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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해, 이집트 - 30대 싱글 여성의 유쾌한 일상 탐험기
문윤경 지음 / 밀리언스마일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이집트 가이드가 쓴 이집트 생활 이야기다.
난 분명 책을 읽었지만 이 책 이야기가 아닌 내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이집트를 다녀온 것은 작년 10월이다. 난 이집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이집트를 방문했다. 독재정권이 혁명으로 물러났단 이야기와 거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한몫을 했다는 것, 이집트 사람들이 미국인들에게 반감이 많다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다. 나에게 이집트는 과거의 도시, 왕의 도시, 찬란한 황금의 도시였다. 히잡 걸들이 한국드라마를 봤다며 인사를 건네는 이 도시는 나에게 이질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일때문에 고작 일주일 정도 체류했는데, 난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 같다. 이집트. 내가 본 이집트는 이렇다.
실외에서는 모래 먼지가 코를 채우고, 실내에서는 담배연기가 폐를 채운다. 한낮의 열기가 피부와 뇌를 태우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급할게 없다는 듯 뜨거운 차를 수십번 권한다.
교통 체증이 심각하고, 제대로 된 신호등이 없으며, 미친듯이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자동차들 역시 사이드미러부터 창까지 온전한 형태의 것은 보기 어려우며, 폐차장에서 막 도주한 차들과 고급차들이 어지럽게 뒤섞여있다. 안전벨트를 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운전중에도 흡연, 문자, 통화는 계속된다.
남자들은 외국인 여자를 보면 고양이 부르는 것과 똑같은 소리를 내며, 심지어 공항에서도 사람을 세워두고 알수 없는 말을 따라하도록 시키고는 박장대소를 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거리와 하천에는 부패하고 그마저도 바람에 퇴색되고 닳아진 쓰레기들이 천지에 널려있고, 짓다만 건물들이 빼곡하게 서서 거대하고 굶주린 나신을 드러내며 엉켜있다.
그리고 사람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정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패기넘치는 엔지니어들이었지만, 3시가 되자 일언반구도 없이 퇴근을 해버렸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고, 수상했다. 업무중에는 모든 사람이 말을 했고, 모든 사람이 양해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전화를 받았다. 수시로 단 간식을 권했고,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하루에 다섯번 정도는 억지로라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어야 했다. 이집트는 나에겐 그야말로 광기, 혼돈 그 자체였다. 이성적인 해결책이나 기본적인 에티켓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누구도 거기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 이집트는 그렇게 장점이 없단 말인가? 모르겠다. 우선 난 유명한 휴양지인 후루가다나 다합 같은 곳은 방문하지 않았다. 그곳은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난 룩소르나 사막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나에게 이집트는 오로지 쓰레기와, 황폐함, 그리고 사람 사람 사람 뿐이다.
그리고 난 짧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정말 웃기는 일이 일어났다. 난 지금 이집트를 너무나도 그리워하고 있다. 담배연기로 식욕을 잃어 난 이집트 체류 동안 3키로가 빠졌고, 3일째 되는 날은 나일강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식수를 마시고 밤새 설사를 해야했다.(나일강의 물을 마시면 반드시 돌아가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난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마지막날 굉장한 슬픔을 느껴야 했다.
왤까. 나에게 이집트는 너무 늦은 나이에 찾아온 첫사랑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이집트는 무례하고 건방지지만, 어리숙한 남자 같았다. 이 사람들은 이유도 없이 거짓말을 했지만, 악의는 없었고 문제는 이 거짓말들이 도통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거다. 속아줄 수가 없다. 이슬람 특유의 마초본능을 내보이며 여자들한테 수시로 희롱을 걸지만, 막상 말을 걸때는 나쁜 남자 흉내를 내는 어리숙한 소년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이 남자 장점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현대 이집트에 대한 갈증으로 이 책을 찾게 되었고,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다. 작가 역시도 이렇게 저렇게 이집트에 대해 말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유' 가 이런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난 작가가 왜 제목을 저렇게 붙여야 했는지는 알것 같다.
'그래도' 사랑해. 이집트.
개인적으로는 이집트에 다녀온 후 읽어서 좋았다. 사실 책에서 깊이나 어떤 통찰 같은 게 엿보이진 않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내가 느낀 것들을에 대한 비슷한 감상을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난 얼마전부터 이집트 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두달 전부터는 이집트 뉴스를 빠짐없이 보고 있다. 지금 이집트는 혁명 2주년 기념일 이후로 연이은 시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따흐리르 광장에서 부터 대통령 궁, 알렉산드리아와 포트사이드는 최루탄 연기로 가득찼으며, 반정부 시위자들은 새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집트 혁명이 가진 힘과 거기서 부차적으로 생성되는 폭력성, 그로인한 공포가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염원과 별개로 이방인인 날 움츠러들게 한다.
그럼에도 난 아마 조만간 이집트에 다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이유는 없다.
아니 이유가 있다. 그래도 사랑에 빠졌으므로. 사랑해 이집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