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불
 
합장하고 절을 했다. 온화한 미소의 불상이 난롯불 너머 부드럽게 빛났다. 지그시 감은 눈부터 입가의 곡선, 자연스럽게 편 손가락까지 시선의 테를 그렸다. 불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올려 볼 때마다 불이 흔들리며 그 위에 그림자를 남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불상의 금빛도 눈앞에서 너울거렸다. 절을 마치고 가만히 섰을 때 그때서야 빛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았다. 커다란 쇳덩어리가 움직였을 리 없었다. 그러나 바람보다 찬 불상이라도 조금은 떨어야 할 것만 같은 겨울이었다.
스님은 징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고요하게, 이어 세게 터지는 징소리는 나무의 잠을 깨워줄 것이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먼 새벽임에 시린 맨발과 흘러나오는 입김이 적응치 못하고 안달하는 것이었으나 그러나 나는 거기 가만히 서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으며 외려 이렇지 않은 날이 이상하게 보이리만치 서있었다. 마지막 징소리가 남아 나무기둥이 웅웅거렸다. 사뿐한 발소리에 이어 절을 하는 세 번 가사가 바스락거리고는 목탁이 맑게 울렸다. 스님의 쉰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이 일순 일었다. 산사를 홀로 지키는 목소리는 내게 이유 없이 구슬픈 것이다.
목탁소리에 맞춰 절을 하고 합장하고 절을 하고 다시 합장하고 멈추어 모든 소리가 사라졌을 때,
“갑시다.”
는 스님의 말씀에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나왔다. 발이 시려 급하게 신발을 신고 방에 들었다. 방에서도 스님의 염불이 귓가를 맴돌았다.
어떤 절의 수도승들은 천년이 넘는 세월을 끊이지 않고 말을 한다. 그들 중 누구도 한마디 않고 조용해지는 순간 세상은 멸망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스님이 홀로 지키기 이전의 스님도 하루를 거르지 않고 일어나 염불을 외웠을 것이고 그 이전의 스님도 이 절을 세운 누군가도 원래 있던 곳에서 그렇게 염불을……. 나는 장구한 역사가 흘러들어온 곳이 지금의 외로운 순간임에 갑자기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다시 잠이 들어 밖의 참새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날이 새어 창호지는 이미 흰 막이 되어있었다. 공양시간이 다 되었기에 들려오는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듣고 옆으로 넘어갔다. 밥과 김, 김치뿐인 조촐한 공양이다. 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짐을 챙겼다. 세 번의 절과 합장을 하려 대웅전으로 향했다.
지난번 머무른 절의 범허스님께선 말씀하셨다.
“불가에선 환생을 믿죠?”
“불가에서 말하는 환생이란……. 세상엔, 속세엔 이리저리 아귀 싸움이 많아. 이데올로기, 돈…… 공산주의가 무너지면 그것이…… 옳은가, 그건 아닌 법이라.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그것이 옳느냐. 자본주의가 무너지면 그것이 옳느냐. 그건 아닌 법이라……. 인간이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에 행하는 일엔 문제가 따르기 나름이라. 그래서 환생이란…… 인간을 초월하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한 것이라.”
작은 체구의 스님은 말주변이 없었다. 말보다는 웃는 편을 택했는지 양 볼에 주름이 괴어있었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오래된 미소는 보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스님은 말을 잘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부처께 절을 드리며 마음을 비우는 게야…….”
꺼진 난로 곁의 불상은 차가워 보였다. 손을 대면 부드러운 곡면너머로 한기가 전해져 오지 않을까. 다시금 천년을 생각했다. 내가 이 절을 떠나도 스님은 계속해서 염불을 외고 있을 것이다. 이미 그래왔든 지난 천년에 거기 있던 스님들이 그리고 이 후의 스님들도 염불을 욀 것이고 그 후의 스님도, 때가되어 이 절이 사라지면 어느 곳에서 다시…… 아니, 절을 하는 순간만은 마음을 비우는 거다, 경외마저 비우는 것이다, 나는 노력했다.
산사를 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고 있었다기보다는 흔들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눈앞을 가득 메운 눈은 천천히, 고요히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바람이 눈을 흔들 뿐이다.

비가 내렸나보다. 물소리가 똑, 똑, 들려왔다. 아직 어두운 밤이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어 크게 한번 들이쉬었다. 꽤나 거친 숨이 다시 나갔다. 입에선 쓴맛이 났다. 양치를 하지 않고 잠들었나. 일어나야겠지, 하면서 그냥 누워있었다. 눈 뜬 채로 어둠을 구경했다. 곧 눈이 어둠에 익었다. 누워있는 침대, 책상, 벽에 붙은 앨범커버. 무엇하나 없어지거나 생긴다 해도 얼마간 못 알아챌 익숙함이었다. 어둠 속에서 볼 땐 이것들이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뀌는 것이 없어도 새롭다. 매 초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까지 간 뒤 양치를 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시계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어두운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켤까 망설이다 스위치 밑의 손목시계를 찾았다. 2시 15분.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염불이나 드려볼까……. 신자도 아닌 주제에 너무 장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잎이 진 후의 교정을 거닐었다. 나는 온통 갈빛으로 물든 거리가 좋아 발걸음 따라 부서지는 나뭇잎의 경쾌한 소리에 집중하며 천천히 걷는 것이었다. 사라락, 사라락, 무엇보다도 그 소리, 낙엽의 소리엔 기다림이 배어있었다. 겨울, 황혼, 그 혹은 그녀. 기다리지 않아도 낙엽소리가 들리면 기다리는, 기다려야할 것만 같아진다.
이대로 눈도 비도 한참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눈도 소리가 나는 것이나 그러나 그것은 기다림의 소리가 아니었다.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바로 보며 헤쳐 나가는 소리인 것이었다.
멀리 운동장 골대 쪽을 보니 아직 집에 가지 않고 공을 차는 아이들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아이들이 입은 하얀 티가 펄럭였다. 방금 골이 들어갔는지 왁자지껄했다. 잠시 멈춰 서서 그들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기다리던 낙엽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걸었다. 아까보다 더 천천히 걸었고 부드러운 낙엽소리는 가까워졌다.
“보충이 끝났나 봐요?”
그녀가 내 물음에 반문했다.
“여지껏 기다린 거예요?”
“뭐 이것저것 하다 보니…….”
나는 얼버무렸다. 그녀가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우린 말없이 걸었다. 사라락, 사라락, 가을의 소리는 멎지 않았다. 내가 아직 기다리는 그녀의 또 다른 웃음, 황혼. 해질녘의 노을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줄기를 뿜어내며 눈에 스몄다.
문득, 내가 말했다.
“요즘 들어 꿈을 자주 꾸네요.”
“무슨 꿈이요?”
“글쎄 현실의 꿈이라 해야 하나.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그녀는 웃었다.
“항상 침대에서 일어나요. 매우 뻐근하고, 답답하고. 입 안도 쓰고. 신기하게도 모든 게 진짜 같더라고요. 불을 켜면 눈도 시고.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그런 꿈이요.”
“다시 잠드나요?”
“그렇긴 해요. 그런데……. 누가 불을 켜서 일어나죠.”
“누군지 봤어요?”
나는 웃었다.
“걸읍시다.”
“…….”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교문에 가까워졌다.
“그럼 어떤 느낌이에요, 자각몽을 꾸면? 하늘도 날 수 있거나 보고 싶은 사람,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나요?”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 그런 게 안 되는 것 같아요. 노력한다면야 만들 수 있겠죠. 그런데, 아까 말했잖아요.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고. 그냥 그대로가 좋아서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뜬금없이 하늘을 난다거나 하면, 현실이 아닌 게 돼버리잖아요.”
그녀가 웃었다.
“이미 현실이 아니잖아요.”
“그런가요?”
“나 같으면 이것저것 해볼 것 같아요. 하늘도 날고 물 위도 걸어볼 수 있고…….”
반짝이는 그녀의 눈 속에 투명한 하늘빛이 보였다. 나는 그 일순의 생기에 행복했던 것이다. 거기엔 아이들의 그것이 있던 것이다.
“다음에 한 번 해봐야겠네요. 무척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사랑스러움에 나는 말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더니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뇨. 그러지 마세요.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정류장이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했다. 약속했던 저녁이 이렇게 떠나자 못내 아쉬웠다. 기다리며 어깨를 감쌌다.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누군가 내 이름을 멀리서 부른다면, 수화기 너머, 오랜만에 수화기 너머 듣는 목소리가 있다면 스쳐지나가는 무엇이 있기 마련이었다. 떨어지고 싶진 않으나 그러나 만약 그녀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면 무엇보다도 이 달콤한 향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었다.
기댄 그녀가 말했다.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요?”
“뭐가요?”
“꿈속에서요.”
“파란색이요. 첫날이었을 거예요, 아마. 예뻐 보여서 파란색을 입으라 말하고 싶었는데, 뭐 이미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이브닝드레스 같은 거였어요. 평소에 입긴 무리가 있죠.”
버스가 오고 손을 놓았다. 뒤쪽에 앉은 그녀에게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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