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죄를 고하여라 -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
심재우 지음 / 산처럼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사법개혁이 연일 화두다. 석궁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 개봉,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서기호 판사 등 일련의 사건 속에서 사법부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사법은 과연 어떠했을까? 사법의 눈으로 바라본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네 죄를 고하여라>는 이런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잘 설명하고 있다. 심 교수는 "법에 대한 이해가 당대 사회의 모습과 문화를 읽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 책은 범죄와 형벌을 둘러싼 조선의 법률문화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법률과 형벌을 통해 기존의 역사서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권이 없던 암흑시대, 조선의 형벌 

본격적인 서평을 시작하기 전에 알려둘 사실이 있다.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1부 '조선시대 형벌과 고문'은 안 읽는 편이 좋다. 저자는 "조선의 법제도 또한 나름의 체계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굳이 비교하자면 전근대 동양의 형벌이 서양보다 좀 더 인간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서양과 비교했을 때 이야기다.

특히 능지처참이란 말로 더 유명한 능지처사를 다룬 8장은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 능지처사에서 '능지'는 산이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능지처사라는 말은 가능한 한 느리게 고통을 극대화하면서 사형에 처한다는 뜻이다. 실제 사례를 읽으면 고통을 극대화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명나라 때 환관 유근은 3357번의 칼질을 당하면서 죽었고, 관리 정만은 3600회의 절개를 당했다고 한다. 청나라 때는 칼질의 회수가 8회, 24회, 36회, 72회, 120회로 제한되긴 했지만, 살을 도려내는 순서를 설명한 부분을 읽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조선에서는 능지처사형 집행을 "수레에 죄인의 팔다리와 목을 매달아 수레를 끌어서 찢어 죽이는 거열로 대신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 나름대로 체계적인 형법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곤장만 해도 그렇다.

저자는 "TV 역사드라마에서 고을 사또가 곤장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법적으로 허용된 행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곤장은 군법을 집행하거나 도적을 다스릴 때 사용"했기 때문에 "주요 군사권을 가진 일부 수령들을 제외하곤 고을 수령은 곤장을 사용할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의 기록을 보면 정조의 곤장에 대한 강한 규제가 정조 사망 이후 느슨해지자, 정부의 감시가 잘 미치지 못하는 지방 고을 수령들이 규정과 상관없이 불법적으로 형장을 남용하여 예사로 곤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중략) 도대체 얼마나 두들겨 패야 통쾌한 것일까. 정조 말기 창원부사 이여절은 부임 이후 여러 가지 구실을 붙여 무려 경내 30여 명의 백성들을 곤장 등으로 마구 매질해서 죽였다.(중략) 암행어사 유경에 따르면 이여절의 행동은 매우 거칠고 성격이 잔인하여 그의 형벌에 의해 아버지와 두 아들 등 모두 세 명의 부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 -<네 죄를 고하여라> 35~36p

조선시대를 현대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이 온당치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대목을 읽으면 '조선시대에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여절의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적어도 인권의 눈으로 볼 때 조선시대는 암흑시대였음이 분명하다.

범죄와 자살로 읽는 조선 시대의 가부장제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서 읽을 부분은 3부 '죄와 벌에 비친 조선사회'다. 특히 흥미를 끈 것은 형벌과 법률을 통해 본 조선사회의 가부장제였다. 

정조 때의 형사판례집 <심리록>에는 부부 싸움 등의 이유로 배우자를 죽인 사건이 70건 집계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남편이 처첩을 살해한 경우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시대 남녀불평등의 실상을 읽을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간혹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똑같이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에도 남녀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했다. 

"이에 따라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의정부, 사헌부, 의금부 관리들이 합동으로 죄인을 신문할 정도로 큰 변고로 여겼으며, 살인한 여성을 사형에 처함은 물론 가족과 고을 수령까지 연좌시키는 것을 법전에 명문화했다. 이는 정조 때 부인 살해 가해자인 남편이 재판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정이 참작되어 실제로 사형에 처해진 자가 한 명도 없었던 <심리록>의 기록과 대조를 이룬다." -<네 죄를 고하여라> 265p~266p

조선시대의 자살을 다룬 부분도 가부장제의 질곡을 여실히 드러낸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라는 부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선시대 자살의 상당수는 강요된 자살이었고 자살의 원인 제공자들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역시 <심리록>에 수록된 자살자의 성별을 분석하면 38건 중 31건이 여성인데, 이중 상당수가 간통, 강간, 추문 등 치정에 얽힌 자살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잘 보여준다.

"대저 시골이란 양반과 상민을 구분할 것 없이 정숙한 여자가 포악한 자들에게 욕을 당하거나 나물을 캐다가 한 번 끌려가기라도 하게 되면 갑자기 바람을 피운다고 손가락질을 받아 온갖 오명을 쓰게 된다. 그러면 강간을 당했든 안 당했든 간에 바람을 피웠다는 모함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씻기 어려운 것이라서 방 안에서 목을 매 자결하기로 맹세하게 되니, 그 일은 어둠에 묻혀 밝혀지지 않고 그 심정은 잔인하고도 비장하다.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호소해봤자 더러는 눈물을 훔치며 방문을 나서고, 더러는 남 보듯 하면서 다른 데로 가버리니, 적적한 빈방에서 수치와 분노가 가슴속에 교차되어 구차하게 살아보려 하여도 참으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박승문 옥사, <심리록> 

박승문이라는 자에게 몸을 빼앗긴 황여인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정조가 내뱉은 한탄이다. 이보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전라도 전주의 과부 정여인은 "다른 남성과 정을 통하여 가문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친족들로부터 자살을 강요받아" 죽음을 택했다. 

"관련 수사 기록을 종합한 것에 따르면 정여인의 당숙 정대붕은 정여인이 비상을 마시도록 위협했으며, 숙모 이여인은 독약과 술을 준비하고 사전에 계획을 모의했다. 심지어 이들은 정여인이 독을 마시고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땅에 매장해버렸다고 하니, 이쯤 되면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과부의 정절 윤리는 더 이상 훼손할 수 없는 지고지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 <네 죄를 고하여라> 295p

조선사회를 위해 변명을 한 마디 하자면 자살의 원인제공자들은 '위핍치사'라는 죄목으로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황여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박승문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인 유배형을 받았고, 정여인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정대붕은 가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해 물고됐다. 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 법. 가부장제의 질곡 속에서 희생당한 여인들의 한은 누구도 풀어주지 못한다. 

더 대중적인 교양서를 기대한다

한 가지 아쉬움을 꼽자면 이 책이 대중 역사서 치고는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재미라는 것이 상당히 주관적인 기준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꽤나 흥미로운데도 정작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대목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이라는 주제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간 <불편해도 괜찮아>처럼 이 책도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소설이나 TV사극을 인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급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쉽게 서술하려는 노력은 보였지만, 재미있게 쓰기 위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껏 비중 있게 다뤄진 적이 거의 없던 조선시대의 법률문화를 한 권의 대중 교양서로 묶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법률은 신체적 자유를 직접적으로 구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삶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의 눈, 사법의 눈으로 지나간 시대를 바라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따라서 법률문화를 통해 조선을 바라본 <네 죄를 고하여라>를 읽는 것은 조선사회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법의 관점에서 조선의 가부장제를 설명한 부분은 흥미롭고도 유용했다. 다음에는 더욱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조선의 법률문화사'가 출간되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