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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김태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1월
평점 :
머리말에서 저자는 극단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광신에 사로잡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고 자신의 믿음을 타인들에게 강요하는 것”
이 부분만 읽고 나서는 솔직히 조금 뜨끔했다. 근 몇 년 동안 나의 행적을 돌아봤을 때, 이 문장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조금 꺼려졌다. 물론 저자의 소견 중 부족하거나 틀리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있으면 가차 없이 비판하며 읽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 책의 주제가 ‘극단주의’인 만큼 괜히 저자보다 스스로에게 더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런 나의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나의 행적들이 극단주의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는 것 역시 자신하게 되었다.
저자는 극단주의를 조성하는 요소와 그 역사를 설명한 후, 본격적으로 미국 심리학이 주장하는 극단주의의 오류를 낱낱이 해체하며 비판한다. 기억나는 건 ‘같거나 유사한 성향, 이념 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극단화된다.’는 미국 집단심리학의 논리는 틀렸다는 비판과(그 예: 한국의 촛불혁명), ‘인간은 본래 그렇다’는 인간혐오를 기저에 두고 있는 미국 심리학은 학살 등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이들을 옹호하며, 그 출발 자체도 민중 혐오라는 분석이다. 샅샅이 따지자면 책 내용 중 걸리는 부분도 꽤 있었지만–저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촛불혁명을 ‘평화적’이었다고 회고하고 칭송하지만, 과연 정말 그 현장에 폭력과 혐오는 없었나?, 저자의 ‘남성혐오’ 워딩 사용 등-그래도 이 책을 통해 극단주의의 온상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 전반의 현실을 가볍게나마 훑어보고, 요새도 계속 관심을 갖고 있던 심리학을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유익했다.
무엇보다 내게 즐거움과 용기가 되었던 건, 국가와 문화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지배층이라는 것들은 모두 민중 즉 사회적 약자에게 ‘극단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억누르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착한 말 예쁜 말로 할 때는 못 들은 체 나 몰라라. 그래서 행동으로 보여주려니까 ‘과격하고 극단적인 메퇘지 쿵쾅이들.’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이 패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내 안의 극단주의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기보다, ‘극단적이라는 주홍글씨로 나를 위협하는 이들을 두려워 말자,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버릇을 버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말이 곧 ‘내가 생각한 것에 100% 확신을 갖자’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내가 옳다 여기고 지지해온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그런 의문이 더 나은 길을 마련해주기도 하고, 내가 무언가 잘못된 쪽으로 가고 있었음을 되짚어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의문을 가지려는 의지만큼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야망과 힘, 노력으로 일구어낸 것들에 보다 신용을 갖고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또한 절감했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는 말이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좋은 책’이었다고 평가한다.
병든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병에 지지 않으려고 최전방에서 투쟁 중인 용기 있는 이들보다, 그런 이들의 행보를 따르고자 하면서도 선뜻 나서기 두려운 이들, 좀 더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믿고 용기를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