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일상
김병년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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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인가, 우상숭배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QT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말씀 묵상의 세월은 20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지금도 그 때 했던 QT책이 다 남아 있다. 이사를 몇 번 하면서도 아내의 잔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내 책꽂이 한 켠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가끔 옛 적 QT노트를 들춰보곤 한다. 첫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조잡했다. 주어진 본문 읽고는 하나님 이러이러하게 살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떤 날은 주님! 오늘은 진짜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나요. 죄송합니다. 아멘!” 보면서 키득키득 거린다.

 

10대를 지나 2~30QT노트로 넘어오면 제법 묵상의 깊이가 느껴지는 멘트들이 QT노트를 수놓는다. “! 내가 대학생 때 이런 통찰을....” 나도 모르게 으쓱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게 여기다가 문득 내 맘에 주님이 물으신다. “통찰? 그게 니끼가!” 순간 도둑놈 심보가 들켜 얼굴이 화끈거린다.

 

묵상의 매너리즘은 메시지가 어디로부터인지 착각하는데서 비롯된다. ‘쉐마라고 하지 않았나? 말씀을 펴놓고는 들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인데, 나는 들리는 게 아니라 내 속에서 떠오르는 거야!’ 이러고 앉아 있으면 게임 끝이다. 멸망의 길이 활짝 열렸다.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이 우상숭배”(79)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나는 매일 아침 묵상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병년 목사님의 책, ‘묵상과 일상은 이처럼 왜곡된 묵상의 태도와 관점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터닝 포인트이다. 저자의 담백하고 묵직한 묵상의 여정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잠잠히 각자의 묵상의 시간과 일상의 간극을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의 깊이 있는 묵상에 대한 통찰이 전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성공한 묵상과 일상의 조화를 나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솔직하다. 안 되는 건 왜 안 되었던 건지, 그래서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포장 없이, 가감 없이 고백한다. 그러하기에 그 고백에 우리는 토를 달 수 없다. 그저 조용히 내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기 바쁘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고 말씀 묵상이 더 깊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영적 꼰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묵상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점점 수단이 되어간다. 설교하기 위해, 가르치기 위해 묵상은 도구가 되어 간다. “분주하고 산만한 마음은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감당하지 못한다.”(92) 그 평범한 일상을 비범함으로 바꾸고 싶은 열망이 시들어 가자 말씀 묵상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 졌다.

 

묵상이 점점 도구가 되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나도 모르게 말씀 묵상만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불신앙(?)’ 때문이다. 이상하다. 목사가 어떻게 말씀만으로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목회의 자리에 서면서 점점 내 마음에 독버섯처럼 이런 믿음 없음이 자라고 있었다. 경험이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묵상이 내 삶에 언제나 형통함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151) 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말씀은 답안지가 아니라 길라잡이이다. 부끄럽다. 목사 되기 전에는 말씀의 인도하심을 믿었는데 이제는 내 지식과 경험을 더 믿고 있는 꼴이라니...

 

이 책을 통해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의 말씀 묵상! ‘자기 방식으로의 사랑, 우상숭배가 아닌 들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말씀 묵상을 회복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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