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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추사 김정희 하면 추사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추사 김정희에 대한 다른 부분들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책의 ‘서장’에서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처음 시작부터 의미심장한 표현을 쓰고 있어, 정말 우리가 얼마나 추사 김정희에 대해 알고 있는가를 돌아 볼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추사 김정희는 본관이 경주이고, 이 집안은 조선 후기 내로라하는 가문으로 그래서 추사의 출세에 밑거름이 된 복겨운 환경이었지만 나중에는 가화를 입는 굴레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추사는 1891년 4월 25일 34세의 나이에 대과에 합격합니다. 과거 급제 후 추사의 관직 이동을 보면, 38세에 규장각 대교로 출발해, 41세에는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내려가게 되고, 42세 때 의정부 검상을 거쳐 예조참의에 임명되었고, 44세 때는 규장각의 검교대교 겸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원의 보덕이 되었습니다.
추사는 부친이 유배된 아픔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경 학계와 교류했습니다. 연경으로 떠나는 사절과 역관들은 다투어 추사의 소개장을 받아 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추사가 연경의 학예인들에게 보내는 서신, 탁본, 종이, 인삼 등을 전해주고, 돌아올 때는 또 그들이 보내는 책, 서화, 붓, 먹 등의 선물을 추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추사의 중년 글씨에는 동시대 청나라 서예 사조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스승인 옹방강과 완원은 물론이고 등석여와 이병수, 그리고 건륭 4대가인 옹, 유, 양, 왕의 글씨를 열심히 본받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인영의 상소로 인해 추사 김정희는 겨우 목숨을 구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게 됩니다. 추사에게 내려진 벌은 정확하게 말해서 ‘대정현에 위리안치하라’였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추사는 기약 없는 제주도 귀양길을 떠났습니다.
또, 추사가 북청 유배를 명 받은 것은 1851년 7월 22일이었습니다. 추사의 귀양길은 함흥을 거쳐 북청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추사의 북청 유배는 주군안치인지라 고을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작은 자유가 있었습니다.
만년의 추사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독서하고,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고, 글씨를 쓰고, 벗들을 찾아가고, 벗의 방문을 받는 등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바로 그런 일상 속에서 추사는 오히려 평범성과 보편성의 가치를 몸으로 깨달으며 자신의 인생과 예술 모두를 원숙한 경지로 마무리해 갔습니다.
이 책의 ‘종장’에서는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제목의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글에는 ‘제자들의 애도와 추모’, ‘권돈인의 화상찬과 추모시’, ‘초의스님의 제무’, ‘소치의 묘소 참배와 이하응의 회고시’, ‘『조선왕조실록』의 졸기’ 등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후기’에는 저자인 유홍준 교수의 글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와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필체로 유명한 ‘추사체’와 관련된 여러 현판 등의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더욱 추사 김정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