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의 선장들 - 당장의 삶, 다가올 죽음, 그 사이를 채운 책에 관한 216일간의 대화
김새섬.김진경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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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었던 터라 그의 아내인 김새섬 대표의 암 재발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책으로 만난 작가의 가족이 겪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나 역시 가족의 죽음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남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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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김새섬 대표와 김진경 작가가 216일 동안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특별한 용기를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죽음보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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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김진경 작가는 커다란 풍랑을 마주한 김새섬 대표를 선장으로 바라본다. 자신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구경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그 생각은 달라진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마주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조금 먼저 거센 파도를 만났을 뿐, 우리 모두 이미 각자의 배에 올라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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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가족의 죽음을 여러 번 지나오면서 내일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미루지 말고 지금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하루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정말 내 마음에서 시작된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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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새섬 대표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병을 대하는 태도가 담담하다고 해서 두려움이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삶을 대하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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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삶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에 비유된다. 가는 길에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고, 애써 찾아간 곳에 기대했던 보물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 방향을 향해 배를 움직이는 일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와닿았다. 결과가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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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행복한 결말을 위해 오늘을 견딘다. 조금 더 안정되면, 여유가 생기면, 모든 일이 해결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완벽한 순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먼 훗날의 결과보다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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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김새섬 대표와 장강명 작가가 매년 12월 31일 서로 유서를 쓰고 읽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서로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전한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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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편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것을 왜 쓰느냐는 반응이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부부라도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게 유서는 불길한 미래를 준비하는 글이 아니라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는 편지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지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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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좋았던 또 다른 점은 두 사람이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경험을 다른 사람이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함께 이야기하며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간다. 책은 삶의 정답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바라보게 하는 나침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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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이 특히 반가웠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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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죽음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과 고통은 분명 두렵고 부당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 책은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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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 대표의 태도에서 용기를 발견하면서도 그 용기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마음도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두 사람의 대화가 더 진실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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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으로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리움은 시간이 지난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평범했던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뒤늦게 깨닫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반드시 슬픔에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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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끝날 삶이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하고 싶은 일을 지나치게 미루지 않고,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다.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지금을 더 깊이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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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이 필요한 사람,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책이 삶에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기억과 마음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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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서도 난파선이라는 비유가 오래 남았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이미 내 인생이라는 배에 올라타 하루하루를 항해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풍랑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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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 오늘을 살아갈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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