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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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을 소개하는 여자,

반짝이는 책소녀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 책을 지은 박영욱 저자님은 유럽과학사와 미국과학기술사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국방과학기술정책을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를 하며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고 해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을텐데 인간이 생겨난 이후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왔습니다. 역사를 보면 거의 전쟁의 역사라 할 만큼 평화로울 때보다 전쟁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전쟁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발달했다는 사실입니다.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적에게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더나은 무기를 개발하고 어떻게 방어할지를 생각하며 살고,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공격하면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지 적을 알기 위해 정탐을 하고, 공격할만한 것들을 개발하고 준비합니다. 실제로 직접 싸우는 전쟁을 통해 부족한 면들을 채워넣는 것이죠. 전쟁을 통해 영웅이 나오고, 과학과 기술도 발전하였습니다.





이 책은 1765 년 영국의 인지세 청구에 반발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열세 개 식민지 주들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보스턴 차 사건의 발발로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됩니다. 영국과 미국의 전쟁을 유심히 살펴보던 프랑스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에게 엄청난 재정ㆍ군사 지원을 합니다. 이때 활약했던 과학자는 앙투안 라부아지에입니다. 화약 성능을 개량해 줄 사람으로 앙투안 라부아지에를 지목해 화약국장으로 임명하였어요. 그 전에는 우리가 아는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과학자는 따로 일을 하면서 취미처럼 개인적인 호기심을 풀기위해 집에서 개인적으로 연구를 했었습니다. 허나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정부가 과학자에게 독립된 연구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면서 국가경영과 군사적 목적의 연구를 맡긴 초기의 사례가 되었으며, 과학자가 전문 직업인으로 변모하게 된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에 군사 기술 학교의 모태가 된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교에 대해 자세히 나와요. 이 학교는 프랑스의 최초의 민중 혁명의 성공으로 주위의 왕정국가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기에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학교는 프랑스 군대의 강력한 힘과 전통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최고 인재들을 다수 배출해 온 명문 엘리트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요. 포병과 공병 장교를 비롯한 군인 양성에 수학과 과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 과학 전문 교육 시스템이 갖춰졌고, 여기서 전문 군인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수학자와 과학자들도 배출되었다고 해요. 저는 이 학교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독립군이 일제 강점기에 신흥무관학교 등 군사 학교를 만들어 운영할 때에 부족했던 점이 이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당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심하고 재정이 어려워 무기와 식량을 구하기도 어려웠겠지만 투혼만으로는 부족한 것, 그것이 과학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이 지금도 승승장구할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어요. 과학 없이는 나라의 힘을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네요. 우리나라는 1911년 문을 연 카이저빌헬름협회(현재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설립 취지문에 있는 이 문장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기초 과학의 연구는 산업 발전에 필수적이며 

군사력과 과학은 위대한 독일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죽음의 상인 무기 로비스트 배질 자하로프. 늘 어떤 큰 위험이 왔을 때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던 사람들은 무기 개발자들이나 제작자들이 만든 방산 기업인과 무기 로비스트였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고 합니다. 특히 배질 자하로프는 해외 방산 거래 네트워크를 구축해 영국과 독일, 프랑스와 러시아, 발칸반도 국가 군부와 정부에 매우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소식들을 전달하며 전쟁의 공포를 과대 조성하고 교묘하게 경쟁을 유도했다고 해요. 그렇게 적국 관계였던 나라들이 서로 배질 자하로프의 무기들로 전쟁을 하는 것이죠. 세계 각국 정치가와 군부는 최고의 군사 전문가인 그에게 군사 안보 정책을 자문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해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네요. 전쟁으로 수천만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전쟁을 조장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니! 끔찍하네요.



과학자는 평화로울 때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시에는 국가에 속한다.

프리츠 하버


프리츠 하버 과학자는 비료의 핵심 원료인 질산염을 쉽고 값싸게 얻는 법을 알아내 인류의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지만 이 질산염을 가지고 대량 살상 무기인 독가스를 개발해 수만 명의 군인들을 죽여 지금도 굉장히 논란이 많은 사람이죠. 과학은 인류를 구원할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 뿐 아니라 처음 기관총을 발명한 사람이 의사였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의사 리처드 개틀링은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병사들이 총격전의 부상으로 죽어가는 모습에 소수의 병사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해 초전에 적의 전쟁 의지를 꺾게 하기 위해 기관총을 발명했다고 해요. 많은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대량 살상용 총을 만들었다니 정말 의아하죠.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의도로 만든 총은 결과적으로 그 뒤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어냈어요. 이 기관총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식민지의 원주민을 공격하고 살상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선한 의도로 만든 물건이 사람을 죽이는 기관총이라는 것이 말도 안되지만 역시나 굉장히 많은 사람을 한번에 죽이는데 쓰여서 더 안타깝네요.






원자력 연구 지식은 인류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와 공유되어야 합니다

클라우스 푹스


이 사람도 좀 황당했어요. 미국이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원자폭탄을 만들어 실험하고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그 당시 거기에 조선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원자폭탄의 폐해는 정말 끔찍합니다. 미국은 핵무기 독점을 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하였는데 독일 출신이며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클라우스 푹스는 소련에 원자폭탄 개발과 관련한 핵심 정보들을 넘겼다고 해요. 영국으로 돌아가 핵개발을 이어가다 소련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복역 후 동독으로 귀화해 중국의 핵 개발을 도왔다고 해요. 핵무기가 한 나라에 독점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무려 네 나라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그. 지금도 논쟁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네요.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별로 없지만 그렇기에 지금도 핵무기를 무기삼아 힘을 과시하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 끼여있지요. 물론 그 사람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그의 신념으로 인한 행동이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을 통해 많은 물건들이 나옵니다. 무기들 또한 마찬가지에요. 무기를 만들었으면 사용해야겠지요. 무기를 대규모로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입니까? 네. 전쟁입니다. 이 현대 산업화의 산물이 세계대전 발발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요인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고 해요.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 일어날수밖에 없었던 세계 전쟁, 이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세계는 지금도 시끄러워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나라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패권을 쥐려는 나라들. 전쟁의 승패의 배후에는 언제나 과학과 기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00년에 걸친 전쟁과 과학사를 통해 현재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전쟁에 관심이 많은 분, 무기와 기술에 관심있는 분, 200년동안 세계 패권이 어떻게 형성되어 어떤 흐름으로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를 알고 싶은 분 모두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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