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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한들
나태주 지음 / 밥북 / 2019년 4월
평점 :
주말부부이며 아이둘을 키우고 있는 직장맘. 올해 3월에 새로운 장소로 직장을 옮기면서, 교통사고도 두번이나 내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봄이 왔건만, 마음이 여전히 황량한 겨울로 직장일도 집안일도 바쁜 시간을 보내며 지쳐있었다.
아침에 한편 읽고 넣으려다가 두편 세편 읽고, 다시 저녁에 와서 펼쳐보고, 자기전 펼쳐보고, 그렇게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풀꽃으로 익히 알려진 나태주 작가님
70세가 넘으신 작가님은 소개할 때, 시에도 나오지만
이렇게 당신을 소개하신다. 아마 유치원생도 기억할 만큼 이름을 쉽게 삼행시가 끝내주는 이름이다. 지금도 자동차 없이 버스 타고 택시 타고 ktx 타고 다니신다 하신다. 고향은 서천이지만 공주에 살고 싶으셨다고, 공주에는 풀꽃 문학관이 있다. 교직에 몸담으시고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하시고, 10대부터 글을 쓰셨다고 한다.
사랑의 아픔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고 하신다.
130여편의 시와 시인의 손글씨를 직접 볼 수 있는 익히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들이 실려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도 시인의 시들이 실려 있다 한다.
짧게는 두줄로 된 시도 있고 두페이지에 실려 있는 시도 있다.
시 ㆍ5
산문은 100사람에게
한 번씩 읽히는 문장이고
시는 한 사람에게 100번씩
읽히는 문장이라는데
어쩔 거냐?
시가 나에게 묻는다.
짧게는 두줄인 시부터 두 페이지에 걸려 있는 시까지, 그림을 보면서, 차를 마시면서, 꽃을 보면서,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삶과 시는 연결되어 시인의 영감으로 재탄생된다.
시인에게도 이렇게 다가오는 시를, 어찌 시 한번 읽었다고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느냐?
가슴 시린날 훅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사랑이 샘 솟는 날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베갯잎을 적시면서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구름을 보면서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꽃을 보면서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상처받고 뒤돌아서서 눈물 글썽이며 들어오는 시 한편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서 편지에 쓰고 싶은 시 한편이 있다.
시 한단어 한문장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곱씹어서 읽게 되는지, 시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감성과 관찰력 사색들이 한데 어우려져 시 한편이 탄생되는 순간, 시인은 스쳐지나가는 한순간의 것들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할까?
찻잔에
반쯤 비어있는 찻잔에
흰 구름을 가득 부어
마시면 어떨까?
더 많이 비어 있는 찻잔에
새소리며 바람 소리를 채워
마시면 어떨까?
일찍이 물이었던 나
바람이고 새소리이고
수풀이었던 너
점점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서
하늘 위에 둥둥 떠오르겠지
우리들 사랑에서도
새소리가 들리고 수풀을 흔드는
바람소리라도 들리면 어떨까.
한들한들 나태주 p36
저녁 9시 집앞에 카페를 열고 들어섰다. 바람이 불지만, 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저녁, 밀크티를 주문했고, 난 흰구름를 마시듯 차 한잔을 들이킨다.
그리고 카페풍경을 살펴본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 공간,
시를 들이키며 마음은 바람처럼 둥둥 떠오르며 감사함이 저녀노을처럼 붉게 따뜻하게 스며 들어온다.
축하해요
날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 그날이 그날
지루하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그래서 때로는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당신,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오래
갇혀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해봐요
기약 없는 여행길 떠나 먼 나라
흰 구름으로 떠돈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지금 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싶겠어요?
나라마 그럭저럭 보내는
그 날이 그 날인 날로 돌아오고 싶겠어요?
축하해요! 축하해요!
당신의 하루하루
아무 일도 없는 무사한 나들을 축하하고
평상의 작은 시간들을 축하해요.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불평불만이 가득했던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운동장에서 노는게 소원이었던 한 아이가 학교 대신 병원에 있어야 했던 아이를 생각할 때
나태주 시인도 많이 아팠기에, 쓸개가 터져 복막염으로 삶의 기로에 서있을 때
아마도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삶이었을음
그리고 그것이 기적이었음을.....
지금 나도 살아 있어서 작은 시간들을 누리는 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시인은 일깨워준다.
너무 외로워 마세요
너무 외로워 마세요
당신 혼자라고 너무 많이 외로워 마세요
언제든 당신 옆에 누군가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신 등 뒤에서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믿으세요
너무 서러워 마세요
작은 일로 너무 많이 서로워 마세요
다른 사람들 당신에게
섭섭하게 대해주면 오히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섭섭하게
대해주지 않았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의 일로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마세요
모든 좋은 일에 끝이 있듯이
아무리 어려운 일 어두운 일에도
언제가는 다할 날이 있음을
부디 믿고 의심하지 마시기 바라요
더러는 발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드넓은 하늘을 우러르로
흐르는 구름 스치는 바람을 느낄 일입니다.
더러는 당신 가슴 안에 그리움의 강물 하나
불러들여 멀리 흐르게 하고
그 강물을 따라가 보기도 할 일입니다.
너무 외로웠다봅니다.
이 시를 읽다보니 시야가 흐려집니다.
시인은 이렇게 위로를 건넵니다. 당신 등 뒤에 누군가 기도하고 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섭섭하게 대해주지 않았는지 살펴보라고 어려운 일도 끝이 다할 날이 있을꺼라고 , 잠시 발길 멈추고 바람도 느끼며 그리움의 강물을 따라가보라구,
지금 이시간이 바람도 느끼며, 내 안의 그리움에 차 있는 강물에 시선을 머금고 조용히 따라가봅니다.
왜 시집 제목을 한들한들이라고 했을까요?
국어사전에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전하고 있는것을 못느낀다고 하죠. 이름없는 풀꽃처럼, 우리의 삶도 이렇게 풀꽃처럼 흔들리며 가는 인생임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사춘기를 겪지 않아서인지 오춘기를 겪고 있는건지 방황하는 시기에 이 시를 만났네요.
그래서 이 시를 읽기전에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다. 시인은 한들한들 살고 싶다고 시인은 그 '한들한들'이란 말이 오래 뒤에 남았고 한들한들이라는 꽃 한송이를 피우고 싶다고 한다.
한들한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했던 여자아이다. 어려서부터 탁월했다. 공부를 잘했고 글을 잘 썼으며 성격이 야무지고 피아노를 잘 쳤다. 자라서 무어든 한 가지 잘 해내는 사림이 되려니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나중에 친구 아이들한테 들으니 아니었다. 피아노를 잘 쳤지만 피아니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영문학자가 된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썼지만 글 쓰는 사림이 되지도 않았다 한다.
다만 잡지사 기자가 되어 잠시 다니다가 좋은 남자 결혼하고 나서 직장을 그만두고 그냥 아줌마로 눌러앉았다는 것이다. 아깝다. 왜 그 애는 그렇게 살까?
친구들 말로는 가끔 좋아하는 가계에 나가 손님들 앞에 피아노도 쳐주면서 한들한들 아무 불평 없이 그냥 아줌마로 잘 산다고 그랬다. 한들한들! 누군가의 삶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이 아니기도 한 한들한들!
유독 그 '한들한들'이란 말이 오래 뒤에 남았다. 왜 나는 그애처럼 한들한들 살지 못했을까? 몇 줄짜리 시를 쓰고서도 꼬박꼬박 이름 석자. 끼워 넣어 세상에 날려 보내며 500년을 고역을 버텼을까!
늦었지만 나도 초등학교 4학년 담임했던 여자 제자 아이가 피우고 있다는 그 한들한들이라는 꽃 한송이를 따라서 피워 보고 싶은 것이다.
인생목표
오늘날 내 인생의
구체적 목표는
욕 안 얻어먹기와
밥 안 얻어먹기
젊어서는
구름 보며 눈물 글썽이기
햇빛 따라 길 떠나기였는데
이렇게 많이 달라졌다.
인생목표 왠지 거창하고 대단한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것과 달리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이미 거장의 시인의 길을 걷고 계시면서, 겸손하게 표현한 문장속에서 이미 그렇게 인생의 목표는 다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면서 세월의 흐름은 우리의 목표와 비전을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서글픈 생각도 스며든다.
시인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시도 몇편있다.
감사
살아서 숨 쉴 수 있음에 감사
너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
목소리 들을 수 있음에 또다시 감사
사랑할 수 있음에 더욱 감사
하나님한테 용서받을 수 있음에
더더욱 감사.
하나님한테 용서받을 수 있음에 더더욱 감사.
시는 읽을 때마다 내 마음에 따라, 내 마음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내 마음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격려와 위로가 되기도 한다.
단어가 문장이 다르게 다가오리라.
그리고 시인의 마음과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책꽂이에 두고 마음에 따뜻한 물을 담고 우린 차 처럼 마음의 맛을 느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