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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피터 마쓰는 보스니아 전쟁을 취재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그 전쟁의 바탕에는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원심력으로 작용했던 민족주의가 깔려 있지만, 사실은 민족주의나 종교 같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고 영토를 넓히려는 정치가의 탐욕과 그에 놀아난 대중의 어리석음이 있음도 알게 된다.
보스니아 전쟁을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은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유엔의 어처구니없는 처사였다. 사라예보 주둔 유엔 사령관 맥킨지 장군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모두 나쁘니까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르비아는 유엔을 속여 인종 청소 작업을 돕게 만들기도 했고 유엔의 구호 식량은 가해자인 세르비아 사람들 차지가 되었다. 심지어는 피난 가는 보스니아 민간인을 유엔군이 탐조등으로 비추고 세르비아 저격병이 사살하는 일도 벌어졌는데 이 모든 일이 유엔과 세르비아 측의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기자는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 사람들의 잔인성만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또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군이 한 행위나 베트남, 소말리아, 이라크, 파나마, 그라나다에서 미군이 저지른 살육 모두 인간의 야수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다만 기자가 놀라는 것은 보스니아에서 무슬림을 살육한 세르비아 사람들이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결혼도 하던 이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도 별로 놀랍지 않다. 6.25 동족 전쟁에서 우리도 얼마나 이웃에게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으니까. 피터 마쓰는 전쟁의 참상을 그려 보여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전쟁 '포르노'를 미워한다. 그는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고 전쟁을 취재하면서도 주검을 피하고 도망 다닌다. 그러면서 그는 묻는다. '왜 많은 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악한 행위를 보고만 있는가?' 그리고 말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지구상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또 일어날 것'이라고.
책의 뒷부분에서 지은이는 전범인 밀로셰비츠 세르비아 대통령뿐 아니라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존 메이저 영국 총리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
오래 전에 읽은 버나드 벤슨의 그림책 <평화>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 이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은 무기의 길, 전쟁의 길이요, 내 이웃을 나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무장 해제의 길, 평화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