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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부 - 쉽게 미워하고 오래 사랑하는 계절에게
백가희 지음 / 클랩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여름은 늘 가볍고 환한 계절인 줄 알았다.
뜨거운 햇살, 푸른 바다, 오래 남는 휴가의 기분 같은 것들로만 기억되는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여름은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품고 있는 계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쉽게 미워하고, 쉽게 지치고, 쉽게 외로워지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사랑하게 되는 계절.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여름을 예쁘게 말하는 책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온 마음들을 조용히 꺼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처음 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느낀 건 문장의 온도였다. 문장이 뜨겁게 밀어붙이지 않고, 조용히 곁에 앉아 안부를 묻는 느낌이었다.
지금 너의 마음은 어디쯤 가고 있냐고, 그때의 사랑은 잘 흘러갔냐고, 혹시 아직도 혼자 붙잡고 있는 마음은 없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꾸 내 지난 계절들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좋아했던 날도, 미워했던 날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지만 사실은 마음 안쪽이 오래 흔들렸던 날도 생각났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사랑을 너무 아름답게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랑은 분명 다정하고 따뜻하지만, 때로는 나를 잃게 만들고,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끼게 하고, 미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데려온다. 누군가를 완전히 사랑해버렸을 때 오히려 내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억지로 괜찮다고 덮지 않는다. 사랑이 남긴 밝은 장면뿐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던 서운함과 외로움까지 함께 바라본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여름을 사랑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나에게도 여름은 마냥 즐겁기만 한 계절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괜히 누군가가 미워지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내가 미워했던 건 계절이 아니라 그때의 내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지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시간이 더 버거웠던 것일 수도 있었다.
백가희 작가의 글은 감정을 크게 흔들어 울리는 글이라기보다, 이미 흔들리고 있는 마음을 천천히 알아봐 주는 글에 가깝다. 괜찮다고 말하기보다, 네가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해주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래서 책장을 빨리 넘기기보다 한 페이지씩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문장은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게 했고, 어떤 문장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사랑에 대한 글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글이고, 사람을 사랑하며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글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은 꼭 누군가에게 닿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일.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내 삶을 다시 살아내는 일. 오래 미워했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그 시간마저 내 계절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 그런 것들이 모두 사랑의 다른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지나면 계절은 바뀐다. 하지만 어떤 마음은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이 책은 그 지나가지 못한 마음에게 억지로 빨리 괜찮아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묻는다.
너의 여름은 어땠냐고. 그때의 너는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아직도 품고 있냐고. 그 질문이 참 다정했다.
사랑이 어려웠던 사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결국 그리워했던 사람, 지나간 계절을 아직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오래 붙잡게 될 것 같다.
나 역시 여름을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되었다. 뜨겁고 지치는 계절이 아니라, 미움과 사랑이 함께 자라던 계절로. 그리고 언젠가 다시 여름이 오면, 그때의 나에게도 조용히 안부를 물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