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4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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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4대 임금 세종. 숫자‘4’는 우리나라에서 불길한 수로 여기는데, 세종은 이 숫자에 대한 편견을 넘었기 때문에 역대 임금 중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되어 대왕이라는 호칭을 얻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세종대왕에 대해 많이 듣긴 했지만, [한 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을 통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 공통된 면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요즘들어 드라마, 서적 등 그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 기쁘기까지 하다.




책을 읽으면서 세종의 위대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재를 등용하는 점을 보면, 노비출신 장영실을 발탁하여 많은 독창적인 기계들을 만들게 하여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른 인사등용을 보여주었고, 여러 차례 뇌물을 받아 탄핵을 받은 황희이지만 그의 뛰어난 정무처리 능력을 아껴 정승의 자리에 앉혀두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모습은 그의 정책 방향이 백성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성이 굶어 죽자 고을원을 죄로 다스리고, 조세의 틀이나 국가 재정의 안정보다는 민생을 살리는 것에 역점을 두어 민생이 안정된 후에야 조세를 안정시키는 절차를 밟아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한 점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백성을 위한 세종의 마음은 한글 창제로까지 이어진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에서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한글 창제는 그의 수많은 업적 중의 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을 하나 알 수 있었는데, 한글 창제를 세종이 거의 홀로 진행했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집권층들은 유학을 바탕으로 한 사대주의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한자와 다른 문자를 갖는다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행동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식적으로 문자를 창조하는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을 터, 세종은 다양한 운학 관련 문헌들을 탐독하고, 외국의 서적까지 구하면서 비밀리에 문자 창조 작업을 진행시켰다. 집권 중반기를 지나면서, 이를 위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많은 업무들 중, 세자에게 서무 결제권의 일부를 넘겨주기 시작하고, 육조 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로 변경하였다. 의정부서사제로의 변경으로 육조의 모든 일을 세종이 직접 재결하는 대신 의정부 재상들에게 결재권을 주어 자신은 엄청난 격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세종이 위대한 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태종이 상왕으로 있었던 4년간을 잘 견디어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종은 태종이 자신의 처남들, 공신들뿐만 아니라 세종의 장인인 심온까지 제거하는 상황에서 분명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난관을 잘 헤쳐 나왔기 때문에 태종 사후, 그의 진가가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기란 위험한 기회라고 했는데, 세종은 그 기회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분명 위대한 왕임에 틀림없다. 그의 위대함은 외국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나보다. 10여 년 전 일본의 한 아마추어 천문학자가 소행성을 하나 발견했는데, 세종이 천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그 행성의 이름을 ‘세종대왕’이라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세종의 면을 보면서 인간으로서 본받고 싶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난, 우리의 지도자들에게도 세종대왕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국민들 위에 군림하기를 좋아하는 모습, 선거철에만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 국민들을 섬기는, 그래서 국민들의 이익이 그들의 가장 큰 가치가 되길 소망해 본다. 나만의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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