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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으로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손원평 작가는 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해서 그런지 스토리가 탄탄하고 이 책 또한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아몬드( 책 제목이 궁금했다.)가 주는 의미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나에게 아몬드가 하나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을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아몬드를 종류별로 심지어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꿰뚫고 있는 윤재에게는 적어도 치료제였다. 편도체라고도 불리는 아몬드 모양을 닮은 뇌 어딘가에 있고 그 작은 것이 우리에게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이 너무 작아서 감정을느끼조 못해서 활자로 학습해야 한다는 거다.
요즘 "묻지마 살인"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고 성폭력등 범죄자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사이코패스 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남자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잘 모르는 아이가 울어도 그 아이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는 "사이코패스" 이 윤재에게도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다.
#2. 가족 엄마 그리고 할멈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워 보였다.
엄마에게 '지은'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그래서였다.
-지은아, 지은아, 부를 때마다 멋들어진 글자를 지어낼 줄 았는데 똑똑해지라고 책을 많이 읽혔더니만 책에서 배운 게 겨우 무식한 남자랑 무모한 사랑에 빠지는 거였다니, 으이그 종종 할멈은 툴툴거렸다.
할멈과 함께 살게 된 엄마가 고른 새로운 직업은 헌책을 파는 거였다.
엄마는 모든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 엄마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워 보였다.
엄마와 할멈은 둘 다 자두맛 캔디를 좋아한다. 두 사람이 자두맛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단 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3. 헌책방
아무 책인든 한 권이라도 빼어 펼치면 낯선 사람의 흔적이 보이고, 가만히 숨을 들이켜면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고소한 나무 냄새가 몸을 휘감았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4. 윤재의 열여섯 생일날. 크리스마스 이브날 사건이 터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를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날 여섯명이 죽고 유일하게 살아 남은 건 엄마였다. 하지만 뇌가 깊은 잠에 빠져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했다.
#5. 심박사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이루기 가장 어려운 가치란다.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고 쉽게 입에 담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나는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P136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삶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 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파레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설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라는 게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이다.
-글쎄요. 남들은 다 본 영화를 나만 못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못 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눌 거리가 조금쯤은 많아지겠죠.
-놀라운 발전인걸. 방금 네가 한 말 속에는 네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의지가 들어 있단다.
P137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건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밝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이 예조차 아직은 네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말 하려는 건....
#6. 곤이를 만나다.
곤이의 본명은 이수다. 그건 그애의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각 P.J 놀란이 한 말이다.
엄마와 할멈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와 곤이는 P.J 놀란 같은 타입이었을까. 아니면 P.J 놀란과 가까운 건 오히려 나였을까.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곤이가 필요했다.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마지막엔 날 안아 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따뜻했냐.
-응, 많이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 머리는 형편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7. 첫사랑 도라를 만나다

그래도 그냥 달리는 거야. 그냥! 사는 거처럼, 그냥
-달려서 뭐하려고?
-나한테 그건 있지, 살아서 뭐하려고, 하는 질문이랑 비슷해. 너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사니?
솔직히 그냥 살잖아, 살다가 좋은 일 있으면 웃고 나쁜 일 있으면 울고,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1등하면 좋고 아니면 아쉽겠지. 실력 없으면 자책하고 후회도 하겠지. 그래도그냥 달리는 거야. 그냥! 사는 거처럼, 그냥!
#8. 읽고 나서.....
손원평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글을 써서 그런가 정말 한편의 영화처럼 책을 읽었다. 아마도 이책의 스토리로 영화를 만들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이 책을 덮고 나서 꾹꾹 눌러 쓰고픈 기억나는 단어들이 있다.
"엄마의 손" "감정" "헌책방" "평범함" "아몬드""달리기"
우리 집에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덩치는 큰데 유치원생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잘 모르는 아이
그런거였구나. 감정은 가르칠 수 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것 같다.
그냥 느끼는 거라고, 슬픔, 기쁨, 분노, 사랑등 모든 감정들은 그냥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엄마는 감정들을 공부하듯이 주입식 교육으로 가르쳤다.
그게 가능한 거였구나.
나도 우리 아이에게 감정을 이야기해주고 가르침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을 공감받지 못한 세대로 자랐고 감정보다 육체의 허기을 먼저 달래야 했던 우리 어른들일지라도 자녀를 양육할 때는 이제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슬픔, 두려움, 불안 이런 나쁜 감정 조차도 그렇게 이름불리면서 그걸 억압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살아있는 징표이기도 하니까, 그런 감정조차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진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한다.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어버리면 부모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손을 놓아버렸을 때 그 아이는 진짜 문제아 된다. 부모로서 "우리도 포기했어요" 이런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아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의 끈을 놓치 않고 간섭이 아닌 그 아이들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아이에게서 우린 인내의 열매를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곤이도 그랬다. 윤재가 그렇게 다가갔을 때 곤이의 삶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따뜻한 우정이야기, 서로 다른 가정 환경에서 서로 상처도 다른 아이들끼리 만나서 풀어가는 따뜻한 사랑이야기. 윤재가 선택한 지금 살아 있는 곤이에게 달려간 이유도 그동안 사건들 속에서 느꼈던 사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윤재 본인을 느꼈던 것도 윤재의 변화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그렇게 서로 관계속에서 윤재는 뇌의 변화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성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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