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00년 훨씬 이전에 공기의 존재와 지공 상태는 그리스인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고 해요.
이리스토텔레스의 위의 주장은 오랜 세월동안 받아들여졌다고 해요.
왜 그 많은 세월동안 사람들은 의문을 갖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며 살았을까 의문이 들었는데요. 아마도 종교가 생각을 닫게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대가 흘러 16세기가 되었을 때에야 진공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옵니다.
16세기 세계 패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던 시기라 대포가 중요해지고, 금속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광산의 채굴 갱도도 지하 깊은 곳까지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곤란하게도 지하수를 배수하기 위한 흡인 펌프가 대략 10m 이상일 경우에는 물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요.
많은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하는 과정에서 대기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와 동시에 대기를 완전히 제거한 진공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으며, 17세기가 되었을 때 토리첼리, 파스칼, 게리케 등이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반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토리첼리는 갈릴레이의 말년의 벗이자 구술필기로 명저 <신과학 대화>를 완성하였고, 수력학, 기계학, 광학, 기하학, 미적분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해요.
토리첼리의 진공에 관한 세개의 실험이 나옵니다.
현대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토리첼리의 원리를 이용한 수은기압계, 수은혈압계가 있습니다. 토리첼리에 의해 그 시대까지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실험을 통해 뒤집어버렸다고 합니다.
파스칼은 수학에서는 삼각형과 파스칼의 정리, 확률론이라는 업적을 남겼고, 과학에서는 진공에 관한 연구와 유체에 대한 파스칼의 원리, 압력의 단위로도 파스칼(Pa)가 사용되며, 유고집 《팡세》를 남겼습니다.
파스칼의 원리는 밀폐 용기의 유체에 압력을 가하면, 용기의 모양에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동일한 강도의 압력이 전달된다는 원리입니다. 파스칼의 원리는 지금도 쓰이고 있는데요. 유압 브레이크와 크레인의 암(arm) 혹은 무거운 문을 열고 닫기 위해 제어하는 도어 클로저(dooe closer)에도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게리케는 독일 마그데부르크 시의 시장으로서 시의 부흥과 정치적인 재건에 힘쓴 뒤, 진공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요.
이 사람은 마그데부르크의 '반구의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독일 황제 앞에서 직경 40cm나 되는 구리로 만든 2개의 반구를 틈이 없도록 합친후 진공상태로 만들어 16마리의 말을 이용해 당겨보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리케는 이뿐 아니라 정전기를 일으키는 기계를 제작했으며, 마찰 전기에 관해 많은 발견을 하였고, 기압계를 제작하여 기상을 예측하기도 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