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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와의 대화
찰스 사치 지음, 주연화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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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찰스 사치
작년 겨울 <속사정 쌀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재밌는 영상이 방송되었습니다. 어떤 그림을 보여주고 ‘과연 이 그림의 가격은 얼마인가?’하는 주제였죠. 같은 그림을 지하철역과 갤러리에 걸어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상 가격을 물었습니다. 지하철에서는 41만 원 정도, 갤러리에서는 295만 원 정도라고 사람들이 값을 매겼네요. 진중권 교수에게도 이 그림은 가격이 어느 정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방송이니 너무 낮은 가격이나 높은 가격을 말하기는 곤란했겠죠. 그래서 40만 원에서 270만 원 정도로 예상된다며 애매하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대 반전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그린 작가가 ‘장동민’이라는 개그맨이라는 점입니다. 예술작품이라고 보던 그림이 그냥 개그일 뿐이었죠.
장동민의 낙서를 보면서 예술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는 게 예술인가봅니다. 이 예술작품이 얼마나 객관적일지 늘 의문입니다. 고가의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 피카소, 반 고흐, 르느와르, 세잔, 모네 등의 그림을 보면 생각합니다. ‘못 그렸다’. 그래도 창의성,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 관점의 변화 등 무언가 내가 잘 모르는 예술성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보다 더 값이 비싼 잭슨 폴록의 <No. 5>는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라는 말이 아무리 현란하게 수식해주더라도 모르겠습니다. 왜 세계 최고가의 그림인지도 모르겠고, 그저 난해할 뿐입니다.
이런 예술 작품을 싼 값에 사들여서 비싸게 되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평가 되어있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발견하는 능력만 있다면 큰 이익을 보겠죠. 마치 주식시장에서 활동하는 투자자와도 비슷합니다. 다만 예술 작품이라는 게 너무도 주관적입니다. 누가 보기에는 위대한 예술이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짝에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하지요.
예술이라는 학문이 모든 사람이 객관적으로 만족하도록 수치화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저평가’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고 ‘고평가화’하기도 쉽겠죠. 예술계에 한 획을 그을 정도로 대한한 작품이 아닐지라도 대단한 작품처럼 포장하는 능력이 있다면 쉽게 돈을 법니다. 주변에서는 욕을 하겠지만요.
찰스 사치는 이라크 출신 유대인, 영국의 기업인이죠. 사치 앤 사치의 창업자이기도 하고, M&C 사치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컬렉터로서 더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컬렉터의 의미를 잠깐 살펴보면 이들은 개인적 수집 활동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활동을 수행하며, 한 시대의 미술계를 이끌기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치에게 딱 맞네요.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예술계에 큰 영향을 주었듯, 찰스 사치는 개인에 불과하지만 영국과 세계 예술에 큰 입김을 행사합니다. 사치갤러리를 열어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을 후원하지요. ‘데미언 허스트’를 후원해 향후 세계미술시장에 주목 받는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YBA 작가들도 덕분에 유명해졌죠.
사치는 예술계에 악영향도 끼쳤습니다. 예술이 자본에 의해 좌우되어버렸죠. 이제는 예술작품이 높은 가격에 낙찰되어도 그 작품이 정말 뛰어난 가치를 지녔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투기 세력이 가격을 높인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사치가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지금은 예술이 순수하게 예술로 존재하기 힘듭니다.
사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똑똑하며, 돈이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인터뷰 내내 불쾌할 법도 한 질문에 답을 잘 해줍니다. 유머러스하기도 하네요. 동시에 괴팍하고, 깐깐하며, 옹고집이 가득합니다. 음악, 미술, 건축, 조소 등 예술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