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8
장귀연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입문서의 덕목은 쉬우면서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쉽게 써야 하고,


앞으로 이 문제에 계속 관심 갖고, 공부하도록 하려면 재미있게 써야 한다.


이 책은 그 두 가지 덕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은행 부문과 공공 부문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는 생생한 증언이 많아 


(이런 이야기에 쓰기엔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는 입문서의 기본적인 미덕에 


자기 관점이라는 한 가지 미덕을 더 갖추고 있다.


저자는 현재 노동권 개념은 내부 노동 시장이 형성될 때 수립된 것인데


지금은 내부 노동 시장이 해체되는 상황이라 


기존의 노동권 자체를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게 가능한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겠지만, 흥미로운 관점이다.


2006년에 나온 책이라 세부적인 면에서 업데이트가 필요하긴 하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입문서로 꽤 훌륭한 책인 것 같다.

이처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내부 노동 시장의 이점이 축소됨에 따라 비정규직이 증가한다는 설명은 현상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 방식은 너무 협소한 설명이기도 하다.…(중략)…사실 기술 발전과 탈숙련화는 꾸준히 지속돼온 것이며, 실제로 내부 노동 시장이 형성되던 시기에도 그 이전 시대에 비하면 기계와 기술의 표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현재와는 반대로 내부 노동 시장이 형성되고 강화되었다. 그리고 대기업의 슬림화가 나타나고 있다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의 지배력은 더 커졌으며 사실상 기업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업무를 분사나 용역 등의 형식을 빌려 간접 고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매일매일 해야 하는 핵심 업무에도 비정규직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내부 노동 시장이 붕괴한 것은 근본적으로 기업의 전략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 발전이 이를 쉽게 실행할 수 있도록 했겠지만, 전략 전환의 직접적인 원인은 세계적 경쟁 압력이 강화되고 케인스주의가 사라진 경제 환경의 변화인 것이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66~67쪽

노동의 성격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이 특히 비정규직 형태에 걸맞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재는 비정규직 고용이 일반화된 분야에서도 초창기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학습지 교사나 운송업과 같은 분야는 지금은 특수 고용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1990년 초반까지는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반대로 더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제조업 부문의 노동자 역시 내부 노동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는 지금의 비정규직과 유사한 방식으로 고용되던 시대가 있었다. 이를 보면 서비스 부문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만연한 것은 서비스 노동의 본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서비스 부문이 팽창한 시기와 비정규직 고용이 확산하는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68쪽

이 구조 조정 중에 은행의 노동자들은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가? 은행의 퇴출과 합병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게다가 1998년 IMF의 조건을 부로가 몇 달 내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은행들은 허둥지둥 대규모 인원 감축을 시행했다. 그러다 보니 우습게도 정말로 필요한 일손조차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실컷 해고를 시켜놓고 얼마 안 가 은행들은 다시 새롭게 채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고용 형태를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즉 계약직으로 채용했던 것이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81~82쪽

따라서 1998년 공공 부문 구조 조정을 다급히 시작하면서,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는 각 공공 기관마다 인원 감축을 할당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계획은 2001년 말까지 정부 부처, 지자체, 공기업 및 정부 출연 기관 등 공공 부문에서 약 14만 명을 감축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1997년 말 인원의 20%에 해당했다. 그리고 기획예산처의 <공공 개혁 백서>에 따르면 이 계획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즉 공공 부문의 노동자 중에서 14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92쪽

기획예산처는 계획된 구조 조정이 이루어진 후에도 경영 평가를 통해서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산하 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예산이 깎이기 때문에 실제 공공 부문의 기관들은 직접 할당이 아니더라도 정규직 채용이나 비정규직의 노동 조건 개선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E공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가 기획예산처 평가에서 매우 낮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94쪽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잇`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언제 끝이 날까, 비정규직 노동자도 이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야 하는데……한 사람 두 사람 떨어져 나갔다. 미안함은 그지없었지만 생계가 있고 가족이 있었다. 517일이 지나자 남은 사람은 200여 명이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펑펑 울었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간접 고용으로 떨어졌다.
그 나날들이 후회된다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좋았다는 사람도 있다. 결과만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집단교섭과 집단행동을 해도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러나 나비효과란 말도 있듯이, 세상일이란 그렇게 직접적인 결과대로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조합의 투쟁을 전후하여, 또 그 기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132~133쪽

그러나 기술적·사회적 발전과 기업의 이익 때문에 희생되는 노동자를 자유롭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노동권의 개념이 다시 확립되어야 한다. 노동을 하는 사람은 그 대가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권리 말이다. 반대로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화는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함에 시달리도록 몰아넣는 방식이다. 정규직 임금 노동자를 전형적인 노동자로 간주해서 수립된 기존의 노동권 개념이 좁은 것으로 드러난 이상, 이제는 노동권을 더욱 확장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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