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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
포리스터 카터 지음, 김옥수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다룬 책이 많이 나온다. '인디언'이란 말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착각한 데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아메리카라는 땅이름조차 원주민의 이름이 아닌 백인 중심의 이름이다. 원주민들은 그 땅을 무어라 불렀는지 궁금하다.
북미 원주민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알려진 것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일 것 같다. 이 책은 70년대 말에 번역되어 나왔다가 최근에 다시 나왔다. <운디드니>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멸망사라면 <몽골리안 일만 년의 지혜>는 북아시아에서 알래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원주민들의 구전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 밖에도 여러 권의 책들이 있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제로니모>이다. 이 책을 쓴 포리스트 카터는 원주민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 원주민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던 이야기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아주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쓰기도 했다.
<제로니모>는 아메리카 원주민 가운데 가장 용맹했던 부족인 아파치족의 마지막 전사 제로니모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살아 남은 원주민의 증언과 미군과 멕시코군의 전쟁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제로니모가 활약했던 시대는 이미 북미 원주민들이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른 19세기 끝무렵이었다. 오랜 투쟁에 지친 원주민 종족들은 백인들에게 투항하기도 하고 화해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백인들의 정책은 분명했다.
'인종 말살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올해 우리가 더 많이 죽일수록 내년에 죽일 숫자가 그만큼 줄어든다.' (셔먼 장군)
'모든 기독교 문명 정부가 그렇듯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이들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리는 것밖에는 없다.' (워싱턴의 인디언 관리국 국장 E. A. 그레이브스)
제로니모의 본디 이름은 하품하는 남자라는 뜻의 고크라예이다. 제로니모는 멕시코 마을 카쉬예의 수호성인 이름인데 고크라예가 자기 가족과 종족을 학살한 카쉬예 마을을 공격할 때 얻게 된 별명이다. 제로니모는 멕시코와 미국의 백인들에게는 잔혹한 아파치족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제로니모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어디에도 평화로운 삶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로니모의 첫 번째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백인들에게 학살되었을 뿐 아니라 두 번째 아내와 자식도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었다.
제로니모는 전쟁 주술사로서 아파치 부족들을 이끌고 멕시코와 미군을 상대로 하여 싸움을 이끌어가지만, 나중에는 아파치족들조차 보복과 학살이 두려워 제로니모를 따르지 않게 된다. 제로니모는 마지막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죽음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종족을 이끌고 시에라 마더(어머니 산)로 탈출을 시도하다. 쫓고 쫓기는 탈출 과정이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되는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일만 년 전쯤 북아시아에서 건너간 우리 형제들이다. 그이들은 새로운 대륙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백인들은 그이들의 땅을 '발견'하고 그이들을 죽인 다음 그 땅을 차지하였다. 자신들에게 살 권리를 달라고 간청하는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은 대답한다. '인디언은 인간이 아니오. 법으로 정해져 있소.'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 뒤로 이 땅에서 미국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백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백성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과연 저들이 '무죄'인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