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양장본)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브잡스

월터아이작슨/안진환 옮김

 

▲저자소개

<월터아이작슨>

1952 미국 뉴올리언스 출생.

2003 ~ 아스펜 재단 회장

2001 ~ 2003 CNN 최고경영자

1978 ~ 2001 <타임> 편집장

현재 워싱턴 DC소재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기관인 애스펀 연구소의 CEO로 재직중이며, 전문 전기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구성 및 특징

'이 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던 2009년 본격적으로 작가는 전기를 쓰게 됩니다. 전기를 쓰기위해 100명이 넘는 친구와 친척, 경쟁자, 적수, 동료 들을 인터뷰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41개의 챕터로(925페이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참고문헌과 인터뷰인물을 밝히고 있어 책의 신뢰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에 관한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131p 잡스의 아버지는 언제가 아들에게 완벽한 전문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의 완성도까지 신경써야 한다고 가르쳤다.

162p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181p "요즘 학생들은 이상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하질 않아요. 경영 수업만 열심히 받지, 이 시대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시간을 쏟고 싶어 하지 않지요."잡스 자신의 세대는 달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1960년대를 휩쓸었던 이상주의 바람은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저와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속에는 그 바람이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204p 그의 개인 생활과 회사 생활 모두를 돌아보면 그와 친한 핵심 인물들 대부분이 아부에 능한 사람이 아닌 강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485p 그는 자아 욕구와 개인적인 동기들로 인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유산을 창출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였다.

543p 디자인은 단순히 어떤 제품의 표면적 모습이 아니었다.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을 반영해야 했다.

559p 훌륭한 쇼를 펼쳐 보이는 것은 훌륭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열정을 자극했다.

612p 슬라이드가 있어야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오.

736p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동기부여라 할 수 있지요."

778p "애플이 아이패드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늘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811p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떤 대단한 일을 이루셨습니까? 무언가를 만드는 분입니까,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비판하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분입니까?

861p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집중이었습니다.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구글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든 존재한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881p "내 열정의 대상은 사람들이 동기에 충만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882p 나는 훌륭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가족소개

1989년 평생 반련자를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로렌 파월을 만나게 된다. 1991년 3월 18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파월과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잡스와 파월사이에 3명의 자녀를 갖게된다. 첫째 아들 리드 폴 잡스, 둘째 에린 시에나 잡스, 막내 이브 잡스가 그들이다.

 

▲스티브 잡스의 특징

1.인문학을 중시한다.

과학기술과의 교차점을 이루기 위해 그는 음악, 그림, 영상을 사랑했다. 그의 프리젠 테이션 말미에 등장하는 슬라이드 한 장에 이런 철학이 담겨있다. 그것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를 표시한 도로 표지판이었다. 2010년 아이패드를 발표하면서 이러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늘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려고 노력했기 때문임을 고백했다.

 

2.디자인을 중시한다.

그의 디자인의 원천은 일본 교토의 정원, 벤츠, 전자기기, 디자인 컨퍼런스, 애플에서 쫓겨났을 당시의 이탈리아의 여행등 다양한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애플의 모든 제품은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게 된다. 그의 디자인 목표는 미술관에 전시되어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을 지향한다. 잡스가 만든 애플의 첫 선언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이었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옷도 유니폼 같다고 놀리지만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가 특별히 디자인해 주었던 것이다. 애플스토어 역시 보통 건축물이 아니라 미적 감각을 담아낸 건축물이었다. 자신의 개인전용기, 개인요트 역시 본인이 디자인을 했고 제작 회사에서도 인정을 할 정도였다.

 

3.통합성을 중시한다.

엔드투엔드(end-to-end)통제 방식은 통합성을 중시하는 애플의 철학을 알려주고 있다. 완벽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플의 모든 기기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제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애플의 중요한 강점인 통합성을 활용해 아이튠스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위대한 제품을 탄생시킨다.

 

4.창조성을 중시한다.

애플을 상징하는 광고 문구가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였다.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고 실패에 굴하지 않으며 남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창의성을 잡스는 존중했다. 창조성을 위해 직원 핵심 직원 100명을 휴양지로 데려가 아이디어 회의를 갖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이 창조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인도로의 여행, 선불교의 사상도 창조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5.탁월성을 중시한다.

탁월한 수준이 되지 않으면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애플의 로고를 달고 출시되는 모든 제품은 '탁월성'을 중시한다. 뿐만 아니라 광고 역시 탁월함을 추구한다. 1984년 광고는 애플I의 광고는 광고의 전설로 불리워진다.

 

6.예술성을 중시한다.

비틀스, 밥 딜런, 요요마(첼리스트)등 음악가들을 존중한다. 빌 게이츠는 "난 스티브의 미의식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을 정도이다. 잡스 스스로도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잡스는 훌륭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엔지어들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7.가치를 중시한다.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영속적인 회사를 구축하는 것이 그가 열정을 쏟는 이유임을 고백한다. 잡스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았고 다른 기관의 시장조사 역시 신뢰하지도 않았다. 애플이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잡스 본인도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8.언별술을 중시한다.

잡스는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탁월하다. 대학교때 큰 회사의 CEO와 통화할 정도였다. 현실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것을 책에서는 '현실왜곡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매 제품이 출시 될 때마다 사람들을 매료시킬 프리젠테이션을 치밀하게 연습한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안테나 게이트'의 사건이 있었다. 이때도 잡스는 짧은 평서문 4개로 솔직하게 표현했고, 대규모 리콜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잡스의 언변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티브잡스의 생애

1955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게 된다. 그러나 친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 입양된 어린시절에 부모님을 존경하며 자랐다. 그의 양부는 자동차 정비공이었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던 양부는 잡스의 존경을 받았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라게 되었던 잡스는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하게 된다. 공학도의 길로 접어드는 배경이 된 것이다. 1950년대 국방산업의 붐이 일어 났던 시기였기에 당시 상황도 잡스의 앞날과 연관될 수 있었다.

몬타로마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심한 장난을 쳐서 여러번 주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삶에도 선생님의 영향을 받는다. 그 선생님은 바로 4학년때 '이모진 힐'선생님이었다. 이모진 힐 선생님은 잡스의 특별함이 드러나도록 지도해주셨다. 월반의 제안을 받고 간 크리텐든 중학교에 갔지만 오히려 적응을 하지 못한다. 이사를 가서 홈스테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 곳에서 전자공학에 대한 흥미를 공유했고, 반문화 운동도 펼치는 경험을 갖는다. 탄소마이크로폰을 보여준 랭에게 전자기기 조립세트인 '히스 키트'를 만들어보면서 전자기기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고1때 HP CEO에게 전화를 걸어 조립라인에 취직되어 일하게 되었고, 당시 신문배달을 통해 다양한 일의 경험을 쌓았다. 고2때 할테크라는 전자 기기 상점에서 재고품을 정리하는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고2로 올라가기전 마약인 마리화나에 취했다. 고3때는 환각에 더 자주 취했다. 마약에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고2․고3때 다양한 고전을 읽었다.『리어왕』,『모비 딕』과 딜런 토머스의 시가 대표적이었다. 과학, 기술분야 분야 서적 뿐만아니라 다른 서적을 많이 읽었다. 음악도 많이 들었다. 특히 전설적인 존 맥콜럼의 전자공학 3년 과정의 수업을 1년만에 마스터해 버린다.

고등학교때 졸업한 선배이자 친구인 앨런 바움과 스티브 워즈와 함께 전자공학을 접목한 다양한 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이것이 애플의 출범과 연관된다.) 그 장난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블루박스'라는 기기였다. 전화선의 주파수 도청을 통해 전 세계에 무료전화를 거는 기기였고 잡스와 워즈 모두 최고의 발명품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가을 리드대학교에 입학했고 이 시기 전자공학보다는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캠퍼스를 맨발로 거닌다.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작은 지구를 위한 식습관>을 읽고 채식주의자가 된다. 동양의 종교인 선불교에 심취하기도 한다. 마약을 복용하고 환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힌두교를 접하고 명상에 심취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상에 개방적이었던 잡스는 유독 기독교에 대해서는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리드대학교의 규정된 방침을 거부했던 잡스는 마침내 자퇴를 하였다. 그러나 대학은 잡스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잡스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그런 허용은 캘리그래피 수업 청강으로 이어졌고, 맥의 다양한 활자체와 비율에 맞는 폰트를 창조함으로써 열매 맺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중 특히 마약(LSD)의 심오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잡스는 비범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1974년 2월, "즐기면서 돈버는 곳"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에 입사한다. 당시 유망직장이었던 곳에서 대학 중퇴자인 잡스를 뽑을 정도로 그의 매력은 돋보였다. 그러나 같은 회사 직원들이 그의 행색을 꺼려해 잡스만 야간근무를 하게된다. 회사 생활을 통해 돈을 모은 잡스는 엉뚱하게 인도로 종교적 순례를 가기로 결정한다. 7개월 동안 인도에 머물면서 인도인의 '직관적 사고'를 깨닫는다. 서양의 합리적사고와는 전혀 반대의 개념인 사고체계를 경험한 것이다. 그 후로도 명상에 대한 지속적 수련이 이어졌고, 인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후 '올 원 팜이라는 사과농장'에서 일하기도 한다.(나중에 애플로고 탄생의 밑거름이 된다). 일본 선불교에도 심취하게 되는데 동양적 사상을 자신의 철학의 깊은 뿌리로 잡은 잡스가 컴퓨터시대를 선도하는 기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이러니 할 수 도 있다.

1975년 아타리로 돌아온 잡스는 그의 단짝 워즈와 '벽돌깨기' 오락게임을 3일만에 만들어 버린다. 잡스는 아타리사에서 제작한 게임의 단순성과 사용자 친화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CEO 놀런 부시넬의 태도를 흡수했다. 특히 그 태도는 '해낼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부시넬에게 들은 인상적인 말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였다. 그리고 이 시기 '홈브루 컴퓨터 클럽' 동호회 모임을 참석했다. 모임은 자유로운 대화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것이었는데, 잡스는 이때 애플Ⅰ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1976년 4월1일 잡스와 워즈는 합자 사업 계약서를 작성함으로써 '애플'이 출범하게 된다. 이때 애플Ⅰ컴퓨터는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잡스와 워즈는 애플Ⅱ를 준비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1977년1월3일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를 공식 출범시킨다. 애플Ⅱ 팸플릿 상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문구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를 새겨넣어 더욱 유명해진다. 1977년 4월 애플Ⅱ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애플Ⅱ는 향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대 가까이 판매된다. 잡스와 워즈의 노력이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1980년 12월12일 주식시장에 기업공개를 하게된 잡스는 애플Ⅱ의 엄청난 성공으로 부와 명성을 확실히 거머쥐게 되었다. 1981년 <아이엔시>라는 잡지의 "비지니스를 영원히 바꿔 놓은 인물"이라는 표제로 10월호에 소개되기 까지 한다. 1981년 일명 맥팀(매킨토시팀)이 꾸려지게 된다. 1984년 출시된 매킨토스는 광고만큼이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잡스는 한층 더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러나 1984년 후반부터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아주많이 감소한다. 게다가 1983년 1월 출시된 '리사' 역시 참담한 실패를 맞이하게 된다. 1980년대 세상에 선보인 애플Ⅲ는 참담한 실패를 맞이한다. 애플의 직원들은 잡스의 모욕적인 언사에 불만이 점점 쌓여갔고, 반대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현실왜곡장'이라는 독특한 거짓말은 직원들의 신뢰까지 잃게 만든다. 잡스의 과민행동은 그의 창업 동료 '워즈'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게 만든다. 1985년 5월 이사회에서도 잡스가 물러날 것을 최종 통보한다. 이때 잡스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CEO자리에서 물러난 잡스는 충격을 뒤로하고 3개월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온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잡스는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민다. 나중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줄 '픽사'의 인수도 이 시기에 이루어 졌다. 또한 1985년 9월 몇몇의 애플 동료들과 새로운 컴퓨터회사 '넥스트'를 창업한다. 무언가 시작했지만 1989년 넥스트 컴퓨터는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되었고, 큰 적자와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을 지향했던 그에게 컴퓨터 애니메이션회사인 픽사는 다시한번 재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1995년 픽사가 제작한 '토이스토리'의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하게 된 것이다. 반면 잡스가 없는 애플은 점점 추락하게 된다. 스티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에너지, 열정, 창의성을 이어갈 경영자는 없었던 것이다. 애플은 잡스의 창업회사 '넥스트'를 인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잡스를 애플로 다시 불러들였다. 1997년 잡스가 경영에 물러난 후, 12년만에 사실상 애플의 경영자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애플과 픽사를 함께 경영하면서 건강을 헤치게 된다. 여하튼 새롭게 돌아온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며 애플을 살릴 묘안을 고안한다. 그것은 1998년 5월 데스크 톱 컴퓨터 '아이맥'을 다시 선보인 일이다. 잡스 복귀후 '아이맥'을 선보이면서 애플 재탄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00년 임시 CEO에서 정식 CEO가 된다. 그는 애플의 철학과 정신을 담아낼 '애플 스토어'를 2001년 5월에 만든다.(2011년 현재 317개의 매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 후 애플 스토어는 애플의 브랜드 인지도에 기여하면서 개점 되는 곳마다 유명세를 타게 된다. 2001년 애플은 PC회사로 다시 우뚝 서게 된다. 2001년 디지털 허브의 전략의 일환으로 '아이튠스'가 탄생한다. 그것은 음악 혁명이었다. 앨범 전체가 아닌 내가 듣고싶은 노래 1곡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2003년 4월 아이튠스 스토어를 선보인다. 아이튠 스토어도 크게 성공한다. 2004년 아이팟 미니, 2005년 아이팟 셔플등도 크게 성공시킨다. 애플이 만든 다양한 기기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폰이 2007년 1월 공개된다.

그러나 무한한 성공을 달릴것 같은 잡스의 삶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만다. 2003년 10월 암선고를 받게 되었다. 다음해 종양이 더욱 커져 수술까지 받게 된다. 잡스는 그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암선고를 받은 후 느낀 깨달음을 연설했다. 그 연설에 졸업생들은 매료된다. 다음과 같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수술후 4년이 지난, 2008년 초 잡스 몸에서 암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료진에게 전달받게 된다. 먹는 것 조차 힘들게 되었고 몸무게가 계속 줄어들었다. 마침내 2009년 1월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 암이 발생하고 몇 년간은 이 모든 사실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그는 애플을 부활시킨 CEO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추측성기사가 나돌아 잡스가 몇 번 해명하는 사태도 있었다. 간 이식을 받고 기력을 회복하자 다시 일에 매진한다. 그 결과 2010년 1월27일 아이패드를 발표한다. 2011년 3월 아이패드2를 출시한다. 2010년부터 새로운 서비스 개념인 '아이-클라우드'를 준비했고, 2011년 6월 공개한다. 그는 또한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회사를 위해 세련되고 초현대적인 애플회사 설계도를 공개한다. 병세가 지속되는 가운데도 그의 열정은 식을줄 몰랐다. 오바마 대통령과도 여러 현안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그의 건강이 더 이상 버텨내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2011년 10월 25일 향년 56세를 끝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서평을 마치며...

표지만을 보고 선택한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은 그 방대한 분량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읽고 있으니 참 보통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입양아,대학중퇴자,마약복용자,이혼가정등 그를 낙인찍을 만한 많은 꼬리표도 그의 열정과 도전정신을 막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창조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인물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의 삶이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학생들을 바라볼때 그의 재능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학생들을 바라볼때 편견을 갖고 보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잡스는 신의 존재를 50:50으로 생각했습니다. 잡스가 기독교에 등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좀더 교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변화를 꽤하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티브잡스>자서전은 이 시대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900페이지를 정독하고 서평을 마무리하니 정말 뿌듯합니다. 이상으로 서평을 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