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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미술관 - 자기다움을 완성한 근현대 여성 예술가들
정하윤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미술관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성의 그늘에 가려 여성 화가로서 활동하기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여성으로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여자의 미술관이라는 책 제목을 보는데 '엄마' 란 단어만 들어도 울컥하듯 울컥 했습니다. 여성화가로서 그 여성들은 어떤 힘듬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며 어떤 그림들을 그렸을까요?
프리다 칼로, 쿠사마 야요이, 니키 드 생팔, 조지아 오키프, 오노 요코, 마리 로랑생, 소니아 들로네, 생트 오를랑, 루이스 부르주아, 정찬영, 이성자, 힐마 아프 클린트, 매리앤 노스, 정강자 등의 여성화가들의 그림과 어떻게 여성으로서 주체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여성화가 한명, 한명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이기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림들을 보며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여성으로서 주체적으로 이 미래를 일구고 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쓴 작가는 대학 때 여성 미술가들을 공부하는 '여성과 예술' 교양수업을 듣고 사라진 여성 미술가가 얼마나 많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런 여성 화가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해요.
그녀의 취지에 공감했고 내용을 보면서 저도 같이 분노하였습니다. 책을 보면서 그림은 남자만의 소유물도 아닌데 여자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 그림에 어떤 영감을 담을 수 있는 화가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왜 미술사적으로 그림은 거의 남자화가만 있는 것일까요? 언뜻 생각해봐도 생각나는 여성화가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그냥 생각을 해봐도 예술파트도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성 위주의 예술 파트에서 꿋꿋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소리를 내뿜었던 여성 화가들 중 더 인상깊었던 화가들을 소개해봅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트라우마를 미술을 통해 치유한
니키 드 생팔
이것은 많이 봤음직한 작품 니키 드 생팔의 <삼미신>입니다. <나나> 라고 통칭되는 하나의 시리즈로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가 열렸다고 해요. '나나'는 불어로 '여자' 를 일컫는 속어로 프랑스에서는 고급 매춘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나나' 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할머니나 보모를 일컫는 애칭이라고 합니다. '나나'라는 단어의 의미는 '몸을 파는 여성'과 '양육자' 로 양분된다고 합니다. 니키 드 생팔은 여성을 어떻게 딱 두가지의 전형으로 나눌 수 있냐며 이와같은 이분법적 여성관을 거부했다고 해요. 피부색이나 성별 같은 외적 기준 때문에 차별받지 않고 모두 즐겁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생팔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서로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며 화합하는 그런 세계가 되었으면 하고 저도 바래봅니다.
존 레넌의 '아내'가 아니라 '나'로 살아간 오노 요코
세계적인 락의 전설 비틀즈 멤버 존 레넌의 일본인부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오노 요코에 대해 나와있어 자세하게 보았어요. 오노 요코는 오직 작품에 몰두하여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육아와 집안일에 집중할 수 없어 남편이 아이를 전담해서 양육하는 것을 생각했다고 해요. 지금도 파격적인데 그 당시에 그리 생각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남편과 파경을 맞이하고 존 레넌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서야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해요. 존 레넌은 일체의 음악 활동을 접고 주부 일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그 시기 존 레넌은 이제야 비로소 진짜 삶을 살고 있다며 행복해 했대요. 세계적인 스타였지만 마음은 한없이 피폐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노 요코는 바깥일을 하고 존 레넌은 집안 일과 육아를 담당한 멋진 부부였는데 왜 사람들은 말이 많았을까요? 아마도 존 레넌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아서였겠지요. 존 레넌의 재능이 아깝기도 하고요. 여러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누가뭐래도 역할이 바꼈을 뿐 자신의 행복, 부부가 행복하게 생활해 나갔다는 게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림 그리며 육아한, 1930년대 '워킹맘' 정찬영
우리나라 여성 화가에 대해서도 몇명이 나옵니다. 그 중에 이 정찬영 작가는 그림을 그려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내는 족족 수상을 했던 인물이었어요. 존재자체가 희귀한 '규수'여성 화가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탄 사건은 세상이 깜짝놀랄만한 일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재능이 많고 수상경력도 화려한 정찬영 화가는 결혼을 하기 전 남편에게 '가정을 이루더라도 작품 활동은 계속한다'는 조건을 걸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그림 하나만을 중요시했는데 이제는 온 마음을 다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던 작가. 그러다 둘째아들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식물학자인 남편 도봉섭의 식물 연구를 돕기 위해 식물 세밀화를 그렸지만 1950년 이후 6ㆍ25 전쟁때 남편이 납북되면서 완전히 붓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여러 굵직한 역사의 흐름속에 아들을 잃고 남편도 납북되면서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요? 오롯이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던 그 여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 재능이 참 아깝지만 그 작가님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산 것일테지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라 더 안타깝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어쨋든 살아내야 했을테니까요.
고통 속에 짓이겨진 민중을 위한 미술가 케테 콜비츠
케테 콜 비츠의 그림들을 보면 너무나 절실하고 비통한 고통이 다가와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평소 작가는 힘 없고 약한 이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힘들고, 외롭고, 아픈 이들이 처한 현실을 그리는 케테 콜 비츠는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그림만 보아도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도 독일군으로 제 1차 세계전쟁에 참가했던 아들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땠을까요? 한없는 절망, 후회, 분노로 작품에서도 나타납니다. 아들의 애국이 전쟁에 나가는 것이라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애국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림에 전쟁을 반대한다는 자기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냅니다. 그림만 보아도 결의가 느껴지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역사는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말았지만 케테 콜비츠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해주고 싶었던 절실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네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림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평화와 정의, 사랑과 연민이 살아숨쉬는 세상을 이뤄나가도록 독려하는 것 같아요. 그림 자체가 뜨거운 울림과 감동을 줍니다.
더 많은 여성 화가들이 나오는데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래요. 여성화가들의 생각과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지거든요. 그림이나 작품을 통해 그 여성들의 생각들이 진정한 나다움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방황하고 흔들려도 진정한 나를 찾아 가꾸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여성화가들도 많이 있겠지요? 지금도 여성이란 선입견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으며 싸우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림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 자신을 살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