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얀시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필립 얀시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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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은혜’라는 단어 앞에 위치한 ‘놀라운’이란 말은 중복된 표현인 것 같다. 대단하고 놀랍지 않은 은혜는 은혜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은혜 입은 벅찬 감격을 제한된 문자로 표현하려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은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은혜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하는데, 과연 이 말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기쁨에 넘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텐데, 내 삶 속에는 그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대한 좌절감이나 불평이 더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를 어리석게도 값으로 매기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혜의 값어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를 전해 듣고, 알게 되고, 믿게 된 지 어느덧 거의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내 삶이 그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술과 담배를 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찾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내 삶이 변하는 데는 여전히 많은 진통이 따른다. 앞으로도 더 변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의 신앙생활 기간보다 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필립 얀시의 글에 다른 이들의 사진과 그림을 덧입고 있다. 분량도 많지 않아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많이 들어온 은혜를 이 사람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서문에서 은혜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건 무슨 소린가? 하나님은 공평한 분이신데 은혜가 공평하지 않다고?




책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짧은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 갈 때마다 은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많은 이야기 중 특히, 세상의 왕들은 자신이 잘못을 하면 아래 사람이 대신 벌을 받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반대의 일을 겪으셨다는 글은 내 가슴속 깊이 박혔다. 내가 죄인이고,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셨고, 그래서 나를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나를 용서하셨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비유 중 두 명의 빚진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돈을 빚졌는데, 두 사람 모두 빚을 탕감 받는다. 그렇다면 이 둘 중 누가 더 감사하겠는가? 뻔한 답이다. ‘공평’은 논리 정연한 것이 아니다. 물품이나 서비스의 값은 각각의 논리에 따라 정해지는데,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에 논리에 따른 값을 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은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나서 이 놀라운 은혜를 다시 느껴본다. 은혜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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