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간 - 책과 독서에 관한 25가지 이야기
차이자위안 지음, 김영문 옮김 / 알마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모든 서가는 문명이 구현된 하나의 소우주다. 막막한 창세기를 거치고 혼돈스러운 변화기를 거치면서, 때로는 부유한 번성기를 구가하기도 하고 때로는 쓸쓸한 쇠퇴기를 겪기도 한다. 그새 종종 서가 정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곧바로 뒤죽박죽 황무지처럼 변하고 만다. 그때마다 근심에 젖어 아까운 책들에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결국은 서가를 깨끗이 정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면 환상처럼 또 하나의 우주로 새롭게 변모하여, 또 다른 서가가 갖추어져 또 다른 풍경으로 바뀌게 된다

타이완 학자 천젠밍(1961~)

 

책과 관련된 여느 도서들처럼 제목에서 물씬 풍겨나는 책 사랑분위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하지만 제목이 독서인간이라니.... 대체 독서인간이 무슨 뜻인가, 낯선 느낌이었다.

책과 독서에 관한 25가지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목차부터 보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총 4부로 나뉘고 각각 책의 향기, 거처, 인연, 풍경으로 25가지 테마를 갈무리한다.

제법 책을 좋아하고(읽는 행위는 물론 모으는 취미까지) 가까이 두는 사람이라도 젊은 중국 애서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나름대로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띠지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라면 1. 내용 개괄 2. 판매량 기록(전세계@@!) 3. 유명인 추천 4. 중량급 인물 증언(+ 수상기록 등)”이라는 요약을 비롯해 책에 기생하는 벌레 두어(Lepisma Saccharima책벌레)’의 여러 가지 이름 따위. 또 개인적으로는 자젠성이 루쉰의 필명 중 하나라는 것도, 류사허 책 사이에서 부침하고, 문자 사이에서 태어나 죽는 책벌레의 삶이 바로 우리 독서인의 모습의 투영이 아닌가?”라고 했다는 것도.

 

흥미롭게 읽은 대목은 독서치료에 대한 부분이다.

 

청나라 장조(張潮)가 중국의 전통 약성 탐구법으로 책의 치료 효능을 분석하여 <서본초 書本草>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소설, 전기(小說, 傳寄) : 맛은 달고 약성은 건조하며 맹독이 포함되어 있어서 복용해서는 안 도니다. 복용하면 사람을 미치게 한다. 다만 더운 여름날 정신이 피로하거나 고민이 깊어진 후 비바람이 몰아 칠 때 그리고 외부 상황에 마음이 상했을 때 이것을 복용하면 번민과 우울을 해소할 수 있고 막힌 마음을 뚫을 수 잇다. 그러나 오래 복용해서는 안 된다. 이 약에 마음을 스며 나날을 보낼 때는 이 약의 복용 정도가 어떤지 살펴야 한다. 복용이 적당하면 뱀이나 전갈처럼 독성을 지닌 이야기도 사람에게 효험을 가져다 줄 수 있다. () 복용이 적당하지 않으면 복령 茯笭처럼 좋은 약재도 사람의 목숨을 해칠 수 있다. () 이런 점은 이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장서인에 대한 내용이다. 어느 부부가 두 사람의 이름을 조합한 장서인을 새겨 책에 찍었다는 대목을 봤다. 문득 나 혼자 만든 책도장이 생각났다. 그리고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언젠가 나도 함께 살아갈 이와 책 읽는 취향이 비슷하고 또 조금 달라도 서로의 독서 취향을 인정하며 서로 감동한 책, 서로에게 권하는 책을 함게 읽고 풍성한 이야기(감상)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함께 읽은 책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합해진 장서인을 찍어 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

 

책에 넉넉히 담긴 책과 관련된 각종 삽화도 눈길을 끄는 요소. 동서고금의 책 사랑 인물들과 장서인, 특이제본, 초상화, 책 광고, 책갈피 등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에 고이 모셔놓고 펼치지 못한 또 다른 광기어린 애서가들의 이야기 젠틀 매드니스에 어서 도전해야겠다.

당나라 시인, 피일휴(皮日休, 838~883)

"자신도 모르게 선생께선 마음을 찍는지, 인간 세상 만 권의 책에 모두 장서인을 찍었네."

"독서는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인생은 책보다 훨씬 크고 넓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이해하지 못한 책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인생을 알지 못하면 사실상 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 양쩌(楊澤•타이완 시인, <인간부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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