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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mai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하녀가 원작이 있다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견들이 원작 하녀에서는 '모티브'정도만 따왔다는 것이고, 내가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하지 않겠다.

- 왜 굳이 가정부가 아닌 '하녀'일까?
하녀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유아교육과를 나와 시장에서 일을 하던 은이(전도연)가 우연한 기회에 훈과 해리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임상수 감독은 굳이 '가정부'라는 말 대신 '하녀'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원작의 타이틀에 충실하기 위함이었을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본다. 작품의 사건 발단은 '하녀' 은이가 이 집의 주인인 훈(이정재)과 육체적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가정부 라는 말 대신 '하녀'라는 단어에는 은밀한 Sexual 상징이 있다. 가정부 라는 말에선 찾기 힘든,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아랫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돼있는 것이다.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 그리고 여자. 이렇게 해석이 되기에 훈과 은이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 하녀,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
사실 훈의 가족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로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이 가족에게선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나온 가족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에 반해 은이와 병식(윤여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극히 현실적이라 우리네 모습과 닮아있다. 새파랗게 젊은 안주인(해라)에게 '조동아리를 나불대요'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이 집에서 '하녀'로 있는 병식은 아들의 검사 임용고시 합격 소식에 기뻐하는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이다. 작은 집을 갖고 있지만 이를 세 주고 자신은 누군가의 '하려'로 고용돼 일을 하는 은이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과 같다.
극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되는 병식은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낮동안 내내, 그들 앞에서 내내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 말하는 병식은 밤이 되면, 그들이 사라지면 환호성을 지르며 스스로의 자유를 만끽한다. 이는 은이도 마찬가지다. 훈의 가족들 앞에서는 깎듯이 하녀의 모습이지만 집 안에 자리잡은 자신의 공간에서는 구두를 마음대로 벗어놓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잠을 청한다.(이는 훈을 기다린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것과 함께 이 집엔 당연히 계급이 존재한다. 이 계급 사회는 자본으로 구분된다. 은이와 관계를 가졌던 훈은, 아니 훈 뿐 아닌 이 집안 모든 식구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이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 문제 뿐 아니라 이 집 식구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한다. 병식의 아들이 검사 임용고시에 붙은 것을 '인간 승리'라고 얘기하며 '축하'해주지만 스스로 '인간 승리'라 칭한 일을 이들은 또 다시 돈으로 축하한다.

- 끔찍한 결말, 하지만 사회를 향한 감독의 따가운 질책
(결말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은이가 '찍소리는 내봐야죠.'라고 말하는 그 때에. 오프닝이 생각나서였다. 훈의 아기를 임신한 은이를 향해 해라와 그 엄마에 온갖 음모로 인해 은이는 뱃속에 아기를 지우고 이를 또 돈으로 해결하려는 가족들 앞에서 자살을 한다. '나리야, 아줌마 기억해줘야 해.'라는 말과 함께.
파격적이었지만 예상했던 결말이기에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렇다. 이게 현실이었다. 매일같이 뉴스를 떠들썩하게 하는 '생활고에 못 이긴 가장의 자살.'. 스스로의 목숨을 거두는 방법. 이게 바로 은이가 말한 계급 사회에서 하층 계급의 '찍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동정하며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병식. 불의인 줄 알고 있지만 자신이 나서서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병식의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임상수 감독은 단 두 명의 등장인물에 우리네 모습을 소름끼치게 잘 반영해놨다.
클로징에선 영어를 쓰며 나리의 생일 축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아. 그럼 의문을 가져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인 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더욱 큰 자본을 갖고 있는 나라의 언어인 영어를 써가며 생일을 축하하는 이들. 자아. 그럼 이 계급사회에서의 하녀는 누구인가? 임상수 감독은 이 물음에 답을 관객에게 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