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이단자들 - 서양근대철학의 경이롭고 위험한 탄생
스티븐 내들러 지음, 벤 내들러 그림, 이혁주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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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설명하는 부분이 데카르트에 대한 부분이다.

그만큼 데카르트가 철학사에 준 영향이 크고, 그의 사유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철학이 많다는 얘기다.


데카르트는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는 영혼의 존재는 믿었으나, 실체의 존재는 의심했다.

가끔 명절 때 티비에서 마술쇼를 보여줄 때가 있다. 이와 더불어 최면술이 등장하는데,

최면술사가 출연자에게 생양파를 사과로 생각하도록 최면을 건다. 그러면 출연자가 아무렇지 않게 양파를 사과처럼 베어문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긴 했지만, 데카르트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조차 상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감각기관을 속이면,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의심했다. 어떤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여 얻어지는 '지각' 또한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시간에 코카콜라 광고를 노출시킨 영화관 실험을 알고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관람이 끝난 이후, 스스로 코카콜라를 마시고 싶다는 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코카콜라를 마셔야 한다는 외부의 지각이 주입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인식'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뒤집은 것이다. 우리의 '지각'은 상대적일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특이한 점은, 이 가운데서 확실한 몇 가지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비록 사물이 가진 실체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 실체가 존재하긴 한다는 것, 그리고 열심히 사유하고 있는 '나'의 영혼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명한 그의 말이 나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의 신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지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이같은 사유를 하고 있는 영혼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영혼의 존재를 위의 말처럼 확신했다. 이성의 힘에 대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확신에 찬 주장이다.

따라서 영혼과 신체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영혼의 사유에 따라 신체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혁신적인 사유는 동시대나 후세의 철학자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반박에 부딪혔다.

파스칼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인간이 가진 이성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지성이 아니라 신앙심으로만 신에게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엘리자베스 보헤미아는 결국 힘을 가하는 건 신체인데, 신체는 존재의 여부도 확실치 않고 오직 영혼만이 운용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발생한다.

'실체와 영혼은 분리되어 있는가?'

물질과 비물질을 분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연철학의 발로다.


얼핏 상식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엘리자베스의 물음을 토머스 홉스가 이어받아 데카르트와 논쟁하였다. 그는 궁극적인 행위의 주체가 실재임을 들어, 비물질적인 영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실재'에 대해 동의는 하였으나, 외부의 '영혼'과 같은 힘에 의해 그것이 운용된다고 보지 않았다. 곧 어떤 '실재'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가진 '본성'이 있고, 바로 이 '본성'이 실재의 개념과 성격을 규정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가 '실재'를 영혼과 상호작용하는 껍데기 정도로 본 것과 사뭇 다른 주장이었다.


그 이후에도 지대한 관심을 받던 데카르트의 철학은 뉴턴의 등장으로 완전히 부정되고 만다.

형이상학적 기반을 둔 데카르트의 철학은 경험적 증거를 우선시하는 뉴턴의 자연철학과 달리, 물체가 운동하는 그 실재성을 설명할 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같은 논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벌어진 이데아와 물질의 논쟁에서부터 이어졌다. 이 두 철학적 사조는 거대한 축을 이루며 철학사를 발전시켜 왔다.

이 책에서 데카르트가 중점적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그 때문이다. 오직 신앙심만을 강요했던 교회의 주장과 달리,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논리적인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덕분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를 주었고, 현재까지 자연철학을 기반으로 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데카르트 본인은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을 지 모르지만, 아이러니다.


서양 철학의 큰 두 축을 중심으로 철학사를 살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딱딱한 줄글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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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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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작가의 전작 <위저드 베이커리>와 비교해 봤을 때, 소재의 참신함은 있을지언정, 서사의 흥미로움은 기대하기 힘들다.

따지고 보면 날개달린 사람(익인)이라는 소재도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싶지만,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카루스'의 신화까지 등장해야 하므로 넘어가도록 한다. 장르 소설 외의 영역에서 이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것은 희귀한 일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서사에 기시감이 짙다는 것이다.

서사의 축을 이루고 있는 익인과 인간 사이의 갈등 구도는, 과거 식민지 원주민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갈등 구도와 비슷하다.


이밖의 작은 설정들, 이를테면 익인의 신체 구조를 연구하기 위한 생체실험이 인간의 손에서 비밀리에 자행되는 부분은 닐 블롬캠프 감독의 영화 <디스트릭트 9>을 떠오르게 하고,


익인과 인간의 사랑을 다루는 부분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 혼혈이라는 낙인 때문에 익인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익인 '비오'와 출생의 문제 때문에 이방인처럼 부유하는 인간 '루'의 만남으로 대변되는 '이방인과 이방인의 사랑'이라는 부분 역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와 닮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대중적인 영화를 예시로 들었으나, 비슷한 모티프의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따라서 서사의 진행에 다소 평범한 면이 있다.

인간에 대한 익인의 공격과 인간 소녀의 납치, 그 소녀를 납치했던 익인과 소녀의 사랑, 그러다가 비윤리적인 실험을 자행하던 인간의 실체가 드러나고, 두 사람의 기지로 세상에 알려진다. 가족을 잃은 충격에 세상을 떠도는 익인, 그리고 자아의 성장을 이루고 그를 찾아 떠나려는 인간.

전체 소설의 1/3을 읽었을 때 웬만한 내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말인즉슨, 클리셰가 지나치게 쓰였다는 말이다.


다만,

이 작품이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설정했다는 점,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라는 비교적 가벼운 축을 중심으로, 현대 제국주의, 환경 파괴, 다문화 등 사회적인 문제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시 한번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이른바 스타 작가의 네임벨류가 가진 힘을 느낀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기시감과 미시감 사이에 있다. 따지자면 기시감 쪽에 가까워 아쉽다.

외적으로 드러난 감동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행간에 읽히는 주제의 무게감을 함께 느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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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번호 : 001-A101056915] 제가 참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청춘과 사랑을 엮어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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