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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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김세윤 지음

 

 

★인상에 남는 구절

19p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공히 자신과 비슷하게 지으셨고, 그래서 공히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46p 예수께서는 여성을 심하게 차별한 모세의 율법(구약)과 유대교의 관행을 배격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구속의 사역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과 이혼의 가르침에서도 남녀를 동등하게 인정하시고, 당시 짓밟힌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셨습니다.

58p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항상 노예해방이 일어나고, 여성해방이 일어나며, 만민의 인권 의식이 증진되고, 모든 인종을 초월한 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곧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9p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과 새 창조의 질서 속에서는 불평등과 불의를 가져오는 이 세상의 모든 차별이 해소되었습니다.

72p 타락한 세상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딜레마는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악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가 많습니다. 그때는 할 수 없이 보다 작은 악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120p 성경 말씀의 문자보다는 그 정신을 따라야 합니다.

124p 여성을 굴종시키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음의 놀라운 자유를 파기하는 행위입니다.

130p 복음을 올바로 선포할 때, 교회는 항상 하나님 나라 구원의 현실화로 노예해방과 여성해방을 가져왔고, 약자를 보호하였으며, 만민의 인권을 증진시켰습니다. 한국에서도 반상 철폐, 여성해방, 인권 증진, 민주화등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132p 교회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복음을 왜곡하여 선포할 때, 교회는 해방(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억압을 가져옵니다.

 

★지은이

    

                      <김세윤 교수>

서울대학교, 맨체스터대학교, 튀빙겐대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의 틴데일 라이브러리에서 연 구하였으며,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Ph. D.를 받았다. 그 뒤 누차 튀빙겐대학교에서 Humboldt 연구원으 로서 연구하였고, 싱가포르와 미국 칼빈신학교, 고든코넬신학교에서 교수 사역을 하였다. 국내에서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신약신학 교수 및 한인 목회학 박사 과정 담당 부 학장직을 역임한 후, 지금은 신약신학 교수로 봉직 하고 있다.

 

 

 

 

★내용(Message)

1.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남녀, 그러나 죄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변화했습니다.

성경적 남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봐야할 구절이 창세기 1:27절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이 선언적으로 등장한다. 남녀관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구약에는 왜 이렇게 여성을 차별하는 내용들이 많은 것일까. 저자는 성경을 피상적으로 잘못 이해해서 남녀차별적 편견을 갖게되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 예로 창세기 2장 18절을 근거로 ‘돕는배필’을 언급하는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있다. 히브리어로 보면 ‘배필’이 네게드(neged)인데 ‘상대자’를 뜻하고, ‘돕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제르(ezer)는 ‘도움’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에제르(ezer)’라는 표현이 나온다. 만약 여성이 남성을 돕기만 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을 돕는 하나님도 이스라엘보다 열등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는 원어의 의미를 설명하며 여성이 일방적으로 남성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를 반박한다. 오히려 저자는 여성의 지위변화는 죄로 인한 타락에 있다고 말한다. 구약에 여성비하나 종속성을 담고 있는 구절들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나라 하시고(창세기 3:16)

 

하지만 우리는 신약에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다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2.예수님이 새롭게 변화시킨 여성의 지위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 낮아진 여성의 지위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예수님은 남녀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저자는 신약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생각할 만한 성경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마리아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장면이라든지, 남성이 쉽게 이혼할 수 있었던 이혼을 금지시켰던 것은 예수님이 여성을 존중했다는 방증이다. 빵을 굽다가 태워도, 죽을 긇이는 데 냄새가 나도 이혼사유가 되는 시대였는데 그런 남성중심의 관행을 과감히 종식시킨 것이다. 당시 문화에서 죽어도 마땅한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은 거리낌없이 변호한다. 부정하다고 여겨질만한 혈루증 앓는 여인을 피하지 않으시고 치유해주셧다.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은 예수님의 12제자중에 여성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뽑아놓은 남자 제자들이 다 도망치고, 여자 제자들만 남아서 십자가까지 따라갔음을 성경이 말하고 있음을 반문한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번째 증인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선택했다. 복음의 선포자로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3.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동등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을 고수하는 목사들과 일부 가정사역 전문가들이 남편/아버지가 집안의 ‘제사장’으로서 ‘축복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마치 성경에서 권면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행태를 저자는 강하게 비판한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을 통해 발견한 진리가 ‘만인 제사장론’이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인정한다면 남편/아버지 ‘제사장론’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종교개혁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 아내/어머니를 통해 신자 된 남편/아버지가 훨씬 많다는 말까지 한다. 제상장은 남자 혹은 여자 어느 한쪽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서로간에 피차 ‘사랑’하고 ‘복종’할 것을 권면한다. 아내에게 요구된 ‘복종’만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이 ‘더 많은 복종’과 ‘희생’을 담고있음을 강조해서 설명한다. ‘복종’도 일종의 자기희생이지만, 사랑은 ‘복종’을 포함하는 더 총체적 자기희생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린도전서 14:34)는 표현을 가져다 여성리더십을 거부하는 신학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바울의 이미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성도 공예배시 기도, 설교를 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잠잠하라’는 표현은 단순히 소란하고 시도때도 없이 질문하는 여성에 대해 주의를 준 것으로 봐야지 공예배시 기도, 설교 자체를 금지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남편의 ‘머리’됨 또는 ‘대표’권을 내세우는 것은 예수의 정신과도 사도바울의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사도 바울은 새 창조의 질서를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심적인 핵심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의 여러곳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끝으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성경구절을 주관적으로 취사선택 하지말라고 당부한다. 궁극적으로 한국교회의 ‘여성리더십’ 회복을 도전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창조적 질서의 근거인 사도바울의 말씀을 나누며 서평을 맺는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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