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고백 - 사도신경으로 나의 믿음을 세우다
황명환 지음 / 두란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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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고백

사도신경으로 나의 믿음을 세우다 

황명환 지음

 

인상에 남는 구절

17p 사도신경은 우리를 냉담한 지성의 소유자나 나약한 감성의 소유자가 되지 않게 하고, 올바른 믿음 위에서게 하는 든든한 반석입니다.

83p 그리스도를 한자로 음역한 단어가 기독(基督)이라는 사실에서 쉽게 추론할 수 있듯, 성자 예수님만을 유일한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44p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벽하게 만난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가장 차원 높은 전능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90p 교회는 거룩한 영적 교제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116p 종말론은 장차 영원한 생명이 완성되는 날, 즉 주님 앞에 서게 될 최후의 심판 날을 기준점으로 삼아 현재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122p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고 있는지 여부가 인생의 성패를 가릅니다. 안타깝게도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르는 미아가 세상에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주님의 은혜가운데 사명을 감당하며 살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가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260p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길 바랍니다.

 

지은이

          황명환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구약학(Th. M), 윤리학과 기독교 문화(Th. D)를 공부했으며, 현재 수서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구성과 특징

예배를 시작해 초반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시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외우는 경험이 누구나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묵상하며 외우는 사람은 많이 없다. ‘기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핵심열쇠가 사도신경에 있다. 수천년간 이어온 신앙고백의 모범적인 교본이 사도신경이다.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도신경을 한 구절 한 구절 묵상하며 6(1.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2.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성령을 믿습니다, 4.교회는 어떤 곳인가, 5.성도는 누구인가, 6.우리의 미래)으로 구성했다. 각 장 마지막에는 기도문과 묵상질문,함께부르면 좋을 찬송을 더해 내용을 곱씹도록 배려했다. 책 자체를 가정예배에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저자와 함께 사도신경의 참의미를 배워보자!


내용(message)

1. ‘사도신경의 가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라틴어로 심볼룸 아포스톨로룸(Symbolum Apostolorum)’또는 심볼룸 아포스톨리쿰(SymbolumApostolicum)’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사도들의 심벌사도들의 상징이라는 의미다. 사도는 누구인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진리의 내용, 결코 변할 수 없는 신앙의 핵심을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司徒信經)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요약하고 핵심을 정리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오늘날 모든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유일한 신앙지침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2. ‘사도신경의 문장속 단어들이 담고있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에서 전능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해주는 이기적 관점이 아니며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크고 넓고 높으신 차원과 영원한 관점에서 생각해야 전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고난이 닥쳐도 차원 높은 하나님의 전능일 수 있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 분으로부터 왔음을 의미한다.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 우리를 자녀삼아 주신다. ‘천지의 창조주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의 말씀을 믿는다면 성경에 어떤 내용도 믿을 수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이 고백을 붙잡고 영혼에 새기길 권면한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고백은 혈연관계에서 나타난 아버지 아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유적 의미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 의지, 행동에서 차이가 없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동격의 의미로 사용됐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으로 부른다. 누구와도 같을 수 없다는 의미로 유일하신이 사용되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에서 성경에 예언한대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인간이 되어 탄생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뒤 부활하신 예수가 진정한 그리스도다. 다른 종교가 기독교가 독선적이라고 해도 타협할 수 없다. 진리는 하나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주라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고백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인생이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주도적으로 역사하심의 의미다. 인간의 도움이나 개입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다.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주재 로마 5대 총독이었다. 저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분명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뤄졌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 빌라도의 이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속한 사건이다.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스스로 그리스도 되심을 증명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는 예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 되시고 다가올 미래에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오실날을 기다려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날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에서 성령은 성경에서 보혜사(保惠師,counselor)라고 표현한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늘 곁에 있으면서 돕고 위로하는 자를 뜻한다고 한다. 성령은 무엇을 도울까. 성경에 나온 십자가사건을 우리 사건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을 우리 아버지로 믿고 받아들이게 한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성령은 신비한 능력이나 강력한 힘이 아니다. 무당이나 귀신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처럼 여겨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교회를 탄생시킨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다. 성령은 우리를 주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도록 도우시는 분이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다. 우리는 성령님을 자꾸 사모하고 초청하고 기대하고 의지하며 그분께 우리를 내어드리는 훈련을 날마다 해야한다. 그럴 때 성령의 세밀한 인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공교회와에서 거룩은 구별되었다.(set apart)라는 뜻이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교회에서 공()보편적이라는 뜻을 지닌 유니버설(universal)’이다. ‘모두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위로는 하나님을 향해 거룩하게 구별되고 수평적으로는 이단이 아닌 정통의 진리 위에 모든 인간을 차별없이 끌어안는 보편성을 갖춘 곳이 교회라는 의미다. 차별있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헬라어는 에클레시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하나님이 불러주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교회이다.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예배다.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에서 사귐의 헬라어는 코이노니아. 단순히 과거,현재의 관계로 만들어진 교제가 아니라 미래에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살아야 할 사람끼리의 사귐의 교제이다. 성도의 거룩한 교제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게 해준다. ‘죄를 용서받는 것에서 하마르티아인데, ‘과녁에서 빗나가 명중시키지 못하다(miss the mark)’라는 뜻이다. 죄는 ‘crime’이나 ‘fault’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죄를 용서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의미다. 주님께로부터 용서받았기에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은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이다. 끝부분은 성도들의 미래에 대한 고백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은 인생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믿는자들에게는 죽음이 두렵지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 해준다. 죽음후에 몸의 부활이 있다고 성경에 나온다. 부활한 몸은 완전하고 새로운 몸이다. 예수님이 먼저 부활해서 보여주었다. 부활소망을 품게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우리는 합당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영생은 부활의 몸으로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영생영생이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순간부터 시작된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확신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삶이다. 마지막 사도신경의 고백은 죽음과 거짓된 종교를 물리치고 위대한 소망을 품은 승리의 고백이다.

 


서평을 맺으며...

책을 읽고나서 사도신경을 다시한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의미없이 외울때와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단어하나 문장에 담긴 의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제 안에 살아났고 이 고백이 나의 신앙의 고백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이었던 사도신경이 내가 끝까지 붙들고 살아가야 할 정말 중요한 신앙고백임을 깨달았습니다. 요동치 않는 굳건한 신앙의 뿌리를 내리우길 원하는 성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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