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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번엔 의사가 쓴 미술책을 보았는데 이번엔 정치철학자가 쓴 미술책이다.
정치철학자의 관점에서 본 미술 작품은 어떻게 해석이 될까?
철ㆍ알 ㆍ못이지만 언제나 알고 싶은 철학과 미ㆍ알 ㆍ못이지만 늘 궁금한 미술의 세계에 대해 씌여진 책이라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의 작품인데 저자는 두 손이 맞닿은 부분만 캡처해 물어본다.
어느 쪽이 신이고 어느 쪽이 인간일까?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왼쪽의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는 느낌이고, 오른쪽의 손은 어떻게든 왼쪽에 있는 손에 닿으려고 필사적으로 뻗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왼쪽의 손은 신이고, 오른쪽의 손이 사람일까?

아까의 두 손의 정체는 이 전체의 그림으로 확인해 보시길.
예상과는 다르게 힘없이 늘어진 손이 아담이었다. 의외였다.
사람이 더 적극적으로 신을 향해 손을 뻗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덧붙인다.
그리고 이 그림의 옥에 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아담에게 배꼽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 없이 신에게서 태어난 아담에게 배꼽이 있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천지창조를 바라보는 발칙한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얼마나 책을 좋아했냐면 예전에 병인양요로 프랑스군인들이 강화도를 침략해 들어갔을때 민가 마다 책들이 그렇게 많아 놀랐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책을 많이 봤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으로도 책을 그렸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생각하면 예부터 책 보고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들어 합격하면 마을과 집안의 자랑이기 때문에 그림에도 그 염원을 나타내었을지 모른다. 책에 대한 애정은 예나 지금이나 출세와 입신양명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그렇게 책을 가까이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 쌓여 있는 책가도를 이야기하며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원주의와 일원주의, 가치 다원주의, 가치 상대주의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저자가 가자 좋아하는 화가는 파울 클레라고 한다.
파울 클레는 <고양이와 새>와 <황금 물고기> 라는 작품 정도만 들어봤는데 이 책에서 파울 클레의 여러 작품들이 나온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 파울 클레의 작품들을 보니 나 또한 파울 클레의 작품들이 좋아졌다. 어쩌면 아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인데 그림에는 철학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그림 중 <상대의 지위가 더 높다고 믿는 두 사람의 만남> 은 실제로 프러시아의 빌헬름 2세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사진과 비교했을 때 그림 속 주인공이 누구를 나타내는지 알겠는가?
루소의 자연상태와 이 그림을 연관시켜 이야기 해준다.
이 책에서 소개 한 파울 클레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짐진 아이들>과 <공포의 가면>이 흥미로웠다.


이것은 그림일까?
이것은 그림이 아니고 거울에 비친 그림을 보고 실로 본떴다고 한다.
옛날의 귀족들은 자주 거처를 옮겼는데 그림은 가져가기 어렵고, 번거로워 이렇게 카펫형식으로 실로 엮어 둘둘 말아 가져가기 편하게 하기 위해 귀족이나 왕들이 주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림도 아니고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람 손으로 가느다란 실을 잡고 엮어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가느다란 실이 잡기가 힘들어 10~12살의 소녀들이 이 일을 거의 전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다 만들고 나면 실명이 된 소녀들이 많았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봤던 땅밑의 석탄을 가져와야 하는데 땅밑으로 가는 구멍이 작아 아이들이 동원되어 땅밑에서 석탄을 등에 지고 가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도 일이 너무 고되 일찍 죽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여린 손을 떠올리면 그 당시에 어떻게 그 어린 아이들에게 그런 짓들을 자행했을까? 어른으로써 참으로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지금도 제 3세계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마음이 무겁다.
처음에 천지 창조로 신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 했는데 마지막도 니체의 사상으로 마무리 짓는다.
초인이라고 알고 있는 위버멘쉬는 신과 같은 초월자 없이도 스스로 건강하고 의미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주인적인 인간을 말한다고 한다.
니체는 위버멘쉬의 원형을 아이들에게서 찾는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나니 집에 있지만 아직 손도 못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한번 도전 해볼까라는 마음이 조심스레 든다.
미술도 처음, 철학도 처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림과 철학이 잘 버무려져 마치 김치를 먹는 듯 맛있게 매운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