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윤지강 지음 / 예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찾고자 몸부림치지만, 인내와 노력의 부족, 환경의 영향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고 그 흐름에 자신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그 흐름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 책은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이, 천부적인 시적 재능을 지녔으나 그 재능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27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간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16세기 조선, 오직 양반 남자들, 그들이 주인인 세상이었다. 모든 일들은 그들의 편리대로 이리저리 맞출 수 있었다. 충효와 더불어 중요시되었던 여인의 정절에 대한 양반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이 책에 등장하는 기생 함초련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어우동은 음탕한 색녀라 해 죽음을 당했고, 소첩은 음탕함을 거절한 죄로 살이 터지고 피가 낭자하도록 맞았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아세요? 어우동은 스스로 남자를 택했기 때문이고, 소첩은 남자를 거절했기 때문이지요. 제게도 정조가 있지만 그것은 제 것이 아니죠. 모두 남자를 위한 것이죠.” (137쪽)
당시 사대부 집안의 여인에게는 조상을 위해 후사를 도모하고 봉제사하는 일이 최고의 가치였다. 여인에게 재주가 없음이 오히려 덕이 되는 세상이었다. 시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초희(허난설헌의 본명)는 그 재능으로 인해 억압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환경의 벽 앞에 좌절하기보다 자신을 가두고 있던 굴레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시댁을 뛰쳐나온 뒤, 그녀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일면들을 보게 된다.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민초들을 보았고, 자신이 진정 바랐던 삶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들 희연, 첫사랑 황연, 그녀에게 시를 가르쳐 준 스승인 이달, 그녀의 삶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오라버니 허봉, 이들은 한 때 그녀의 희망들이었지만, 결국엔 시만이 그녀의 희망이 된다. 시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추스르고, 억압받는 이가 없는 낙원을 노래했다.
조선시대의 틀은 여인들에게는 방패막이기 보다는 쇠창살이었다. 그 강한 쇠창살을 부수기 위해 초희는 너무나 많은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시로써 이겨냈기에 오늘날 그녀는 자신의 시로써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나도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보려고 한다. 오직 돈을 좇고,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고, 다른 사람을 밟고 자신이 올라가려는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초희의 마음으로 시대의 물결을 헤쳐 나가보려한다. 초희의 삶을 인상 깊게 표현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절벽 위의 꽃이 평지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불꽃처럼 짧게 피었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1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