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유산들
리디아 플렘 지음, 신성림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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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우리에게 말도 없이 다가온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녀라면 누구나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남겨진 자녀에게 그 상실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라 강요하고 있다.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니 유난떨지 말라고  리디아 플램은 자신의 책 [수런거리는 유산들]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부모의 죽음은 가장 가슴 아픈 상실이며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므로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애도의 기간이 꼭 필요 하다고.  그래서 리디아 플램은 장례식이 끝난 후 부모가 살던 집을 비우는 일을 하면서 자기 방식대로의 애도 기간을 가지게 된다. 

 

부모의 소유였던 물건들을 그들의 허락 없이  처분히고, 정리하고 결과적으로 비워내야 하는 일은 부모의 부재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워내는 행위인 동시에 리디아 플램의 내면에 부모의 기억들을 채워넣는 일이 되었다.  부모의 집에 남겨진 수많은 물건들 - 청구서, 영수증, 편지들, 어머니가 직접 만든 옷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만든 레이스 징식들까지 - 을 통해 함께 했던 경험들을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었다.  그 추억은 행복했었던 기억도, 서로를 용서하지 못했던 가슴 아픈 기억도 존재했다.  그렇게 부모의 집에 남겨져 있는 수많은 물건들은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리디아 플램의 부모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곳에서 살아남은 남자와 여자는 요양원에서 만나 전쟁과 병마와 죽음을 넘어서 사랑을 쟁취해 내었다.  하지만 그 남녀가 살아가는 내내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자녀인 리디아에게는 철저히 차단되었다.  아마도 그 부모는 리디아에게 그 끔찍했던 기억을 남겨주지 않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리디아는 부모의 집을 비우는 일을 하면서 그 기억, 수용소에서 부모가 경험햇을 모욕감과 배고픔, 고통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그러한 경험은 부모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리디아가 막연하게만 느껴왔던 공포심을 걷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가 나누었던 750여통의 연애편지는 리디아가 부모의 젊은 시절 받아야만 했던 상처를 이해하고, 그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나는 아직도 우리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여태까지는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성도 못느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부모님의 사생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의 연애이야기라던가, 어머니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알고 싶어졌다.  친척들의 대화를 통해 막연하게만 느끼고 있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방황,  그 방황의 이유를 알게된다면 지금의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늦으면 늦을 수록 좋을 것이다.  차라리 겪지 않는다면 더 좋을 것이고.  하지만 부모가 자녀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그 자녀가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곁에 없을 지라도 그분들이 사용했던 물건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낼 것이다.  그 물건은 정리되고 처분되어 비워지겠지만, 그 물건과 함께 했던 부모님과의 추억은 차곡차곡 우리의 가슴 속에 쌓여져 나갈 것이다.  부모님은 이 세상에 없어도 그 자녀인 내가 존재하는 한, 그분들 역시도 나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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