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코리건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크리스 웨어 지음,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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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지미 코리건에 관한 이 책에 대해서 국내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실제로 만화가이자 예술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 크리스 웨어Chris Ware에 대해서조차 거의 소개된 적 없으니까. 그렇다고해서 우리네 인생이 다른 이들보다 더 비참한 것임이 증명되진 않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읽을만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으니, 꼬리뼈도 제대로 집어넣지 못한채 육해공을 활보하는 다윈의 자손들에게 이쯤은 가볍게 무시하더라도 죄가 되진 않으리라. 게다가 작가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이를 읽는다고 해서 삶이 한껏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이 가설은 어느 정도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 책의 소개에 쓰여진, 그리고 앞으로도 쓰이게 될 찬사들만으로도 수많은 잉크와 종이가 소비된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미디어의 현학적인 과장에 질려버린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10년이 다되어가는 수상 내역과 진부한 후렴구처럼 붙어있는 '최고''새로움'이니 하는 소리들은 출판 홍보팀의 역량 증명과 소비 충족 효과를 위한 최면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하물며 이 이름없는 독자가 붙여놓은 한 페이지짜리 소개서 따위는, 실로 아무것도 아니거나, 화려한 광고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었던 실용물에 실망한 구매자가, 실망을 안고 혼자서 외로이 죽을 수는 없다는, 혹은, 일반 도서의 두 배가 넘는 금액 손실에 힘입어 자기 만족과 과시욕에 취해 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그런 야멸찬 의도에서 작성했다고 의심해 볼만하다.

  당신의 공정하고 적절한 의심을 다시금 의심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것을 재고할 기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당신은 충분히 의심해야 할 것인데, 왜냐하면 나 역시 그 길고 긴 예술사의 패배자들과 더불어 천재들에 대한 애증과 천재적 작품을 향한 동경과 질투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확실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이자 가장 외로운 어른이며, 무엇과도 교류하지 못한 채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 상상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내는 지미 코리건에 대한 이 책이,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예술 작품들과 텍스트들을 뛰어넘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분명 거짓말이다. 대신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이자 가장 외로운 어른이며, 무엇과도 교류하지 못한 채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 상상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내는 지미 코리건에 대한 이 책은, 만화이기 때문에 다른 예술 작품들과 텍스트들을 뛰어넘어 지닐 수 있는, 그러한 깊이에 도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전달하는 이야기와 이미지의 흐름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따라서 연결된 각 프레임 간의 관계는 그 자체로 해석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문자와 이미지의 관계는 통상적인 이미지-말풍선이 가졌던 담화-구상의 종속 관계를 벗어나 일러스트레이션, 타이포그래피, 사전적 활용, 종이접기, 카드놀이 등등의 형식으로 옮겨가며 자유롭게 연관되어 있고, 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극적인 집약, 자유로운 시공간적 이미지 전환은 물론 종이의 여백과 양면까지도 활용된다. 요컨대 여기에는 이미지와 그것의 구성이 갖는 시각 효과 자체가 어떻게 보조적인 수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는지, 나아가 한 권의 책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놀라운 시도들이 담겨 있다. 즉 그것은 오직 인쇄된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그것만이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에 비례하여, 이 책을 읽는(보는) 것은 분명 쉽지만은 않다. 아니, 그것은, 이를테면 우리가 연속되는 이미지를 볼(읽을) 때 발휘하는 특유의 직관을 새롭게 확장시키기를, 그러니까 어느 정도 새로운 방식으로 볼 것을 요구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겁먹거나 경건해질 필요는 전혀 없는데, 왜냐하면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매우 직관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풀어 놓기 때문이다. 지미'들'의 이야기가 시공간적으로 연결되고 배치되는 방식, 그들의 가계에 대한 추척이 시각적인 연결을 통해 제시되는 방식, 상상과 현실의 교차가 사건들 안에서 전환되고 확장되는 방식 등은 난해하고 지루한 퍼즐, 추상적인 작가주의적 묘사가 아니라 직관적이고 경쾌한 -- 동시에 상당히 치밀하고 냉소적인 -- 농담에 가깝다. 여전히 그것은 만화책이고, 오후 3시의 어설픈 기대와 버림받은 추억, 대기실의 지루한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상의 선택인 셈이다. 

  습관화된 지성과 감각의 사용법들을 재고하는 것 이외에 특별히 주의할 사항은 없으며,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 중 대부분은 작가와 편집자들이 정도껏 대비해 놓은 상태이다(그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책 안에 포함된 안내서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이름없는 독자의 부질없는 찬양과 해설은 한갓된 사설에 불과하다. 『지미 코리건』은 이런 이야기들이 있건 없건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좋은 책이며, 설사 이에 반대하더라도 굉장히 독특하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다시 한번 크리스 웨어의 작업에게 경의를 표한다.



첨언 : 책의 각 부분들을 다 읽고, 표지까지 펼쳐본 후에도 도저히 지미의 가계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다음 웹페이지를 방문해보는 것이 좋겠다. (주의 : 그러나 아래와 같은 방식의 표현은 이 "책"이 지닌 본래의 매력과는 별개의 것임을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www.acmenoveltyarchive.org/media/video/159.swf



 

onoma.tistory.com/7 (이상은 블로그에 작성된 리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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