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어느 수의사가 기록한 85일간의 도살장 일기
리나 구스타브손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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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2021년 빠르게 급상승한 트렌드 중 하나다. 이제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비건 제품을 찾을 수 있으며 심지어 제작을 촉구하기도 한다. 좋은 흐름이다. 그러나 하나 더 알았으면 하는 건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건강에 좋다’, ‘다들 한다’, ‘동물의 권리 보호’처럼 결과가 아니라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것이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그 이유에 관한 책이다.

_세상은 딱 ‘아는 만큼 보인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도살장에서 기록한 수의사의 85일간의 일기다. 도살장에서 수의사는 ‘상품’의 상태를 살피고 질을 판명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트럭 하나에 260두의 돼지가 실려 오는 순간, 돼지가 몰이채로 얻어맞는 순간, 방혈하는 순간, 배를 가르는 순간에도 그들은 그곳에 있다. 그래서 수의사인 작가가 쓴 책은 상당히 사실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도축장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것 같다. 고작 반년을 살고 끌려온 돼지, 컨베이어벨트에 밀려 이산화탄소실로 갇히는 돼지, 머리, 내장, 피.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데도 잔혹함에 속이 뒤틀렸다.
놀라운 점은 이 잔인한 상황이 나아진 형편이라는 것이다. 10년 전만해도 매일 6천 두의 돼지를 도축하던 것이 지금은 두 배나 줄었다. 전기봉 대신 몰이채를 사용하게 되었다. 생후 한 달을 사는 닭의 형편도 좋아졌다. 거꾸로 매달려 전기물에서 도살당하는 일이 줄어든 지 17년째다. 나아진 실상이었다.(해당 법안은 유럽기준이며, 2021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기수조 기절법을 유지하고 있다.)
상상보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봤다고 해서 당장 육식을 멈추라는 말은 아니다. 영원한 실천도 불가능할뿐더러, 즉각적인 변화를 만들 실행도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알고 있느냐와 모르느냐의 차이는 크다. 우리는 세상을 딱 아는 만큼 본다. 보는 만큼 공감한다. 그래서 저자는 제대로 알아달라고 말한다. 현실을 말미암아 관심을 갖고, 시선이 모여 무뎌진 현장에 존중이 생길 수 있도록. 동물보호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이젠 도살될 상품이 아닌 우리의 친구와 가족이 된 강아지가 그랬듯이, 고양이가 그랬듯이.

“누군가 말했다. 모든 인간은 동물에게 파시스트라고. 안타깝지만 이 말은 돼지와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스스로는 동물을 지극히 아낀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런 경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니 우리는 지능이 뛰어나며 실제로 수많은 관점에서 인간과 흡사한 이 가축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_최소한의 저항을 선택하는 것은 쉽다.
우리 사회는 지극히 안정적인 체계를 이뤘다. 한강의 기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앞으로 IMF같은 국가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이것이 가장 안정적인 체계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민한다. 잔잔한 같은 지금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지금이 무조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침묵하는 것이 편하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위법행위를 관청에 알려도 뭐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지 않는다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변하자. 자식을 위해 쓴소리를 하는 부모님처럼, 사회에 불편한 존재가 되어 우리 사회가 한 발짝 성장하게 만들어보자.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존재함을 외면하지 말자.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돼지는 자유를 찾아 행복을 느낀다. 이게 진짜 사는 거지! 돼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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