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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나를 만나러 가는 날 - Once a Month, I Met Myself
이현주 지음 / 비잉마이셀프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마음이 멈춘 문장이 있었다.
달력에 내 이름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병원 책임자로 오래 일하던 시절, 내 달력에도 온통 남을 위한 일정뿐이었다.
근무, 회의, 업무, 사람들, 책임감. 내 이름은 없었고, 내 마음도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은 많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점점 흐려졌다.
그때의 나는 일을 잘해내는 사람이었을지는 몰라도,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래 버틴 만큼 괴로웠고, 괴로웠던 만큼 나를 잃어갔다.
그래서 이 책의 시작이 유난히 마음에 닿았다.
작가가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 찾으려 했던 것처럼, 나도 내 이름을 다시 불러야 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5월에 꼭 그만두리라 마음먹고 퇴사했다.
퇴사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오래 몸담았던 곳이었고, 내가 놓아야 끝나는 관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려놓는 일은 늘 무겁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사 후에는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더 컸다.
진작 그만둘걸. 그 말만 계속 되풀이했다.
지금은 남편과 정비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몸은 예전보다 더 고되고, 하루는 더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런데 마음만큼은 이제야 내가 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 매장을 지켜내던 남편은 그동안 일이 먼저였던 나를 위해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퇴사하고 나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남편 밥이라도 챙기고 싶어 함께 출근했다.
정비에는 관심도 없었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정비만 잘하는 남편 옆에서 손님이 어떻게 찾아올까 막막했다.
그러다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알리고, 기록하고, 보여주는 일.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아 단골 고객이 생기고, 지역 안에서 입소문이 나고, 상도 받았다.
그때 알았다.
나는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거였구나.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조용히 건드린다.
엄마로 살고, 아내로 살고, 누군가를 챙기는 사람으로 살다 보면 정작 내 이름은 달력 가장 바깥으로 밀려난다.
아이 병원, 가족 일정, 남편 식사, 집안일, 해야 할 일은 빼곡한데 내가 숨 쉬는 시간은 적혀 있지 않다.
작가는 그 빈칸을 바라보게 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나를 만나러 가는 날을 만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임신 전부터 병원 일을 시작했고, 아이 둘을 시댁에 맡기며 일만 해왔다.
그 시간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나는 그 방식밖에 몰랐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지금은 여유가 생겼지만 아이들은 친구가 더 좋은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먹먹했다.
내가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믿었던 시간 속에서, 어쩌면 나도 나를 오래 비워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작가가 자신의 꿈을 다시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부러우면서도 용기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지우지 않고, 나라는 이름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6권의 책을 자가출간해서 간직하고 있고, 매일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내 미래를 또렷하게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됐다.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앞으로의 내 달력에는 어떤 이름을 적고 싶을까.
이 책은 거창하게 인생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칸이라도 나를 위해 비워보라고 말한다.
달력 속 빈칸 하나, 조용히 걷는 시간 하나, 좋아하는 일을 떠올리는 순간 하나.
그런 작은 시간이 결국 나를 다시 데려오는 길이 된다고 말한다.
엄마라서, 아내라서, 일하는 사람이라서 내 이름을 미뤄두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나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에게, 다시 나를 만나러 가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