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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당신을 괴롭힐 때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 지음, 칸앤메리 옮김 / 대장간 / 2021년 6월
평점 :
때론 묻고 따지지도 않고, 저자만 보고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런 경우는 저자가 보여준 삶의 진실성, 그가 살아내고, 통과한 ‘이야기’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생각이 당신을 괴롭힐 때』는 괴로운 생각으로부터 해방하는 법같은 한낱 실용적인 이론서들과 거리가 있다. 오히려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리더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겪고, 싸우고, 넘어지고, 얽매였던 사연이 글감의 시작점이 된다. 이처럼, 때론 전쟁사의 이론을 잘 정돈하여 가르치는 ‘교수’보다 전쟁을 치르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통해 굳은살이 박힌 한명의 ‘장수’이야기가 그리운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부제는 의미심장하다. 아마 우리는 그 부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1. 사로잡힌 생각으로부터의 고통
보이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싸움에 대하여, 부제는 우리를 누구나 한번쯤 괴로워했을 법한 이야기로 초대한다. 그럼에도 이 초대는 추상적이지 않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죄악된 생각으로부터 자유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에 이를 수 없다”(20)는 각기 다른 신음으로부터 문제의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 신음이 질투와 원한일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성적인 환상과 퇴행적 행위일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이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몰아치는 신성모독이나 살인과 같은 신자답지 못한 모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믿는 신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하나님은, 사람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따라서 만일 이 책을 집어든 이가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바가 ‘아닌데, 여전히 추상적인데’라고 반대한다면, 되려 되묻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씨름해 본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도하며 씨름하는 사람들에게 읽혀져야 한다. 그리고 저자 또한 서문에서 “이 책이 이렇게 별다른 요란을 떨지 않았는데도, 해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며 이 책을 덤덤히 추천한다. “이 책이 은밀한 죄와 죄책, 두려움 때문에 기도가 막힌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의 소식이 되기를 바란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적싸움에서 위로를, 상처입은 영혼에게 치유를, 죄악된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신다!”
2. 의지의 투쟁 : 끝없는 늪과 보이지 않는 영적세력
그렇다면, 그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문제를 돌파하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죄를 행하는 나를 보는도다.’라는 고백은 우리가 원한다고, 곧바로 해결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실제로 저자는 다양한 독자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것과 ‘자신이 의지를 써써 그리스도를 동원하려한다는 것’의 차이를 좀처럼 구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종의 믿음이냐 행위이냐의 이분법인 것마냥 “그리스도를 노오력해서 믿어야지!” 하면서 ‘믿으려 하는 자신을 믿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별을 위해 ‘의지’와 ‘양심’이라는 단어로 이를 구별하는데, 전자가 자신이 행하는 투쟁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내려놓을 때 들려오는 세밀한 음성에 가깝다.
특별히 필자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투쟁이 ‘내가 더 잘하고, 덜 잘하고’ 같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대놓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사도바울은 말한다. “선과 악의 싸움은 단지 생각의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내 지체에 서로 다른 법이 있다. 죄와 성령간에 벌어지는 이 싸움은 나 개인 뿐 아니라 전 우주적인 전쟁이다”(로마서) 달리말해 저자는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악’이 실재하며, 더 나아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끊어지도록 힘쓴다고 믿는다. 그리고 십자가의 자유는 이를 똑똑히 바라보며, 끊어내고, 돌이키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한 예로, 저자는 심리학적 툴(암시와 자기암시)을 통해 우리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암시는 외부에서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온 감정이나 이미지들이 우리의 생각을 현실화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기암시는 이러한 ‘외부’ 영향에 반응하여 ‘내면’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강화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생각의 덫이란 원리는 강물에 던져진 나뭇잎처럼 흐르고 흐르다가 때론 지하수로 들어가 사라진듯 보이더라도, 어느새 다시 떠올라 우리를 괴롭힌다. 간헐적이든, 반복적이든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심리적 고통을 유발한다. 어떤 경우엔 사력을 다해 사악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할수록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 심하게 휘몰아친다. 그리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처럼 결국에는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절망하곤 한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이겨보려는 의지의 투쟁의 종말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억눌린 생각을 통해 ‘악’이 행하는 전략과 소득은 무엇인가. 전략은 ‘내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희망’이고, 소득은 그렇게 투쟁하다가 힘을 다 소진해버려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를 보지 못하는 ‘자기고립’이다. 저자는 ‘믿음’과 반대되는 ‘의지’를 말하며 경고한다. “믿음없이 지나치게 자기자신에게만 몰입하면, 우리는 모든 ‘동기’를 의심하게 되고, 변화의 ‘희망’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 완전히 멀어지게 됩니다.”
3. 양심의 조명 : 십자가의 용광로와 거듭난 생명의 능력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유혹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이 유혹이냐 죄냐라고 따져묻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양심’이란 바로 이러한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마음” 그리고 “마음의 창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제로 한다. 특별히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이러한 ‘예수님을 찾는 내밀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성령의 조명’과 연결지어 생각하는데, 이는 필자가 보기에 중세 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의 사상에 대한 연관이 있다. 에크하르트는 우리 영혼의 근저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가 영혼의 깊은 조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깐 근대적 사고방식인 마냥 양심을 ‘도덕’이나 인간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는 ‘창문’으로서 거듭난 생명이 깨어나는 장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눈을 뜨고, 십자가를 바라봐야 하는 일”로서 하는 그리스도-됨을 묻는다. 보이지 않는 우주적 전쟁은 십자가의 용광로 안에서 새롭게 직조된다. 즉, 어제의 씨름과 시끄러움, 부끄러움과 두려움 등은 십자가 안에서 소멸하는 정결함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누리는 거듭난 생명의 능력이 된다. 오히려 이를 위해서 타고난 본성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라고까지 말한다. (필자는 이런 부분이 에크하르트의 ‘가난’, ‘경청’을 위해 행하는 완전한 ‘순명’ 사상의 영향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는 “정말 그렇다”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그렇게까지 잘 안되던데”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책의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의식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면의 씨름’을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십자가의 용광로는 ‘그 씨름을 끝장’내기 위해 우리 앞에 놓였다는 사실 뿐이다. 즉, 십자가에서 악의 무리는 사라지고, 모든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히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십자가의 능력을 진리로서 바라보지 않고, 개인적으로 깊이 체험하며, 가슴에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능력과 공허함 사이에서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회개하는 심령으로 “십자가 앞에 죄를 내려놓는 것”, 그것은 우리가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라 ‘십자가 안에서 일어나는 권세와 능력’에 대해서는 우리는 좀처럼 잘 듣지 못했다. 자주 들려오지 못한 이 소리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며 설득력이 없었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왜 공허한 소리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마지막 챕터 <꿈꾸는 삶>은 인상깊은 대목으로 우리에게 머무를만한 화두를 제시한다. “의지의 투쟁은 ‘변덕스러운 감정과 혼란스러운 자기감정’가 씨름하지만 양심의 조명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싸우는 용사들의 파송’으로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그 용사들은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고통 받는 세계 한 가운데서 당신의 십자가를 짊어진다.” 즉, 죄와 분열, 고통과 어둠, 죽음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이제는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결론은 사로잡힌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그리스도에게만 온전히 사로잡혀 있다!
성현철 - #.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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