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법정 관련 책도, 그리고 판사님이 쓰신 책도 나에겐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 읽고나서 법 관련 소설을 읽어볼까도 생각했는데, 오히려.. ‘실격당한자들을 위한 변론’을 더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다. 누구나 법 앞의 평등하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또 뼈저리게 느껴서 그런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고 싶다.

나는 또, 여기서 문득,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이 과연 바른 표현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저 그들도 낱낱의 '사람' 이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러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사는 사람들을 '약자'라고 기본값을 설정한, 사회에 대한 의문이랄까.

무튼, (지금으로서는)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약자’로 했을때 , 우리는 "아 그래. 도와주고 아껴줘야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모두가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야말로 정말 인정넘치는 세상이 될 수 있겠지만, 절대로. 그런 사람만 있을리가 없다. "아 그래, 이 사람들은 이렇게 내버려둬도, 때려도, 무시해도 아무 힘을 쓸 수 없잖아. 그냥 계속 소외된 채로 살아가." 라는 마음이 생길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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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씌여진, 법정에서 일어나는 '잔인한 진실을 외면한 거짓 용서와 일방적 희생(25p)'들의 연속인 '막장' 같은 '구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을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과 함께 처참함까지 몰려왔다. 이런 약자를 구호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품어줄 수 있을 만큼 사회가 성숙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아마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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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양형 이유' 그 전문을 보여주신 것 자체로, 큰 공부.

🗣이주영 판사님은 이 '양형 이유' 에서 법적 평가로 소실돼버린 '구체적 인간'과 그들의 고통 일부를 복원해낼 수 있었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무척.. 나에게는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전문을 보고 있자면.. 판사님만이 이겨내야 했던 그 번민과 고통이 담겨있어 더욱더 감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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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주영 판사님의 의식의 흐름이 귀중한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정말 신기한게ㅋㅋ분명, 어떤 재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판사님의 의식의 흐름대로 쭉- 타고 가다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인간' 이란 뭐지?와 같은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두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탐욕, 공감, 생명, 노동,사랑 등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되는 이 책, 정말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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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견'과 '소문', 그리고 '기억'이 법정에서 어떻게 무섭게 작용할 수 있는지.(거짓이 진실이 될 수 있는 과정.)

🗣’나는 개가 아니다.' 챕터에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작동한 전형적인 사건이 나온다. '편견'도 편견인데... '소문'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소문'을 만들고 그 소문이 진실이 될 뻔한 과정. 그것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법정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의심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신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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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기'라는 챕터에서는 '오기억'으로 인해 죄가 있는 사람도 죄가 없어질 수 있고, 죄가 없는 사람도 죄가 생길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죄가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된 기억으로 인한 진술로 인해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 사례들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해마를 찾아서' 에서도 '오기억'에 대한 실험, 연구와 함께 법정에서의 일화랑 같이 엮어낸 부분이 있었는데..이 책에서는, 실제로.. 이주영 판사님이 겪으신 사례와 함께 어김없이 판사님의 의식의 흐름을 물흐르듯 볼 수 있다. ㅋ🏷그러나 인간은 영약해서 여기에도 대책을 세운다. 바로 오기억이다. 스스로 조작하고 신뢰해 강화한 오기억은 거짓말의 어수룩함을 덮는다. 강력하다. 위증죄의 혐의마저 벗어버린다.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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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리뷰를 적으면서도 내 의식을 부여잡는 생각을 적어보자면..

🖊’다른 삶을 사는 사람', 그저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회가, 그리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지 못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성소수자든 그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 다른 방식을 그냥 존중해주면, 이렇게 잔인한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그들에 대해, 슬픈 단면만을 생각하지 말자고.그들도 행복하고 보람차고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그냥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자고.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을 뿐이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에 얽혀있는 사람들을 그런 규정에 따른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최대한 한 ‘인간’으로 보자고.


🖊'법정'이라는 곳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저들만의 사연과 이유로 거쳐가고.. 그 사연과 이유를 하나하나 다 들어봐야 하는 '판사'라는 직업.... 그렇게 스쳐 보내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몸소 체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체감이 이 책에 다 녹아있다. '인간'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직업이 '판사'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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