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 - 서른둘, 나의 빌어먹을 유방암 이야기 삶과 이야기 3
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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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 _니콜 슈타우딩거 지음, 장혜경 옮김/갈매나무 (2021)

책의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새드엔딩이 취향이 아니라니. 새드엔딩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에 해피엔딩만을 맞을 수는 없죠. 사람에게 취향이 있다면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기 마련이잖아요. 싫어하는 게 있다면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구요. 책의 제목이 ‘해피엔딩이 취향이라’가 아니라 <새드엔딩은 취향이 아니라>인 이유는 슬픔과 좌절이라는 어찌 보면 작가의 과거 상황에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감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행복할 수 있다는 기대는 접어놓아도,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는 벗어난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내일을 살 수 있기에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되어 아침이 되었을 때는 하루를 열심히 살 준비가 되어있다는 거거든요. 내일이 기대된다는 것만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동기 부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서른두 번째 생일날 유방암 진단을 받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믿음이 깊은 남편의 아내, 무엇보다 여성들의 순발력을 증진시키는 트레이너인 니콜 슈타우딩거가 암을 만나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에게 절대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은 ‘희망’, 절대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불안’입니다. 암을 진단받은 순간부터 니콜은 죽는 건 아닌지, 죽으면 두 아이들은 엄마 없이 누가 챙겨줄지, 남편은 아내와 함께 해온 모든 걸 갑자기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이 숨통을 틀어막고 그 정도로까지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서웠다.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어제만 해도 무사태평이었다.”

이렇게 저까지 공포가 느껴질 정도의 아픔이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그의 고통을 느낄 수 없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오로지 저에게 달려있는 거니까요. 의사도 니콜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암은 치료해줄 수는 있지만 환자의 마음은 어떻게 해드릴 수 없으니 자신이 다스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니콜은 제가 그의 아픔에 공감해주거나 동정해주길 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새드엔딩은 그의 취향이 아니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고통은 카를이 맡고 있었거든요. 아, 카를이 누구냐고요? 니콜의 가슴에 있는 빌어먹을 ‘그’ 자식이에요. 처음 친구가 붙인 이름인데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기왕 있으니 이름 하나쯤 지어주고, 그러면 혹시나 기분이 좋아져서 더 빨리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책을 읽으면 그의 취향을 따라가다가 자칫 고통에 무뎌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가 담담하면 담담할수록 아픔의 깊이는 더 깊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깊어질수록 어둠이 익숙해지기도 하지만요. 사실 제 얘기를 굳이 이곳에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니콜의 이 대목에서 저였기 때문에 그런 니콜의 다른 얼굴이 보였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놓은 적이 있답니다ㅎ ‘힘들 때도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빈틈도 용서하지 못했는지 말이다.’ 불행 속엔 그만큼의 행복이 존재하고 행복 속엔 그만큼의 불행이 숨어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왔을 때 만약 그때의 감정에 잠식된다면 영원히 행복을 보지 못할지도 몰라요.

“자학을 즐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뭔지는 몰라도 이 모든 일이 내 인생에 유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이유가 있어서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이 시간을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견디고 싶었다.”

니콜이 이유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이유도 모른 채,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머릿속을 떠다니며 그를 괴롭힌 악랄한 상상들이 그가 볼 수도 없는 엔딩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생각은 행동에 미친다.”

암을 진단받았을 때 그의 절망적인 생각이 숨통을 틀어막았지만 카를이라고 부른 순간부터 카를은 어쩌면 사라지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이 행동이 되고 행동은 취향이 되겠죠. 당신의 상영 중인 영화는 매 순간 진행되고 있기를 바랍니다. 엔딩을 향해서, 예측하고 싶은 방향으로.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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