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 비어 있나요? - 피렌체, 사람, 그리고 나…
Tamara(김유경) 지음 / 초비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멋진 풍경을 매일 보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예쁜 골목을 걷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다른 나라의 여유를 누리는 삶이라고 쉽게 상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여행으로 잠시 머무는 곳과 삶이 되어버린 곳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이 책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순한 해외살이 에세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자기 자리를 만들었던 사람이 낯선 나라에서 아내, 엄마,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읽는 동안 예쁜 풍경보다 한 사람의 마음이 더 오래 남았다.
​
아름다운 도시 안에서도 외로움은 생기고, 사랑하는 가족 곁에서도 내 자리를 잃어버린 것 같은 순간은 찾아온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
제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 자리 비어 있나요라는 말은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는 물음처럼 보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다르게 들린다.
​
내 삶에서 내가 앉을 자리는 어디인지, 내가 잃어버린 이름은 무엇인지, 이제 나는 어떤 자리에서 다시 나를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 말처럼 느껴졌다.
​
작가는 한국에서의 익숙한 삶을 떠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전혀 다른 속도의 삶을 만난다. 일과 성취가 중심이던 시간은 가족과 관계가 중심인 시간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낭만이 아니라 혼란이었을 것 같았다.
커리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 어느 순간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 안에 머물게 될 때, 그 안에서 흔들리는 마음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
특히 작가가 자신의 힘듦을 스스로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던 장면들이 마음에 남았다.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다른 문화에 적응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면서도 괜찮은 척해야 했던 마음이 느껴졌다.
​
사람은 때때로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힘든 줄도 모른 채 버티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힘듦을 알아봐주는 순간에야 비로소 무너지고, 또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 것 같다.
​
엄마를 떠올리는 장면도 깊게 다가왔다.
엄마가 없는 자리, 엄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누군가 언니처럼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먹먹했다.
​
나 역시 엄마를 갑자기 떠나보낸 사람이라 그런지 그 부분에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
엄마라는 존재는 살아 있을 때도 크지만, 떠난 뒤에는 더 넓은 빈자리로 남는 것 같다.
그 빈자리를 완전히 채울 수는 없지만,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다정함으로 하루를 견디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에서 피렌체는 관광지가 아니라 회복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카푸치노와 골목과 사람들의 온기가 나오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작가가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배경이었다.
​
타국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의 학교생활,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오래된 상실까지 모두 작가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 천천히 묻게 만든다.
​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역시 인상 깊었다.
빠른 성취보다 안정적인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엄마인 내게도 오래 남았다.
​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더 많이 시키고 더 빨리 끌고 가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뿌리를 믿을 수 있게 곁을 지켜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가 낯선 교육 방식 속에서 배운 것들은 단지 외국 생활의 차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
읽는 동안 나도 내 자리를 생각했다.
병원에서 오래 일하던 나, 엄마를 떠나보내고 책을 붙잡게 된 나, 지금은 다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는 나를 떠올렸다.
​
사람은 한 번 정한 자리에서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밀려나고 다시 앉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낯선 나라에 사는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
지금의 내 자리가 어색한 사람, 예전의 내가 그리운 사람, 가족 안에서도 혼자라고 느껴본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
화려한 문장으로 감정을 밀어붙이는 책은 아니었다.
대신 차분하게 자기 삶을 꺼내놓고, 그 안에서 독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는 책이었다.
​
읽고 나면 피렌체에 가고 싶어진다기보다, 내 삶의 빈자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제는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앉혀주고 싶어진다.
​
이 책은 여행이 아닌 삶의 기록이었다.
​
장소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였고, 이방인의 외로움이 아닌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
지금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한 사람이라면 이 책이 조용히 말을 걸어줄 것 같다.
​
비어 있는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가 앉아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