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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웨이 - 남겨진 세 사람의 기록
김강토 외 지음 / 부기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엄마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운구차에 올랐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엄마가 정말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날의 공기와 마음은 여전히 또렷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
백세희 작가를 떠나보낸 연인 김강토, 오랜 친구 이수현, 동생 백다희가 1년 동안 써 내려간 기록이다. 세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의 글을 읽어주며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했다. 같은 사람을 떠나보냈지만 슬픔을 견디는 방법은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달리며 버텼고,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며 추억을 떠올렸고, 누군가는 남겨진 작은 생명을 돌보며 하루를 살아갔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더 깊이 다가왔다. 무언가를 먹다가 떠난 사람이 생각나고, 길을 걷다가 익숙한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고, 기쁜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해서 세상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남겨진 사람은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나온 시간과 너무 닮아 있어 책을 덮고 눈을 감아보기도 했다.
특히 연인 강토의 기록을 읽으며 슬픔을 악착같이 참아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병원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동료들의 슬픔을 가장 먼저 함께했던 사람이었지만 정작 엄마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는 누군가를 원망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 마음을 돌보기보다 병원에서 맡은 역할과 책임을 먼저 생각했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쉬지 않고 바로 출근했다. 평소처럼 일하고 사람들을 대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퇴근 후 혼자 차에 오르면 그제야 참았던 감정들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허탈함과 그리움에 울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마음껏 슬퍼할 시간조차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을 지나며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지켜야 할 관계는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당장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마지막 근무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도 2년을 더 내 본분에 충실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견디는 과정이자 나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책에서 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는 모습을 보며 슬픔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움직이고, 누군가는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간다.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니다.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덜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엄마가 떠난 뒤 한동안 아빠를 엄마라고 부르곤 했다. 너무 익숙해서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었다. 그 짧은 순간마다 엄마가 없다는 현실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습관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함께했던 시간은 끝났는데 몸은 여전히 그 사람이 곁에 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생일에 관한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일이 서글퍼졌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엄마는 없는데 나 혼자 축하받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슬펐다. 그렇게 해마다 생일을 특별한 날로 여기지 않고 지나보내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마음을 다시 마주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슬픔을 이겨냈다는 결말을 서둘러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흔한 위로 대신 여전히 그립고 아프지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웃는 날에도 슬픔은 찾아올 수 있고, 행복한 순간에도 떠난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애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닿았다.
제목에 담긴 의미도 인상 깊었다. 한번 버터가 된 우유는 다시 원래의 우유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후의 삶도 그렇다. 이전과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조금씩 찾아갈 수는 있다. 상실은 단순히 누군가의 빈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의 삶까지 바꾸는 일이었다.
살아생전 엄마는 힘든 병원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때는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엄마의 말을 조금씩 실천하며 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내 일상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이 됐다. 마음이 힘든 날이면 책을 펼치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은 문장 속에서 위로받는다.
어쩌면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도 엄마가 남아 있는지 모른다.
세 사람의 글이 유난히 먹먹했던 이유는 떠난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이어지는 기록 때문이었다.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하고, 함께 웃었던 시간을 떠올리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나 역시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완전히 극복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는 것도, 때로는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는 것도 남겨진 사람의 삶이다.
이 책은 떠난 사람을 잊는 방법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랑을 이어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세 사람의 평범한 기록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없는 삶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앞으로도 그리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리움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
떠난 사람을 기억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일. 그것 또한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