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진짜로 생각하며 교육한다는 건 어떤 걸까.>
예전에 tvn에서 '수업을 바꿔라' 라는 대한민국 공교육의 미래를 위해 세계 각국의 교실에서 행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을 견학하러 가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챙겨봤었는데, 당시 핀란드 공교육 (#움직이는학교 )을 되게 재미있게 봤었다. 확실히, 그곳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수업이었고 최대한 아이들의 편견 없는 생각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토론과 활동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머리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도록 해주는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학교였다.
이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출연진 중 한 사람이었던 '최태성' 선생님은 패널들에게 물었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양을 빠르게 가르칠 것인가> vs <아이들의 행복을 더 우선시할 것인가>
효율적인 수업과 행복한 수업 둘 중 어느 것을 원하는지 학부모한테 묻고 싶다는 말에, 한 아나운서는 ‘행복한 수업’에 동의는 하나, 조건이 붙는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집도 다 한다면”, “다른 집도 안 하면, 우리 집도 안 합니다.”라고.
이 말에,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 말았었다. 그렇다. 남들도 똑같이 안 해야 덜 불안하니까.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지 못했던 마순영 씨는 자신의 아이가 서울대만 간다면, 계층 이동은 물론, 자신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을 거라 믿었다. 꽃길이 창창하게 열릴 것이라고. 그리고 이 ‘결과’를 위해선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것이 본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이것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저,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이 조건들이 남들과 ‘비교’하게 만들고, 이것이 더 불안하게 만든다.
사실, 지금과 같은 격변의 시대에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교육’,‘공부’는 최악인데, 이런 시대의 흐름에 비해 교육이나 정치는 왜 이렇게 빨리 변하지 못하는가. (간혹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