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빠져드는 미술관 - 누구라도 빠져들어 내 것으로 남는 미술 교양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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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미술관을 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어떤 그림들이 왜 유행하게 되었으며 그 그림들이 어떻게해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듯 이야기를 해줘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화가마다의 어떻게 남과 다른 나만의 그림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고뇌와  삶을 조명하는 부분들이 많아 그 시절 화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  안용태 작가는 CGV 무비 토크를 진행한 바 있으며, 지난 10년간 전국의 도서관, 학교, 기관 등에서 2,300회가 넘는 인문학 강연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의 강연은 단순하게 예술과 인문학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쉽게 알려주고 자신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합니다.
지은 책으로는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유쾌한 고독》,《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미술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화가는 16 명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프란시스코 데 고야, 외젠 들라크루아, 구스타브 쿠르베, 장 프랑수아 밀레,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조르주 쇠라,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바실리 칸딘스키, 에드바르 뭉크  등이 나온다. 그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 우리는 그들의 작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어보자.

자크 루이 다비드와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조금 비슷한 면이 많았다. 내가 볼 때 어떤 게 비슷했냐하면 정치적인 면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와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왕실 수석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힘든 시기를 오랫동안 보내오다 한때는 루이 16세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리다가 급진적인  자코뱅 당원으로  깊숙이 관여하며 활동하다 자코뱅의 공포 정치가 끝나자 처형될 위기였는데 자신은 자코뱅의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에 속았다고 항변해서 빠져나갔단다. 그리고 나폴레옹을 만난 후 인생이 폈다. <알프스 산맥을 오르는 나폴레옹>을 아주 멋지게 그려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계속 꽃길이면 좋으련만 나폴레옹의 치세는 10년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줄을 잘 잡아 활동했다. 정치를 잘 하려면, 사회 생활을 잘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삶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다. 권력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참혹한 전쟁과 열병과 이별로 큰 충격을 받고 인간의 광기에 대해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1792년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은 후 그의 그림의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 있다.

일단 아래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은 <마드리드의 알레고리> 라는 작품이다.

작품의 오른편 거울에  처음에는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그러다 1812년 조제프가 쫓겨나자  고야는 초상화를 지우고 그 자리에 헌법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다. 그런데 조제프가 다시 돌아오자  고야는 다시 초상화를 그려넣는다.그러다 프랑스가 완전히 축출되었을 때 다시 헌법이라고 새겨 넣는다.그 이후 페르난도 7세가 다시 왕으로 복귀하자 페르난도의 초상화를 그려  넣는다. 그 그림은 고야가 사망한 이후 헌법을 새겨 넣었다가 지금은 독립전쟁을 기념하는  의미로  5월  2일(Dos de Mayo)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정치적인 권력자가 바뀔때마다 바꾸는 고야의 행동은 정말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도대체 몇번이나 바꿨는지....
그렇게까지 살고 싶었을까?
그때 당시 정치적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고종 세력이 청나라에 붙었다 러시아에 붙었다 하는 꼴과 닮았다.
줏대없이 이 사람한테 붙었다가 저 사람에게 붙었다가 이것이 기생충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물론 고야의 작품들은 좋아하지만 이런 줏대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좀 어이가 없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대해 나온다.
흔히 이런 주의는 미술 뿐 아니라 음악 또한 이 흐름과 같이 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무엇일까?
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나왔으며 나중에 인상주의, 추상화까지 발전했을까?
그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화가와 작품, 그 시대 상황까지 이해하기에 더 좋았다.





이 그림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이다.
그림을 보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 같았다. 알 수 없는 미지를 향해 나아가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막막한 현실.
등대라도 있다면 좋을텐데 빛조차도 없어 더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이 그림은 폴 세잔의 <대수욕도> 인데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앙리 마티스 역시 세잔의 영향을 받아 <사치 ㆍ고요 ㆍ쾌락> 을 발표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세잔에게서 기하학적 요소를 배워 입체주의로, 마티스는 색채의 효과를 배워 야수주의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 그림으로 인해 입체파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폴 세잔에 의해 현대 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폴 세잔이 왜 그렇게 중요한 화가일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와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웠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는 굉장히 명망있는 귀족이었으나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장애를 가지고 있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고, 빈센트 반 고흐는 첫째의 사산 이후 태어나 그 사산된 아이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교회를 왔다갔다하면 거기에 고흐의 이름이 씌어진 사산된 아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무덤을 수시로 보며 고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에드바르 뭉크는 5살 때 엄마가  결핵으로 돌아가시고, 엄마처럼 따른 누나 마저 14살에 결핵으로 죽었다고 한다. 장애도 있었지만 아버지한테 학대와 폭력도 당했다고 한다.

사랑받지 못하며 자란 그 화가들은 그 아픔과 외로움과 고독을 평생을 통해 그림작품으로 승화했으니 우리에겐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 화가들을 보며 아이들에게 더 사랑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화가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너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니?
너는 너만의 것을 찾았니?
네가 꿈꾸고 있는 게 있다면 일단 해봐!


화가의 삶과 그들이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처절한 고민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지혜와 통찰을 준다.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다보면 귀한 보배를 얻을 것이다.
그래서 삶 자체가 아름다운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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