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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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이택광이 직접 세계 유수의 철학자들과 직접 만나거나 이메일 등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집필한 것으로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서구의 정치철학뿐 아니라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과 중국의 왕후이에 주목해서 본 아시아의 사상 지형까지 포괄한다. 2부는 이택광이 철학자 아홉 명과 각기 나눈 인터뷰 내용이 엮여 있다. 

 

그 중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에서 발생한 한 사건과 관련하여 사회 윤리적 책임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7년 고베시 스마구에서 일어난 중학교 3학년 소년에 의해 연속 살인사건 이 사건이 일본사회에 알려졌을 때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사회에 일반적인 담론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그 소년의 사건은 ‘부모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 일본사회로부터 가해졌다. 

여기서 가라타니 고진은 사회가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며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회 공동체의 규범이라는 것이다. 또한 살인을 저지른 학생에 대한 비판보다 그의 부모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싣은 언론일수록 일본이 과거 전쟁에서 저지른 부정한 행동들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들이 대세를 이루어 가며 자연스레 사회에 스며들게 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는 점점 제대로된 선악의 기준을 잃어가는 것이다.  

 

p.57 선악의 기준을 부여할 사회가 부재할 때, 아니 설령 사회가 있더라도 그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의 기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떻게 윤리가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가라타니 고진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도덕성을 '자유'로 간주한" 칸트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도덕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내부의 도덕이 곧 외부의 자유를 보증해주는 것이 될 수 있는 경우를 가라타니 고진은 비서구의 근대화에 필요한 윤리라고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우리가 자유, 즉 자기가 원인이라고 상정할 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지어 볼 때,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도덕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이 책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관한 9명의 철학자들은 각기 다양하게 그 제안들을 말하고 있으나 그 해결책은 굉장히 모호하다.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줄곧 패권국으로서 역할을 이어온 미국이 현재 디폴트 위기까지 온 상황에서 9명의 철학자들은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는 썩 명쾌한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지금이 끝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데 입을 모은다는 사실이다. 명백하게 끝이라고 생각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낫게 실패해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이다. 끝은 없다. 다만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은 답을 제시한다기보다 우리 자신에게 그 답을 고민해보도록 주문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더 낫게 실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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