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가능하다 - 베네수엘라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외 지음, 임승수 외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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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났다. 13년간 국가를 이끌어온 현직 대통령이 다시 연임에 성공했다. 남미의 베네수엘라 이야기다.

7일(현지시각)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에 세계가 주목했던 이유는 단 하나, 우고 차베스 현 대통령 때문이었다. 그는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있다는 칭송과 독재자,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논쟁적 인물이다. 

이번 대선 역시 차베스를 둘러싼 기존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재선 여부에만 관심이 쏠렸다. 그의 재선으로 베네수엘라식 사회주의 혁명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가능하다>의 저자들은 차베스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들은 "차베스와 정부 너머의 것을 보지 못한다면 베네수엘라의 핵심적인 정치 동력 하나를 놓치게 된다"며 볼리바리안 혁명(차베스 집권 이후의 혁명 과정을 일컫는 말)의 주체인 민중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이 혁명의 역동적 근원을 밝힐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 각 분야 운동가 30여 명을 만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대도시 빈민가 주민들의 주거권 쟁취 투쟁을 비롯해 노동운동, 농민운동, 협동조합운동, 성소수자운동, 학생운동 등 다양한 부문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담아낸 이 책은 그대로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혁명의 기록'이다.

"뭐가 어떻게 좋아졌냐고요? 모든 게 '엄청나게' 좋아졌죠"

이 책의 저자들은 분명하게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을 옹호한다. 차베스 집권 후 빈곤은 줄어들었고, 민중의 삶은 개선됐다. 150만이 넘는 성인이 문자를 배웠고, 누구나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무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지역공동체 운동가인 히딜프레도 솔사노는 "모든 것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개선되었냐고요? 모든 것이 좋아졌죠. 보세요. 공공서비스, 교통, 도로, 전기, 급수 사업이나 수돗물 등 모든 부분이 나아졌어요. 단순히 나아졌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엄청나게' 나아졌어요. 완전 달라졌죠. 

이전엔, 우리는 어느 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응급 진료소와 문화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를 비롯한 꽤 많은 수의 미션이 실행되고, 각 활동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이를테면 건강, 스포츠, 문화 같은 식으로 말이죠. (중략) 이런 게 믿겨지세요? 이제, 당신도 여기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생각이 들죠?"
-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427~428p

베네수엘라의 변화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생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보다 폭넓고 다양한 권리들이 신장되고 있다.

게이인권운동가인 마리아넬라 토바르 역시 차베스 집권 후에 생긴 변화를 강조한다. 차베스가 집권하고 베네수엘라에서 게이 행진이 시작됐고, 카라카스 시에서 게이 행진을 지원하기도 했다.

"차베스 집권 이전에는 게이 행진이 없었어요. 게이 행진은 차베스 집권 후에 생긴 새로운 분위기 중 하나예요. 첫 행진 때는 그다지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들 참여해요. 저는 이번 행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카라카스에서 약 4만 명이 모였다고 들었어요. (중략) 예전에 열린 행진 때는 두 번 모두 무대를 비롯한 모든 것을 카라카스 시에서 지원했습니다. 시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행진을 준비하는 조직들과 함께 참여했어요."-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150p

"이제는 민중이 통치방식을 바꿔야 할 때"

거대한 사회 변화는 반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옹호하면서도 볼리바리안 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 '혁명의 그림자' 또한 비껴가지 않는다. 

이 책이 지목하는 '혁명의 그림자'는 차베스를 둘러싼 보수적 관료와 관료제다. 협동조합 운동가인 알폰소 올리보는 운동의 전진을 방해하는 관료와 관료제를 소리 높여 질타한다.

"차베스와 함께하는 집단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방식의 경제활동을 발전시키려 할 때 이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정부 내부에 분명히 있습니다."
-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221p

"이행인증서라는 서류 발급 때문에 협동조합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 서류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협동조합 대부분이 그 서류가 없어요. (중략) 20년 전에는 협동조합이 정부와 약정을 맺는 데 5단계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20단계가 필요해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죠. 겉으로는 협동조합 운동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제로 협동조합 운동을 방해하는 거예요!"-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216~217p 

그러나 볼리바리안 혁명을 이끄는 수많은 활동가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낙담하지 않는다. 그들은 민중의 힘으로 보수적 관료들을 넘어서 볼리바리안 혁명을 전진시킬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며 믿는다. 학생운동가 세사르 카레로의 말처럼 "혁명 과정은 이미 차베스 대통령보다 더 커져 버렸다." 그래서 알폰소 올리보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인다. 

"누군가 거리에서 '이것은 혁명이다. 나는 차비스타(차베스 지지자)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국가를 바꾸기 위해서 뭘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전에는 권력자들이 착취와 도둑질로 통치를 했지만, 이제 우리 민중이 통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219p

2012년 12월... 대선 후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이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을 미화한다는 '혐의'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즉 보수적 관료들이 혁명을 후퇴시킬 가능성과 그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민중운동이 필요하다는 제언은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도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모두가 대통령만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야단이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이 집권하면 한국사회가 유토피아가 되기라도 할 것처럼 선전한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남북평화… 어느 것 하나 5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완수하기 어려운 목표건만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야권 지지자들은 야권이 정권을 잡으면 이명박 정부에서 크게 후퇴한 민주주의와 민생경제, 남북평화 이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복원시킬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야권 지지자들의 바람대로 야권단일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세상은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부 내의 보수적 관료들에 포획되어 그나마 갖고 있던 한 줌의 진보성, 혹은 개혁성마저 탕진해 버릴 공산이 크다. 10년의 민주정부가 사람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긴 이유의 상당 부분이 바로 거기 있다. 

그래서 김대중정권에서도 노무현정권에서도 진보개혁인사들의 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약화되어버린 반면에 관료들은 갈수록 힘을 얻게 되었다. 단적으로 노정권 출범 당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참모와 내각 중 32퍼센트였던 관료출신이 3년 뒤엔 40퍼센트로 늘어났고, 특히 경제라인의 경우 이정우 정책실장이 물러나면서 100퍼센트 관료로 채워졌다.
-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68p

문재인 정권, 혹은 안철수 정권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최근 안철수 캠프에 '모피아의 대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영입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진보개혁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풍부한 실무경험을 갖춘 보수적 관료를 완전히 배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수적 관료들은 끊임없이 정부가 진보적, 혹은 개혁적 정책을 펴는 것을 막을 것이다. 

여기서 '대선 이후'를 사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선 후에 등장한 정부가 시민들의 열망과는 달리 진보적, 혹은 개혁적 노선에서 후퇴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들의 주장처럼 강력한 운동이 필요하다면, 어떤 운동을 어떻게 조직하여 정부를 진보적 방향으로 견인할 것인가.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그래서 책장을 덮으며 "우리가 국가를 바꾸기 위해서 뭘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알폰소 올리보의 말을 자꾸 되뇌게 된다. 2012년 12월, 대선이 끝난 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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