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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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러 장르로 씌여진 책이다. 이야기도 있고, 편지도 있고, 역사적 기록도 있다. 그리도 또 하나의 빼 놓을 수 없는 장르 도 있다. 시라고 하면 시편만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잠언, 전도서, 욥기’, 그리고 대부분의 선지서들도 시로 구성되어 있다. 설교자는 장르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설교학자들은 강조한다. 하지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의 저자 월터 부르그만은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설교를 로 하라는 말인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렇다면 이제 설교를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다행이도 책을 읽어보지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저자는 설교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설교의 임무와 가능성은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새로운 형식의 담화로 드러내는 것이다. 극적인 담화, 예술적인 담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대화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담화, 과학 기술의 이성을 탈피한 담화, 추상성을 띠는 존재론에 얽매이지 않는 담화, 구체성을 겁내지 않는 담화가 바로 그것이다.”(p13)

 

이를 위해 저자는 설교자로 하여금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인이되라는 것은 함축하여 짧은 문구로 독자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서 를 쓰는 시인의 역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산문의 세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시인”(p14)으로서의 설교자를 말한다.

 

설교자는 그러한 시인이 되어 하나님은 배상이 이루어진 뒤에 만아 있는 통증을 해결하신다는용서의 담화를, ‘하나님은 신실함과 보증이 담긴 말씀으로 소외와 분조의 순환을 끊으신다는친교의 담화를 그리고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그분에게 복종할 때 새로운 삶을 주어진다는복종의 담화를,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순응을 요구하는 세계를 향해 주목할 만한 저항의 용기를 보이고, 스스로 순응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주장하는 오만함이 그분의 준엄한 위엄 앞에 항복하여 찬양할 때에 참된 자기 자신된다는자유의 담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

 

만약 설교자가 복음을 산문으로 환원하게 되면 결국 우리의 신앙공동체는 복음의 약속을 오용하게 되고, 오용은 삶의 왜곡을 일으키고, 삶의 왜곡은 마비와 통증, 소외와 분노, 쉼 없는 상태와 탐욕, 순응과 자주권으로 귀결되고 만다.”(p208) 말씀이 던지는 돌직구변화구로 다듬어 유인구가 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설교자는 뻔한 스토리와 밋밋한 시놉시스로 평균 시청률은 유지하는 드라마 작가가 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과 대담한 담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때에 설교자는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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