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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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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농담 같은 세상 속'의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이다. 

사실 사람들이 갑자기 고양이로 변한다면 세상에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혼란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이들이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고양이가 되어도 사랑도, 우정도 변하지 않는다(둘의 경계를 어떻게 명확히 가르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외형이 변한다고 마음까지 변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누군가 내게 남은 생을 고양이로 살겠느냐 묻는다면 고민할 거라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사실 나는 고민 없이 고양이의 삶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양이에게도 고양이만의 애환이, 삶의 고통이 있겠지만 인간보다야 자유롭지 않을까

p.196 고양이가 되고 나니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저 사랑을 하면 사랑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도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홀가분하다. 사랑이 그저 사랑이라는 것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도 된다는 것 역시.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어쩌면 책 속에서 고양이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책의 또다른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과 고양이로 이어진 인연이라니, 낭만적이다.




마지막으로 이름 없는 출판사에 전하는 글을 나 역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 “이 어렵기만 한 세상 속에서 당신들이 지켜온 것들만이 저를 살게 했다고요.”



*래빗홀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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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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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품고 있기에,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과 사랑에 대해, 즉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주 여행이 가능해진 세계인 ‘카두케우스 이야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떠올리게 하는 재난 상황을 바탕으로 한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두 챕터로 나뉘어져 서로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주 단위에서 전개되는 ‘카두케우스 이야기’도, 재난이 닥친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세계도 현실의 세계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상상력이 가미된 가상의 세상이다. 그렇지만 이 두 세계에서 나는 현실과 놀랍도록 닮은 모습들을 발견한다. 


‘카두케우스 이야기’에서는 우주 여행이 가능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도약’이라 불리는 초광속 비행 기술을 독점한 회사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의 독점을 떠올리게 된다. 기술과 권력을 독점한 주체에 의해 자신의 역할과 한계가 정해지고, 수명이 다한 행성에서 태어나 ‘이주’를 해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꼭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의 약자들과 닮아 있다.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세계는 코로나 19를 겪은 우리에게는 이제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이다. 재난 상황 속 보건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SF 이야기에서 상상으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중 현실과 가장 닮은 부분이라면 역시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꿈을 두고 떠나야 하더라도, 평생의 꿈을 포기하더라도 타인을 구하려는 마음(<이사>, <재회>), ‘우주인’으로 태어난 아이가 척박한 행성의 한계를 넘어 우주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돌먼지>),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비 온 뒤>), 곁에 함께 있지 않더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미정의 상자>),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지도 위의 지희에게>), 몇 번의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단 한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현숙, 지은, 두부>) 같은 것들 말이다. 


결국 이 모든 마음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SF라는 광활한 상상력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정의 상자>는 SF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다양한 변주의 세계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래빗홀클럽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하지만 더없이 간절하게, 내가 이 아이에게 처음이 아니기를 기도한다. 이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를 잃어야 한다면, 비명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잔상처럼 눈가를 떠도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때가 온다면,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내가 누구에게도 처음이 아니길.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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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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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해."

몇 장 되지도 않는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다. 자극적인 날것의 묘사들로 이루어져 읽는 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단편들 속의 그 모든 끔찍한 묘사들이 바로 현실의 여성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깨지지 않는 단단한 가부장제의 신화 아래서 여성들은 가장 안전해야 할 집안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 계급과 성별에 묶여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받아내야만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에는 너무 어리고 미숙하고, 그 미숙함을 이용하려는 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투계‘가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계‘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단편들 속의 여성들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함께 겪어내는 듯했다. 그 흡입력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인공적으로 직조된 세계 속에서 현실과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우리 현실을 반추하게 한다. 창조된 세계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찾아나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공포와 경이로움’를 통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장 강렬한 단편은 표제작인 <투계>였지만, 어쩐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편 <알리>였다. <투계>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면, <알리>는 그 무엇 하나 확실히 말하지 않음으로써 짙은 잔상을 남긴다. 상냥한 알리 아가씨가 어느 날부터인가 성인 남성을 두려워하고 소위 미쳐가기 시작한다. 아가씨를 모시던 그 집안의 근무자들은 어쩌면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계급에서 아래에 위치한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묻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알리>는 끝내 알리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내 안에서 온갖 끔찍한 상상이 공포와 함께 퍼져나간다. 여성만이 이해할 수 있을 그 상상 속에 아마도 한 가닥의 진실이 있을 것이다.

<투계>를 읽으며 또다른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페르난다 멜초르의 <태풍의 계절>이 떠올랐다. 두 작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름끼치는, 그래서 자꾸만 책을 덮고 싶게 만드는 날것의 묘사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지나치다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누군가는 분명 이 단편들처럼 ‘투계’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현실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소설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믿는다. 나는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의 현실에 눈 뜨고 싶다. 우리가 <투계>를 통해 진정 깨달아야 할 건 무엇일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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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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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거운 책. ‘이제야‘ 말할 수 있는 아픔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이제야‘가 있을지, 쉽게 소외당하고 지워지고, 모든 책임을 홀로 지는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 세상의 수많은 제야들에게 함부로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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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언어 -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
송은혜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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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는 아니지만 피아노를 친 지 어언 15년이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우연히 발견한 '음악의 언어'라는 책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음악과 인간의 삶에 대해 말하는 33개의 변주곡 같은 이야기가 짧은 에피소드로 실려 있어서 큰 집중력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한평생 음악 속에서 음악과 살아온 사람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오래 사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인데, 저자는 그걸 해내고 더 나아가 우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이 한 발짝 다가오게 만든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가 문장이 유려하고 표현이 굉장히 서정적이다. 문장 자체가 마치 음악 같다. 글을 읽다 보면 매 에피소드마다 소개되어 있는 음악을 찾아 듣고 싶어져서 특별히 좋았던 에피소드의 몇 곡들을 직접 찾아 들어보았다. 위대한 거장들의 연주를 집에서 터치 몇 번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글과 함께 음악을 들으면 감동이 두 배로 밀려온다. 어떤 곡은 저자의 표현과 완벽히 일치하기도 하고, 어떤 곡에 대한 설명은 공감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음악을 듣는 귀는 모두 다르니까. 음악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그대로 흡수하기도 하고 내 태도를 정립하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출판사의 편집 방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독특한 쓰기 방식과 폰트가 오히려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오랜만에 예술을 하는 사람의 예술에 대한 좋은 책을 발견한 것 같아 좋았다.

(침묵에서 시작해 침묵으로 끝나는 모든 음악은 반복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도, 태어나고 죽는 삶도 반복이다. 변주곡은 시작과 소멸뿐 아니라 진화와 변형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우리는 음악이 시작될 때 끝나는 순간이 올 것임을 안다. 하지만 시작과 끝만 바라본다면 고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음악의 언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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