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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부신 그들의 세상을 - 기억이 사라질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유은영 지음 / 더케이북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치매와 알츠하이머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병원에서 오래 일했던 시간도 있었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을 가까이서 본 기억도 있어서 더 쉽게 넘길 수 없는 주제였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은 병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기억이 흐려진 뒤에도 한 사람 안에 끝까지 남아 있는 마음과 존엄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력으로 판단할 때가 많다. 이름을 기억하는지,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지로 그 사람의 상태를 먼저 본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능력이 줄어든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 있고, 마음에 남은 온기가 있고, 누군가를 향해 반응하는 아주 작은 떨림이 남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읽으면서 내가 만약 기억을 잃는다면 무엇이 끝까지 남았으면 좋을까 생각했다.
나는 사랑받았던 기억보다 사랑했던 마음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엄마를 그리워했던 마음, 아이들을 안아주던 마음, 책을 읽으며 나를 붙잡던 마음,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어 했던 마음이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주었으면 했다.
이름을 잊고 날짜를 잊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끝까지 사람답게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 치매 어르신들의 행동은 겉으로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갑자기 화를 내고, 자꾸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 모습은 돌보는 사람에게도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행동을 단순한 문제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
그 안에 불안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잃어버린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행동보다 마음을 먼저 보려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돌봄을 하는 가족의 마음도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한다고 해서 매 순간 다정할 수만은 없다. 사랑하는 마음과 지치는 마음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를 사랑하면서도 힘들 수 있고, 곁을 지키고 싶으면서도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그 마음을 부끄럽게만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위로였다.
돌봄은 완벽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다시 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람을 판단할 때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효율과 능력인 것 같다.
말이 빠른 사람, 기억을 잘하는 사람,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을 더 괜찮은 사람처럼 여긴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는 그런 것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느리게 말하고, 자주 잊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그 삶이 덜 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가장 약해진 순간에도 한 사람의 존엄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다.
평소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도 다시 보였다. 내가 가장 그리워할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익숙한 집을 알아보는 일,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일, 좋아하는 책을 펼치는 일, 밥 냄새를 맡는 일,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게 대답하는 일일 것 같다.
너무 평범해서 고마운 줄 몰랐던 것들이 사실은 삶을 붙들어주는 가장 큰 기둥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제 식판을 조심히 건네는 손, 기다려주는 눈빛, 같은 말을 다시 들어주는 마음이 먼저 생각난다. 존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병명보다 사람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는 태도가 떠오른다.
기억나는 문장은 나는 지금 당신들을 잊어가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아름답게 지고 있는 중입니다 라는 말이었다.
이 문장 하나가 이 책의 마음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치매를 무섭고 슬픈 이야기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잊어가는 사람의 세계도 여전히 눈부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안아준다.
가족을 돌보는 사람, 노년의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 부모의 늙어감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오래 마음에 남을 책이다.
읽고 나면 누군가의 느려진 걸음을 조금 더 기다려주고 싶어진다.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도 사랑은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는 책이다.
헤스티아(@hestia_hotforever)가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더케이북스 ( @the_.kbooks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