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에 거하다 - 광야 인생에게 건네는 가나안 일상 광야 시리즈
이진희 지음 / 두란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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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 거하다


 

*인상 깊은 문장

61p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곳,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 그곳이 바로 우리의 가나안이다. 애굽이든 광야든,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따라 우리를 보내시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가나안이다.

87p 광야라 할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면 가나안이다.

119p 광야를 지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지 마라. 광야를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하지 마라. 어떻게 하면 지금 지나는 광야에서 승리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123p 우리의 삶은 광야와 가나안이 뒤섞여 있다. 어느 날은 광야, 어느 날은 가나안이다. 광야와 가나안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같이 있다. 광야 안에 가나안이 있고, 가나안 안에 광야가 있다. 광야를 벗어나야 가나안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야를 지나면서도 가나안을 살 수 있고, 가나안에 살면서도 광야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136p 가나안에 들어가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편안이 평안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8p 교회는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교회다웠다. 거센 바람이 불어닥칠 때 교회가 흔들리기는 했어도 오히려 뿌리는 더 깊어졌다.

252p 애굽에서 살고 있느냐, 광야에서 살고 있느냐, 아니면 가나안에서 살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책의 구성

저자는 광야를 20년동안 돌아다니고 10년 넘게 광야를 연구했습니다. 소위 말해 광야전문가입니다. ‘가나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의미는 무엇일까 묵상하며 가나안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도록 총 10개장(1.우리가 꿈꾸는 그런 가나안은 없다~10.영원한 가나안에 잇대어 살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면 실제 가나안의 지리적 특징, 가나안의 영적인 의미, 가나안에 거하는 삶이 무엇인지 차분하고 깊이있게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가나안에 거한다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책의 내용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저자는 가나안의 사진과 지도를 같이 보여주며 절반은 암갈색 광야같은 곳임을 설명합니다. 물이 스며들지 않는 지형적 특징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다보면 솔로몬 성전을 지을때 나무를 해 올 사람이라는 표현대신 돌을 떠 낼 자로 성경 해석을 해야 하고, 예수님도 직업이 목수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테크톤(tekton)’은 꼭 목수만 의미하는게 아니라 돌을 떠서 옮기고 그것을 잘라 다듬어 쌓아 올리는 일을 하셨던 석수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시편23편의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사진도 오류이며 암갈색 바위로 배경이 바뀌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하다고 지적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가나안에는 물도 충분하지 않고 요단강은 한강처럼 큰 강이 아니고 개천이고 우기에도 폭이 10미터가 넘지 않는다고 한다. 가나안은 물부족 지역입니다. 이와같이 저자는 가나안에 대한 환상을 먼저 걷어냅니다. ‘가나안이상적 세상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이 축복의 땅이라서가 아니라, 축복해 주기 위해 주신 땅이었습니다.


53p 성경에나오는 가나안은 land of promise가 아니라 promised land. 하나님이 주기로 약속한 땅이지,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약속의 땅이 아니다.

 

가나안은 비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아 주심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가나안과 하나님이 인도해 가시는 가나안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곳, 그곳이 우리의 가나안임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저자는 가나안의 지형적 특징을 살펴보면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가나안광야의 특징을 비교해 놓은 표입니다. 저자는 광야가나안의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 한 눈에 들어오도록 비교해 놓았습니다. 이 표에서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없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고, ‘가나안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광야보다 가나안에서 더 많이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바알(물질만능주의,황금만능주의)이 지배하고 있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바알은 우리를 탐욕,욕망,욕정,욕심,세속주의,물질주의,맘몬으로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부귀,권세,명예,성공,형통,건강,축복을 얻기 위해 바알을 여전히 추종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삶을성공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공하신 분이 아니라 승리하신 분이셨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입으로는 주님,주님하지만 속으로는 바알님이시여, 바알님이시여하는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알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8:12~14)

 


성경속의 인물들도 광야를 거쳤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고생끝, 행복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지 25년이 지난 100세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13년의 광야를 견뎌냈습니다. 애굽은 당시 곡식이 풍부한 풍요의 땅이었지만 요셉에게는 광야의 시간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자랐지만 40년 미디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어서 출애굽 광야 40년의 생활이 또 이어졌습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13년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바울도 고향 다소에서 13년간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광야의 시대를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70년간 바벨론 포로기의 광야시절을 보냅니다. 13세기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라는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또는 역사속에서 광야를 거치게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90p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부 광야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쓰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138p 진짜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다. 진짜 가나안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광야를 지나면서도 천상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 메누하를 누릴 수 있다.

 

히브리어 메누하’(menucha)안전’,‘안정’,‘안심’,‘안식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땅의 가나안에서는 메누하를 누릴 수 없다고 책의 후반부에 말합니다. 진정한 메누하는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 우리 모두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도 광야같은 인생을 살았어도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진짜 가나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때문인 것입니다.


 

*느낀 점

이 책을 읽으며 가나안에 대해서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광야같은 삶도 가나안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광야에 산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며, 가나안에 산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야든 가나안이든 탐욕에 사로잡히면 불행하게 되고, ‘탐욕을 내려놓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은혜 아래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광야의 삶이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성공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더 큰 집, 더 큰 창고를 짓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진짜 가나안은 이 땅이 아닌 하늘 가나안이라는 생각을 좀 더 분명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가나안, 하늘 가나안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천국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 믿는자들의 삶입니다. ‘광야’,‘가나안에 있더라도 주님의 다스림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서평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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