍 뒤에서 밀려오는 응어리를 참아야했다. 이를 악물고 뛰는 박동을 삼켰다. 한껏 추스르고 말했다.
“참기 힘들다.”
“나가자, 담배 이제 아예 안 태우냐?”
먼저 나가보라 말하고 화장실에 갔다. 창백하고 붉었다. 초췌해진 몰골에 찬물을 문댔다. 거울 속의 나에게 흔적을 남기기 싫어 한참을 문댔다. 휴지로 닦고 거울을 다시 봤다. 그리고 창백하고 붉었다. 감출 수 없음을 깨닫고 힘없이 나왔다. 따스한 밤공기가 부드러웠다. 어슴푸레 가라앉은 밤안개 속에서 드문드문 차가 오가는 것이 보였다. 죽기엔 어울리지 않는 날이라 생각 들어 침울해졌다. 그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 쥐고 불을 붙였다. 쓴 연기에 어지러웠다.
두 대를 연거푸 태웠다. 먼저 한 대를 피운 그는 쭈그려 앉아 불이 꺼진 꽁초를 바닥에 비비고 있었다. 말없이 바닥을 보던 그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발인이 언제냐.”
“5시.”
“보겠네.”
“…….”
“나도 있으면 좋겠냐.”
“…….”
“들어가자. 5시까지 마시자. 그때까진 취해있어야지.”
그 날, 매캐하고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생에 있어 가장 취했다. 몇 번이나 울음을 참고 화장실로 가야만 했다. 속을 게우거나 혹은 변기 커버를 내린 후에야 칸막이에 기대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풀었다. 추스르는 것도 포기한 채 들여다본 거울 속의 나는 끝없는 어지러움과 연기로 흐려진 눈앞과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와 그에게 꺼낸 꿈에 대한 말과 그리고 또 터진 울음으로 창백하고 붉게 움푹 패인 눈으로 그 날을 기억했다, 추억했다.
그날 밤, 소년은 한밤중에 마룻바닥으로 들어온 달이 너무 밝아 일어나야했다. 포근한 잠 속에서 밝아진 눈꺼풀 언저리에 눈을 떠보니 보름달은 방금 구름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 듯 바다처럼 일렁이는 검은 윤곽 속에서 홀로 광채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하고 있던 것이다. 매혹이라는 것을 아직 모를 시기의 소년은 신비감에 둘러싸여 일어나 달을 보았다. 서서히 달을 잡아먹는 구름을 손으로 밀쳐내기라도 할 듯이 허공을 휘젓던 소년의 손은 이윽고 달이 모두 가려진 뒤 풀죽어 내려앉았다.
소년은 안방 문 앞에 서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려 고개만을 들이민 채 눈을 말똥히 뜨고 숨죽였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아랫도리가 근지러운 때에 문을 한번 끼익 거려보고는 아무 반응이 없고 나서야 안심하고 제 이불보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부모님이 깨실까 걱정되어 화장실을 쓸 수는 없었다. 한밤중 변기가 거칠게 물을 삼키는 소리는 레버를 내리면 당연히 들릴 걸 알면서도 흠칫 놀라는 소년에게 그토록 무서웠던 것이다.
침 넘기는 소리도 방에 들릴까 신경 써가며 살며시 일어난 소년은 발을 동동 구르지도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반바지만을 걸친 채 고양이처럼 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 바로 앞 전봇대에 찌익 갈기고 나서야 소년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샌들 밑창을 타박타박 소리 내어 걸었다. 구름이 달을 가리고 꺼진 가로등 틈새로 어둠이 스며든 거리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면 으스스하다고 볼 수 있는 그곳의 풍경은 너무나도 가벼운 소년의 발걸음 덕에 외려 경쾌해진 것이었다.
서슴없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간 소년은 막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으로 축축한 기둥과 바닥을 더듬으며 끔뻑였다. 짙은 어둠에 익은 눈 속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흰색 차를 찾고 나서야 그 앞에 서서 마주할 수 있었다. 소년은 차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무슨 일로 온 거니.”
차가 물었을 때 소년은 발끝으로 눈을 떨구며 바닥의 먼지를 쓱쓱 긁는 것이었다. 자신이 왜 왔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소년은 낮에 차를 보던 일을 끝내러 온 것이라 결론지었다. 그런데 소년은 알지 못했다. 왜 차를 마주봐야 하는지 그게 중간에 끝났다고 해서 소년에게 의미가 있긴 한 건지를 몰랐다. 그저 왔을 뿐이었고 소년은 자신이 귀찮게 만든 차에게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소년과 차가 그렇게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각자 머문 제자리에서 사각사각 대는 소음만을 내고 있을 때 어둠이 문득 입을 열었다.
“하나도 안 귀찮아.”
소년은 불쑥 나타난 어둠에 놀랐다. 소리 없이 미소 짓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나 소년은 도망치고 싶어졌다. 여느 아이가 그렇듯 달콤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스레 피해야 할 것만 같이 느껴져 두려웠던 것이다.
“올 줄 알았던 거 있지.”
소년은 부드럽게 그의 손을 감싸는 그녀의 손길에 내빼지 못하고 가만히 섰다. 스스로의 검은 윤곽 속에서 그녀의 두 눈은 홀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한 소년은 저도 모르게 커다랗게 고여 버린 침을 꼴깍 삼키고는 행여나 그 소리가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을까 고심에 빠졌다. 그녀가 짜증이 나서 여기에 가둬버린다면 그러면 부끄럽게도 울음보를 터뜨릴 것만 같았다. 소년은 생각만 해도 코끝이 아려 눈을 떨군 채 하품하는 척을 했다. 손을 보니 그녀의 고운 손이 여전히 포근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재차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 사이를 매만지는 그녀의 손은 가늘고 매끄러웠다. 그러나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전해졌는지 소년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닿은 후로 아무 말 못하고 그렇게 서있던 소년은 이대로는 정말 울어버릴 것 같아 긴장한 손짓으로, 살며시 그러나 급하게 손을 내빼고는 멋쩍게 하품해서 맺힌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손을 내리다 말고 그길로 돌아서 달려 나갔다. 그녀는 히힛거리며 아이처럼 웃었으나 따라오진 않았다. 소년은 출구로 나와서도 계속해서 뛰었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 꼭대기에서야 겨우 멈추고 차오른 숨을 골랐다.
다시 아무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고개만 들이민 채 더운 줄도 모르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