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부분은 죽음은 멀리있는 것처럼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 외면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어떤 금기인 거 마냥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죽음은 늘 우리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자분도 파티에 가서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라고 소개하죠. 그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나자 주위는 순간 정적이 되고 맙니다. 우리나라도 그런데 저자분이 사는 브라질도 그렇다니 어디에 살든 죽음에 대한 생각은 비슷한 듯 합니다.
저자분은 어떻게 의사가 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의 고뇌를 밝힙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환자를 포기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상황에서는 극심하게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수없이 보며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라는 말의 무력감, 의사의 무능함에 대한 무관심을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해요. 실제로 의대에서는 죽음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지만 병원에서는 죽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그렇게 고뇌하다가 완화의료에서 답을 찾습니다. 완화의료는 호스피스로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해요. 완화의료는 병이 진행되어 신체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의학적으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와 필요를 지닌다고 해요. 저자분은 의사로서 죽음에 이른 환자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해요. 그것은 그들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음 앞에서 의사 혹은 의료진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공감이 아닌 연민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감을 해버리면 의사 혹은 의료진 본인은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진다고 말해요.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면 연민의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요.
주위를 보면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 있던 분들도 이렇게 공감을 해버렸기에 트라우마로 작용해 심리적으로 힘든분들이 많습니다.
힘든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되 연민의 감정으로 접근하라는 말이 더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저자분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