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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랴..
전쟁의 참혹함은 그것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 같다. 학창시절 국사시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지만,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다는 내용을 배울 때, 난 우리나라가 평화를 사랑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겪었어야 할 많은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했다. 오늘날에는 제네바 협약과 같이 전쟁포로들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전의 포로들이 겪었어야 할 고통은 어떠했을지 나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야기는 2차 진주성 전투의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다. 1592년 10월 왜군은 영남 요지인 진주성을 공격하였지만, 진주목사 김시민의 항전과 의병 곽재우 부대의 합세로 인해 크게 패하고 만다. 1593년 6월 화의가 진행중인 가운데 왜군은 김시민에게 당한 패전을 설욕하고자 대군으로 진주성을 공격한다. 이 때는 김시민 장군이 세상을 떠난 이후였다. 진주성은 의병장인 김천일이 지휘하여 지키고자 하였지만, 결국 함락되었고 김천일을 비롯한 많은 의병들이 남강에 투신자살하였다. 또한 이 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조선의 선비인 안철영과 유이화는 그 전란에 휘말리게 된다. 위기에 처한 진주성을 구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약 한 첩 써보지 못한 채로 죽어가고 있는 아들을 보러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놓인 안철영은 결국 진주성으로 향하고, 성 함락 후 포로가 된다. 그곳에서 아내와 아들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중 아내가 일본으로 잡혀갔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한문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적장의 눈에 띄어 노역에서 벗어나 적장(아사노 유키나가) 자녀들의 스승으로 일본에 건너가게 된다. 한편, 유이화는 아들이 죽은 후에도 돌아올지도 모를 남편을 기다리다 왜군의 포로가 된다. 그 때부터 끔찍한 삶이 시작된다. 지옥같은 삶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오직 살기 위해 살았다. 그러나 노예의 삶을 살던 그녀에게도 다시 인생의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아시타(우리말로 ’내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아내 유이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안철영과 힘들고 괴로운 삶이지만 헌신적인 일본인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로 삶을 이어가는 유이화의 만남은 의외의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만남은 오히려 두 사람에게 큰 아픔을 남기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안위만을 찾는 조선의 지도자들, 전쟁포로로 잡혀 먼 이국 땅에서 한 많은 생을 살았을 이들을 보면서, 분노와 안타까움이 함께 일었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에 무관심했던 내 모습에 부끄러움도 느꼈다. 또, 여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볼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증오와 함께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남자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조선 선비인 안철영과 그의 아내 유이화. 책 제목은 유이화라 하고 있지만, 안철영의 이야기가 더 다루어지고 있기에 두 사람 모두가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나라와 죽어가는 아들 사이에서 고뇌했을 안철영과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모든 치욕들을 견뎌냈던 유이화의 모습에 대해 어느 누구라도 나무랄 수 없다. 작가는 끝까지 조선인으로 살다간 안철영보다 어느 나라의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의 어미라는 유이화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난 두 사람 모두에게 동의한다. 어느 누가 그 두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그들이 겪었을 아픔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겪었을 삶에 비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내게 밀려오는 그들의 아픔으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